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팬알백] ⑦1982년 개막전 MBC 청룡 최초 승리를 찾아서

#1. KBS TV
“아~ 레프트! 레프트! 크다! 크다! 크다! 호~옴~런! 만루홈런! 11-7! 이 극적인 장면을, 이건 야구 관람하는 팬들도 이런 경기는 처음 구경하실 겁니다.“
KBS 이장우 캐스터 특유의 카랑카랑한 샤우팅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그의 리드미컬한 목소리만 듣고도 이 순간이 얼마나 거짓말 같은 상황인지를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냥 레프트 스탠드에, 한 105m에 꽂혔어요.“
KBS 해설을 맡은 이호헌 씨는 막걸리 같은 걸쭉한 목소리로 부연설명을 했다.
#2. MBC TV
“쳤습니다! 홈런성입니다~. 홈~런~됐습니다. 굿바이 만루홈런! 굿바이 홈런! 이종도! 이종도! 굿바이 홈런! 아~ 극적입니다!”
MBC 김용 캐스터가 숨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외쳤다. 그의 외침은 이 경기가 꿈같은 승부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 이것은 한국프로야구가 세상을 향해 울음을 터뜨리면서 태동한 날,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이야기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이번 편에서는 1982년 3월 27일 KBO 최초의 게임이자 KBO 최초 승리팀이 탄생한 그날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려 한다.
그날의 주인공은 MBC 청룡이었고, 그 최초의 기록은 고스란히 LG 트윈스가 이어받고 있다.
43겹의 나이테를 두른 추억의 문을 열고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 본다.

◆역사적 원년 개막전 매치업, 일주일 앞두고 결정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가 오는 27일 서울운동장에서 개막되는 한국프로야구의 역사적인 시즌 오픈전을 장식하게 됐다. 프로야구 6개 구단의 치열한 경합으로 시즌 오픈전 출전팀 선정에 고심해온 한국야구위원회(KBO) 서종철 총재는 20일 시즌 오픈전 출전팀으로 서울에 본거지를 둔 MBC 청룡과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를 결정했다.』 <1982년 3월 20일자 경향신문>
이 기사에서 보듯, 한국야구위원회(KBO)가 1982년 원년 프로야구 공식 개막전을 치를 두 팀을 확정한 것은 개막을 불과 일주일 남겨둔 시점(3월 20일)이었다.
당시 공식 개막전은 단 한 경기. 그러자 6개 구단 모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최초 개막전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다. 서로 의견이 상충하면서 결론이 나지 않자 결국 6개 구단은 KBO 서종철 초대 총재에게 결정을 위임했고, 서 총재는 이날 개막전 매치업 두 팀을 확정해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개막전은 서울운동장(동대문구장)에서 개최하기에 원년 서울을 연고로 탄생한 MBC 청룡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당시 국가대표 출신 스타플레이어를 가장 많이 보유한 강력한 우승 후보 삼성 라이온즈가 상대팀으로 결정됐다.

◆아침부터 구름관중…하늘엔 애드벌룬이 날리고
서울운동장 야구장 외벽에는 원년 6개 구단 심벌마크 통천이 걸리고, 6개의 애드벌룬이 어린이들의 부푼 꿈처럼 야구장 하늘 위로 두둥실 떠다니며 개막전 분위기를 연출했다.
예매 제도가 없었던 그 시절, 이른 아침부터 동대문 일대는 입장권을 구하려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입장료는 특석(1500석) 5000원, 내야석(8500석) 3000원, 외야석(1만6000석) 2000원. 운동장 측은 2만6000석의 표가 일찌감치 동나면서 6547만 원의 입장수익을 올렸다고 공식발표했다.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팬들은 외야석 암표를 3배 이상의 웃돈을 주고 구하기도 했고, 내야석 암표는 1만 원을 훌쩍 넘겼지만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낮 12시부터 그라운드에서는 6개 구단 마스코트와 치어리더, 연예인 등이 참여한 화려한 오프닝쇼가 펼쳐졌고, 당시 지상파 방송인 KBS TV와 MBC TV 2개 채널 모두 오전 11시50분터 식전 행사와 경기까지 논스톱으로 전국에 생중계하며 프로야구 출범을 국가적 이벤트로 만들었다.


“그날 날씨가 참 많이 추웠어요. 개막식 행사도 있고 그래서 선수들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 야구구장으로 갔던 기억이 나요. 당시 6개 구단 선수 모두 동대문구장에 집결했는데 행사 요원들까지 많아서 마땅히 쉴 공간도 없었죠. 식사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지방 팀 선수들은 이 행사가 끝나고 바로 내려가 다음날 경기를 준비해야 했는데 그래도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생기니까 다들 좋아했어요. 꿈만 같은 일이었죠. 축제 분위기였죠.”

당시 MBC 청룡 1번타자 김인식(현 연천미라클 감독)의 회상이다. 신문을 보면 그날 날씨는 낮 최고기온이 영상 10도일 정도로 매우 쌀쌀했다.
최고령 선수인 OB 베어스 윤동균(1949년생)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를 일구는 주역이 되겠다”며 6개 구단 선수를 대표해 선서를 했다.
이어 전두환 대통령이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경호원들이 선수 유니폼과 심판 복장을 하고 주변을 지켰을 만큼 삼엄한 분위기. 삼성 1번타자 천보성은 자신의 발쪽으로 향하는 볼에 헛스윙을 해줬고, MBC 포수 유승안은 행여나 공을 뒤로 빠뜨릴 새라 재빨리 미트를 뻗어 잡아낸 뒤 마치 스트라이크처럼 프레이밍을 했다. 김광철 주심은 양손을 번갈아가며 허공에 총질을 하는 화려한 세리머니로 “스트라이크”를 외쳤다.
군사정권 시절,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뭔가 긴장감이 흐르는 풍경이었다.

◆역사적 선발투수 MBC 이길환과 삼성 황규봉
“절대 함구해라.”
MBC 청룡 백인천 감독은 이날 아침 미팅을 통해 포수로 선발출장하는 유승안과 선발투수로 낙점한 잠수함투수 이길환을 불러 단단히 일렀다.
선발투수 예고제가 없었던 그 시절, 양 팀 라인업이 교환될 때까지 상대팀 선발투수를 알 수 없었다. 일본야구의 영향으로 선발투수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것이 전략 중 하나였던 시절이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감독님이 선발투수 후보를 3명 뒀던 것 같아요. 하기룡, 정순명, 이길환. 근데 제가 봐도 그날 이길환 컨디션이 가장 좋았어요. 제구도 좋고 템포도 빠르고 싱커, 슬라이더, 커브를 잘 던졌던 친구였어요.”
유승안 전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의 기억이다.

이길환은 1959년생으로 선린상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뒤 곧바로 MBC에 입단한 막내급 투수. 언더핸드 투수인 그는 선린상고 시절이던 1975년 청룡기 서울시 예선 상문고전에서 퍼펙트게임을 기록하며 이름을 크게 알리기 시작했다.
삼성 선발투수는 황규봉. 국가대표 출신으로 실업야구까지 경험한 베테랑 우완 정통파 투수였다. 원년 OB 박철순에 이어 구위 면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듣던 투수였다.
최초 개막전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은 다음과 같았다.


◆1회초 실책 2개 2실점, 2회초 3실점…초반부터 스코어 5-0
오후 2시30분. 김광철 주심의 “플레이볼” 선언과 함께 이길환의 역사적인 초구가 날아들었다. 야구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스포츠로 이어져 온 대한민국 스포츠 80년사가 마침내 프로스포츠 시대의 첫 문을 연 역사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삼성 1번타자 천보성은 초구를 기다리지 않고 타격했다. 내야 위로 높이 뜬 공. MBC 유격수 정영기가 살짝 뒷걸음질을 치며 잡아냈다. KBO 역사에서 첫 아웃카운트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2번타자 배대웅은 2루수 직선타. 2아웃. MBC가 순조롭게 출발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3번타자 함학수의 땅볼 타구를 1루수 김용윤(훗날 김바위로 개명)이 허리를 숙이며 잡으려다 글러브를 맞고 뒤로 빠뜨리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함학수는 2루까지 내달려 2사 2루.

이어 삼성 4번타자 이만수가 몸쪽 공을 잡아당겨 좌익선상으로 총알 같은 2루타를 날렸다. 함학수가 득점하면서 삼성에 선취점을 빼앗겼다. 이만수는 KBO 1호 안타와 1호 타점의 주인공이 됐고, 이길환은 KBO 1호 실점을 한 투수가 되고 말았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5번타자 송진호의 유격수 뒤로 뜬 공을 정영기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잡다가 놓치는 실책을 범했다. 2사 이후였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린 2루주자 이만수가 득점했다.
만원 관중 앞에서 펼쳐진 프로야구 최초 개막전이라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1회초에만 실책 2개가 나오면서 먼저 2실점했다.
1회말 MBC는 선두타자 김인식이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2번타자 송영운이 볼넷을 얻어 나가면서 구단 역사상 1호 볼넷과 1호 출루를 기록했다. 그러나 3번타자 김용윤이 1루수 앞 땅볼로 병살타를 치는 바람에 찬스가 무산됐다.

◆LG 트윈스 통산 4만9802안타의 첫걸음…이종도의 2루타!
원년 개막전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팬들은 이종도의 만루홈런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MBC 청룡과 LG 트윈스로 이어진 구단 역사상 1호 안타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팬은 얼마나 될까.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자. 먼저 2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4번타자 유승안과 5번타자 백인천이 연이어 2루수 앞 땅볼로 물러났다.
그런 다음 5번타자 이종도가 타석에 들어섰다. 황규봉의 초구 바깥쪽 빠른공. 타구는 우익선상으로 날아갔고, 우익수 허규옥이 달려가 안타 타구를 잡는 사이 이종도는 여유있게 2루에 안착했다.
MBC 청룡의 1호 안타와 1호 2루타는 이렇게 태어났다.
LG 트윈스는 MBC 청룡 시절을 포함해 2025년 5월 9일 현재 통산 4만9802안타를 기록 중인데, 앞으로 198안타를 추가하면 팀 통산 5만 안타 고지에 오르게 된다. 그 시작점이 바로 이종도의 원년 개막전 2회말 2루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안타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이어 7번타자 신언호가 볼넷을 골라 나가 2사 1·2루. 구단 역사상 1호 볼넷으로 기록됐다. 그리고 8번타자 정영기가 우전 적시타를 때리면서 이종도가 홈을 밟았다. 스코어 1-5. 반격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추격의 득점이었다. 이종도는 구단 역사상 1호 득점, 1회초에 실책을 범했던 정영기는 1호 타점을 올렸다.

◆3회초 이길환에서 유종겸으로 투수가 바뀌고
3회초 시작과 함께 MBC 마운드에는 좌완 유종겸이 올라왔다. 이길환은 2이닝 3안타 2볼넷 5실점(2자책점)을 기록한 뒤 물러났다.
유종겸이 3회초와 4회초를 무실점으로 막는 사이 MBC는 4회말 추격의 1득점을 올렸다. 선두타자 유승안의 볼넷과 백인천의 좌전안타로 무사 1·3루. 이때 이종도가 2루수 쪽 땅볼로 팀배팅을 하면서 3루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스코어는 2-5.
그러나 잘 던지던 유종겸은 5회초 선두타자 이만수에게 좌월 솔로홈런을 허용했다. 이것이 역사적인 KBO 1호 홈런이었다. 스코어는 2-6으로 벌어졌다.
5회말부터 MBC가 1점을 추격하면 삼성이 1점을 달아나고, 다시 MBC가 1점을 따라가면 삼성이 1점을 도망가는 핑퐁게임이 이어졌다.
점수는 다시 3-7, 4점차. 추격하던 MBC의 기세가 꺾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백인천 추격의 솔로포와 유승안의 극적인 동점 3점포
사실상 패배로 가는 흐름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일이 터졌다. 주인공은 바로 백인천. 6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황규봉의 초구를 받아쳐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MBC가 4-7, 3점차로 따라붙었다.
이 홈런은 MBC 청룡, 나아가 LG 트윈스 구단이 쌓아 올린 통산 3841홈런(5월 9일 현재)의 첫 번째 홈런이었다.
(우리는 이만수가 KBO 1호 홈런을 쳤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LG 트윈스 구단 역사상 1호 홈런의 주인공이 백인천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리고 7회말. 2사 후 송영운의 투수 앞 내야안타와 김용달의 우익수 앞 안타가 이어졌다. 2사 1·3루.
타석에는 4번타자 유승안. 황규봉의 초구가 바깥쪽 약간 높게 형성됐다. 유승안은 곧바로 배트를 휘둘렀고, 타구는 오른쪽 상공으로 비행하더니 우익수 허규옥 뒤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7-7 동점을 이루는 3점홈런!
유승안은 자신도 모르게 헬멧을 벗어 왼손에 잡고 무아지경으로 그라운드를 달렸다.
다음 타자 백인천이 가장 먼저 마중을 하기 위해 홈플레이트 앞으로 달려나갔고, 덕아웃의 선수들은 홈플레이트 앞부터 덕아웃 앞까지 도열하면서 개선장군하는 4번타자를 하이파이브로 맞이했다.
사실 이날 경기 전 모두가 감독 겸 선수 백인천이 MBC 4번타자를 맡을 줄 알았지만, 결과작으로 이런 타순을 짠 게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당시엔 선발투수는 물론 타순도 그날 되어서야 알았어요. 저도 4번타자는 당연히 감독님이 맡을 줄 알았죠. 그런데 저한테 4번을 맡겨주시더라고요. 기분이 좋았죠.”
유승안 전 한국리틀야구연맹회장의 이야기다.
“홈런은 밀어치려고 해서 밀어친 게 아니라 타이밍이 약간 늦었어요. 노린 공도 아니었어요. 배트와 공 각도가 잘 맞았고, 바람도 잘 탔던 것 같아요. 제가 그때 파워는 좀 있었지만 밀어쳐서 홈런이 많이 나오는 시대는 아니었으니까 맞는 순간 넘어갔다고 느끼지 못했죠. 공이 둥둥 떠서 계속 뒤로 가는 느낌? 홈런까지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냥 전력질주하면서 우익수를 보는데 계속 뒤로 달려가더니 포기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홈런이 되는 순간 나도 정신없이 헬멧을 벗고 달렸던 거죠. 하하.”
삼성 선발투수 황규봉의 투구수는 이때 104개에 이르렀다. 삼성 서영무 감독은 결국 또 다른 국가대표 에이스 출신인 좌완 이선희로 투수를 교체했다.

◆승부는 연장전으로…오토바이가 탐났던 유승안의 무리한 욕심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MBC 두 번째 투수 유종겸은 3회부터 등판해 9회초까지, 그리고 10회초까지 씩씩하게 던졌다. 8이닝 동안 116구를 뿌리며 삼성 타선을 7안타 1볼넷 5탈삼진 2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연장 10회말. 선두타자 김인식은 이선희의 초구에 기습번트 동작을 취했지만 볼이 들어오자 배트를 거뒀다. 두 번째 공이 갑자기 엉덩이 쪽으로 날아들었다. 피할 겨를도 없었지만 피할 마음도 없었다. 그대로 맞고 1루까지 전력질주하듯 뛰어나갔다.
김인식은 1루에 도달한 뒤 그제서야 오른손으로 엉치뼈 부근을 비비며 아픈 기색을 내비쳤다. 이재환 1루 코치가 엉덩이를 어루만졌고, 덕아웃에 있던 신언호가 스프레이를 들고 1루까지 뛰어가 응급처치를 했다. 김인식은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는데 신언호는 선두타자가 살아나간 게 기뻤는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싱글벙글했다.

“처음엔 기습번트라도 대서 어떻게든 살아나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초구가 볼이 됐고, 2구째가 몸쪽으로 오더라고요. 몸에 맞는 순간 아픈 게 어딨어요? ‘이게 웬떡이냐’ 하면서 1루로 달려나갔죠. 1루에 도착하니까 아프긴 아프더라고요. 허허.”
투지와 근성의 화신으로 통했던 김인식의 이야기다.
그는 프로야구 초창기 몸에 맞는 공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인물이다. 팀당 80경기를 치렀던 원년에 18개의 사구로 ‘초대 사구왕’에 오르기도 했고, KBO 역사에서 3연타석 사구(1985년 5월 15~16일 잠실 삼미전)를 가장 먼저 기록한 주인공이기도 했다. 몸쪽 공만 오면 팔꿈치나 무릎을 교묘하게 들이밀며 어떻게 해서든 맞고 나가려 했던 악바리였다.
2번타자는 9회 대수비로 나갔던 배수희. 삼진을 당했다.
이어 김용달의 좌전안타가 터졌다. 발 빠른 1루주자 김인식은 3루까지 과감하게 내달려 슬라이딩을 하며 세이프. 좌익수 송구가 3루로 향하는 사이 김용달은 2루까지 진출했다. 1사 2·3루. 끝내기 찬스였다.
7회 동점홈런의 영웅 유승안이 타석에 들어섰다. 연속 3개의 볼이 들어왔다. 컨트롤 좋기로 소문난 이선희의 제구가 흔들리고 있었다. 3B-0S.
4구째도 바깥쪽 다소 높게 들어왔다. 가만히 뒀으면 밀어내기 볼넷이 될 공이었다. 그러나 유승안이 참지 못했다. 배트를 휘둘렀고, 빗맞은 타구는 원바운드로 투수 이선희에게 잡혔다. 이선희는 곧바로 공을 포수 이만수에게 던졌고, 이만수는 홈에 슬라이딩을 하며 밀고 들어오는 김인식을 태그해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상황은 2사 1·2루로 변하고 말았다.
“그날 수훈선수에게 걸린 오토바이에 제가 눈이 멀었던 거죠. 끝내기만 치면 수훈선수가 될 수 있으니까 욕심을 부리다가 3루주자를 아웃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때 백인천 감독님도 화를 내시고, 홈에서 아웃된 김인식 선배도 화를 내시고 그랬죠.”
하마터면 역적이 될 뻔했다. 유승안 전 한국리틀야구연맹회장은 이제는 웃으면서 그날의 일들을 복기해 나갔다.
2사 1·2루에서 백인천이 타석에 등장했다. 삼성 배터리는 고의볼넷으로 걸렀다. 만약 유승안이 볼넷으로 걸어나갔더라면 1사 만루에서 백인천과 상대할 수밖에 없었고, 백인천에게 끝내기 찬스가 걸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고의볼넷은 삼성이 취할 수 있는 당연한 선택. 일본프로야구 무대에서도 타격왕을 했던 백인천과 상대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결국 2사 만루가 됐다.

◆봄날 하늘에 그린 무지개…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
어느덧 해가 졌고, 시곗바늘은 오후 6시를 넘어 6시 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휘날리는 이른 봄날의 차가운 바람. 그러나 팬들의 함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은 차가워진 공기를 다시 뜨겁게 가열시켰다.
타석에는 6번타자 이종도가 들어섰다. 앞선 5타석에서 4타수 2안타와 몸에 맞는 공 하나를 기록할 정도로 타격감이 괜찮았다.
“사실 저한테까지 찬스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유승안 타석 때까지는 말이죠. 1사 1·3루였으니까 유승안이 됐든, 백인천 감독님이 됐든 앞에서 끝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묘한 상황들이 이어지면서 저한테 기회가 오더라고요. 저 스스로 ‘이 경기를 여기서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이종도는 2년 전부터 강원도 속초에 내려가 살고 있다. 소일거리로 대한유소년야구연맹 경기감독관을 하며 전국의 클럽야구 꿈나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요즘 낙이다.
“하도 원년 개막전 얘기를 많이 해서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며 웃었지만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1952년생. 프로야구 출범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이제는 칠순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봄만 되는 그날의 상황이, 그날의 손맛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다시금 피어오르곤 한다.
백인천 감독은 1루주자로 나가면서 타석에 들어서는 이종도에게 두 손으로 동그란 모양을 그린 뒤 배트를 잡는 시늉을 했다. 유백만 3루코치가 벤치의 작전을 보고 사인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타자에게 직접 사인을 냈던 것이다. 감독 겸 선수였기에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이종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운데 몰리는 좋은 공은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죠. 저희끼리는 그동안 연습하면서 백인천 감독님의 사인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우리만 아는 시그널이었어요. 이심전심으로 말이죠. 그런데 초구는 칠 마음이 없었어요. 제가 왼손투수 공을 잘 치기도 했고, 실업야구 시절에 이선희 볼을 잘 치기도 했거든요.”
이선희도 이종도가 껄끄러웠다. 초구와 2구째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다. 이종도는 덤벼들지 않았다.

“볼카운트가 투볼 노스트라이크(2B-0S)가 되니까 ‘이제는 놓치지 않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더 이상 볼을 던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죠.”
"딱!"
아니나 다를까. 3구째 공이 바깥쪽에서 한가운데로 살짝 몰렸다. 이종도의 배트는 날카롭게 돌았고, 타구는 빨랫줄처럼 왼쪽 외야로 쭉 뻗어갔다. 모두가 숨을 죽인 순간, 하얀 공은 왼쪽 담장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KBS 이장우 캐스터와 MBC 김용 캐스터가 세상을 향해 “굿바이 만루홈런”을 외쳤고, MBC 청룡은 11-7로 거짓말 같은 역전승을 거뒀다. 2회까지 0-5로 밀렸던 경기를, 경기 중반까지 3-7로 뒤지던 경기를 백인천의 솔로홈런, 유승안의 3점홈런, 이종도의 만루홈런 3방으로 뒤집어 버렸다.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빠르게 뛰었어요. 워낙 잘 맞아 라인드라이브로 날아가는데 홈런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죠. 달리면서 ‘펜스에는 맞겠구나, 경기는 끝나겠구나’ 싶긴 했죠.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던 순간의 감정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저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림이었으니까요.”
이종도의 아내는 역사적인 이날 아침, 출근하는 남편 등 뒤로 “좋은 꿈을 꿨어요. 그런 게 있어요”라며 배시시 웃었다.
예지몽이었을까. 경기 후 만났을 때 아내는 “누군가가 꽃다발을 한가득 갖다 주는 꿈을 꿨어요”라며 다시 웃었다.
꿈속의 꽃다발은 유승안이 탐냈던 그 오토바이였을까. 이날 영웅이 된 이종도는 개막전 수훈선수에게 부상으로 주어지는 100만 원 상당의 효성스즈끼 오토바이를 받았다.
아니, 어쩌면 그 꽃다발의 꿈은 한국야구에 전해주는 예지몽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종도는 그렇게 프로야구의 시작점에 만루홈런이라는 무지개를 그렸고, 한국프로야구는 만화 같은 전설을 만들어내면서 ‘국민의 스포츠’로 빠르게 자리잡아 나갔다.

◆KBO 1호 승리팀과 역사적 1호 기록들
1982년 3월 27일의 개막전은 MBC 청룡과 LG 트윈스 역사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하나하나 기록을 탑처럼 쌓아 올려 오늘날의 통산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중계를 했던 KBS 이장우 캐스터(2024년 작고)와 이호헌 해설위원(2012년 작고), MBC 김용 캐스터(2010년 작고)와 배성서 해설위원(2025년 작고)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어디 이뿐이랴. KBO 최초 개막전 선발투수라는 역사를 쓴 MBC 청룡의 이길환(2007년 작고)과 삼성 라이온즈 황규봉(2016년 작고)도 이미 오래 전 눈을 감았다. MBC 2번타자 송영운(2023년 작고), 그리고 8회말 송영운의 대타로 나섰던 포수 김용운(2005년 작고)도 우리에게 야구의 추억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그러나 그들이 빚어낸 KBO 최초 게임의 역사는 빛바랜 기록지 위에서 오롯이 살아 숨쉬고 있다. 100년이 지나도, 1000년이 지나도, 이땅에서 프로야구가 계속되는 한 그것은 KBO 최초의 경기라는 타이틀로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누군가가 “KBO 최초의 승리팀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MBC 청룡"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LG 트윈스가 그 빛나는 역사를 이어받았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정말…. 우리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기는데, 빨리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겼으면 원한이 없었을 텐데…”
백인천 감독은 이날 경기 후 승장 인터뷰를 하면서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눈물은 일본에서 차별을 이겨내며 타격왕에 올랐던 한 맺힌 지난 세월에 대한 설움과 내 나라 내 땅에 마침내 프로야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한 감격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는 KBO 역사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불멸의 기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엘팬알백] ⑧편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