[Interview]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 “美 대선 누가 이기든 韓 기업 美 투자·中 기술 차단 부각해야”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한국 기업들이 2021년 이후 1000억달러(약 133조7000억원) 이상의 신규 투자를 약속한 것을 포함해 미국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투자가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어떻게 돕고 있는지를 조기에, 자주 상기시켜야 한다. (중략) 해리스가 승리할 경우 한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 접근 제한과 수출 통제를 위한 미국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이 맞붙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의 시나리오를 이같이 전망했다. 브레머 회장은 글로벌 리스크(risk·위험) 예측 전문가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가 사라졌다는 의미에서 ‘G제로’ 이론을 제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1년에는 신흥국을 대상으로 정치 리스크를 점수로 매겨 지수화한 정치 리스크 인덱스(GPRI·Global Political Index)를 개발하기도 했다. 브레머 회장에게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정치·경제 리스크를 서면으로 물었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한국은 어떻게 대응 방향을 잡아야 할까.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한국은 지난 4년 동안 약 네 배나 커진 미국과 무역 불균형(대미 무역 흑자)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트럼프는 무역 적자를 관세 인상 위협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한국 기업들이 2021년 이후 1000억달러(약 133조7000억원) 이상의 신규 투자를 약속한 것을 포함해 미국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투자가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을 어떻게 돕고 있는지를 조기에 그리고 자주 상기시킴으로써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
해리스가 승리하면 무역 불균형은 덜 민감한 이슈가 될 것 같은데.
“그렇기는 하지만 한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 접근 제한과 수출 통제를 위한 미국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 경우 한국은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간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간 동맹) 등 미국 주도의 역내 안보 및 경제 파트너십에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친(親)미국 기조를 유지하면서 여전히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과 안정적인 경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섬세한 외교를 펼쳐야 한다.”
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전 세계적으로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반도체에 대한 글로벌 수요 호황에 힘입어 지금까지 비교적 견조한 성장을 이어온 한국 경제에 순풍이 되어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인공지능(AI)과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서 점차 중국산을 외면하고 있는 것도 한국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집권 보수 여당(국민의힘)의 친기업 개혁 의제가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정치적인 교착 상태가 성장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점은 좋지 않은 소식이다. 이 같은 상황은 적어도 다음 대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어떤가.
“미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질임금 상승률을 바탕으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빠르고 완전하며 광범위한 경제 회복을 이뤘다. 이 같은 성과는 상당 부분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을 동시에 가장 탄력적으로 만든 구조적 특징 덕분이었다. 높은 투자, 이민 매력과 혁신·기업가 정신의 허브라는 점 등이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사이클 덕분에 다수의 경제학자가 우려했던 실업률 증가 없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회복했다. 한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연착륙을 이뤘지만, 이제 노동시장이 활력을 잃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대선 결과가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중국이 고율 관세 부과를 막기 위해 기꺼이 트럼프의 의견을 수용하며 모종의 거래를 성사시킨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율 관세의 여파가 미국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전해질 것이고 그 결과로 물가 상승은 가팔라지고 생산은 줄면서 글로벌 무역·투자·성장률을 떨어뜨릴 것이다. 또한 트럼프가 이민을 대폭 단속할 경우 미국 노동력을 축소하고 인건비를 높여 물가 인상 압력을 더욱 가중시키고 성장을 저해할 것이다. 이 경우 기준금리는 상승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해리스는 어떨까.
“해리스가 승리하면 미국과 글로벌 경제에 더 안정적이고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물가 상승과 성장률 하락 압력은 감소할 것이다. 반면 미·중 갈등의 돌파구 마련 가능성은 (트럼프 당선 경우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본다. 해리스는 바이든의 산업 보조금과 수출 통제,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에 대한 제한적 관세 등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금리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질 재정 적자가 미국과 글로벌 경제에 역풍이 될 가능성이 크다.”
누가 승리해도 재정 적자는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 같다.
“그렇다. 트럼프 당선의 경우 훨씬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2017년 임기 중 시행한 감세안을 연장한다는 가정에서 그렇다. 둘 중 누구도 그리고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쪽도 걱정스러운 미국의 부채 문제를 해결할 의욕이나 계획이 없다. 금리 인상으로 이자 비용이 상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위험 프리미엄을 높이고, 미국 시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며, 달러 가치를 약화시킬 수 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트럼프가 2017년 시행한 감세안을 연장할 경우 재정 적자가 10년에 걸쳐 4조6000억달러(약 6150조2000억원) 넘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초당파적 비영리 기관인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현재까지 발표된 해리스 후보의 정책이 향후 10년간 재정 적자를 1조7000억달러(약 2272조9000억원) 증가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누가 되는 게 미·중 관계에 더 좋을까.
“트럼프가 시작하고 바이든이 심화시킨 ‘탈(脫)중국’ 및 분리 정책은 중국이 미국의 주요 적대국이라는 워싱턴 정가의 광범위한 초당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중국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중국을 군사경제적으로 봉쇄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만큼 트럼프와 해리스의 대(對) 중국 정책의 차이는 전술적인 부분에 그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중국은 (미국과) 디커플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응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상황은 어떻게 보는지.
“중국 경제는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해결할 의지가 없거나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인건비 경쟁력 약화, 불투명하고 자의적인 정책 결정, 안보 우선주의, 높은 부채, 서방의 ‘디리스킹(de- risking·위험 제거)’ 노력 등 지정학적 도전, 과도한 국가 투자 의존 등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기술력에서 미국과 거의 동등한 수준에 올라와 있고, 탈탄소·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국이 향후 몇 년간 경제적으로 계속 저조한 실적을 보이더라도 생활수준에서는 성장의 여지가 많은 중요한 글로벌 강국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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