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벚꽃 피는 날’ 정확하게 맞히는 이 공무원···8년차 ‘벚꽃 베테랑’

유경선 기자 2023. 4. 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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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청 강봉기 과장(58)은 8년째 불광천 벚꽃축제 업무를 맡고 있다. 사람들에게 ‘가장 예쁠 때’ 벚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년 벚꽃 개화일을 정확하게 예측해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불광천에서 만난 강 과장이 벚꽃나무 아래서 미소짓고 있다. 유경선 기자

매년 봄, 벚꽃 피는 날을 ‘적중’시키는 공무원이 있다. 기후변화로 매년 개화일이 들쭉날쭉한데도 그가 예상한 날이면 대체로 벚꽃이 피곤 한다. 덕분에 꽃이 가장 예쁘게 피었을 때 벚꽃축제를 열 수 있다. 서울 은평구에서 8년째 ‘불광천 벚꽃축제’와 함께 하고 있는 은평구 강봉기 과장(58)을 지난달 30일 만났다.

올해 벚꽃 ‘3월28일에 핀다’ 예측···3가지 방법으로 개화일 ‘연구’

올해 벚꽃은 예년보다 빨리 피었다. 서울의 공식 벚꽃 개화일은 3월25일로, 평년(4월8일)보다 14일이나 일렀다. 강 과장도 벚꽃이 빨리 필 것을 예상했다. 그가 점찍은 벚꽃 개화일은 3월28일이었다.

강 과장이 벚꽃 피는 날을 맞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민간 기상업체에서 제공하는 개화 예측을 참고한다. 그 다음에 불광천변 ‘외톨이 벚나무’를 유심히 살펴본다. 이 나무는 6㎞에 이르는 불광천 벚꽃길에서 매년 홀로 먼저 꽃을 피운다.

“아무래도 벚꽃길을 만들 때 다른 수종 하나가 잘못 섞여 들어온 것 같더라고요. 이 나무가 항상 일주일 정도 먼저 꽃을 피워요. 이 독특한 친구 덕분에 일주일을 앞서볼 수 있는 거죠.”

3월이면 강 과장은 매일 아침 이 나무의 꽃눈을 확인하고 사진으로 기록한다.

강봉기 과장이 불광천 ‘외톨이 벚나무’를 보여주고 있다. 매해 다른 벚나무들보다 일주일 정도 먼저 꽃을 피운다. 강 과장은 “외래 수종이 섞여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유경선 기자

개화 정확도를 높이는 건 ‘적산온도’ 계산법이다. 벚꽃이 피어있을 수 있는 최저 기준온도와 일 평균기온의 차이를 더한 값이 적산온도다. 벚꽃 기준온도는 5.5도로, 하루 평균 기온이 7도라면 차이값은 1.5도가 된다. 이 값을 2~3월 동안 매일 더해나간 합이 106이 넘어갈 때 벚꽃이 핀다는 게 강 과장의 설명이다.

기후변화로 개화 예측 점점 어려워···“매해 처음 겪는 상황 생겨”

이렇게 예측한 올해 개화 날짜가 3월28일이었다. 꽃은 그보다도 사흘이나 먼저 찾아왔다. 강 과장은 “워낙 더워서 예상일보다 좀더 빨리 핀 것 같다. 예측이 빗나갔네요”하며 멋쩍게 웃었다.

기후변화는 ‘벚꽃 베테랑’ 강 과장에게도 위기 요인이다. 올해는 3월부터 초여름 기온이 나타나는 고온현상이 있었다. 사흘이나 오차가 벌어진 건 이 때문이다. 예년에는 불광천 외톨이 벚나무가 개화하고 나서 7일 뒤에 나머지 벚나무들이 꽃을 피웠지만 올해는 그 차이가 4일뿐이었다.

축제일을 정하는 데도 매년 고심이 깊어진다. 벚꽃축제는 꽃이 ‘만개’했을 때 여는 것이 좋다.

“꽃송이가 80% 이상 벌어졌을 때를 만개라고 봅니다. 개화했을 때부터 만개까지 평균적으로 7일이 걸려요.”

개화일로부터 4~5일 뒤가 최적의 축제 개막일이다. 강 과장도 3월28일부터 닷새 뒤인 4월2일을 축제일로 잡았다. 하지만 개화부터 만개 사이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올해는 (개화에서 만개까지가) 5일밖에 안 걸렸어요. 이틀이 사라진 거죠.”

지난달 30일 불광천변에 피어 있는 벚꽃. 유경선 기자

기후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건 봄철만이 아니다.

“작년 10월 축제 때는 불광천에 무대를 설치해놨는데, 비가 하도 많이 와서 무대가 떠내려갈 지경이었어요. 그때도 100년 만의 10월 폭우라고 했어요. 은평구에서 축제 업무만 11년인데 매년 처음 겪는 상황이 생기네요. 기후변화를 현장에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개화일 열심히 맞추면 사람들도 행복···움츠린 마음 펼 수 있길”

강 과장이 불광천 벚꽃과 인연을 맺은 건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상암 월드컵경기장으로 이어지는 불광천이 대대적으로 재정비됐다. 불광천 왕벚나무들은 이때 심어졌다. 당시 주무관이던 강 과장도 벚꽃 식재에 참여했다.

22년째 함께인 벚나무에 대한 애정 덕분에 은평구는 서울 다른 자치구들보다 이른 2일 축제를 열 수 있었다. 강 과장은 벚꽃이 최대한 늦게 필 수 있게 밤에는 전용 조명도 꺼 가며 신경썼다. 밤 불빛이 꽃나무 생육을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봄 들어서 처음 대량으로 피어나는 꽃이 벚꽃이에요. 예쁘게 핀 모습을 봐야 사람들 마음이 들뜨고,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기지개를 켤 수 있죠. 불광천 벚꽃 덕분에 사람들이 행복하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됐다면 전 제 할 도리를 다 한 겁니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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