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 시설 감소에도 美 원유 생산량 1위…비결은 ‘AI’의 마법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비용도 기존 방식 대비 30% 이상 절감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세계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양은 하루 약 1억 배럴 수준이다. 이 가운데 최대 원유 생산국은 미국이다. 최근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1330만 배럴에 달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를 제치고 역대 최대 규모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생산량은 원유와 관련된 전문가들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원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리그'라고 불리는 채굴시설을 늘리는 것이다. 같은 지역 내에 더 많은 리그를 설치하면 더 많은 원유를 뽑아낼 수 있다. 물론 그 대가로 원유 고갈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원유의 수요, 가격 변동에 따라 리그 수는 변화하지만 기본적으로 원유 생산량과 리그 숫자는 정비례 관계다.
리그 숫자 줄어들었지만…
1980년대 초반 5000개에 육박하던 미국의 리그 숫자는 1980년대 중반 세계적인 저유가 현상으로 대폭 줄어 500개 내외까지 감소했다. 이후 2000년대 셰일 혁명 과정에서 다시 증가해 2000개에 근접했다. 전통적인 유전과 달리 셰일은 초기 생산 이후 생산량이 급감하기 때문에 일정한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리그를 설치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셰일오일이 생산되는지를 판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리그 숫자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2015년을 전후해 크게 달라졌다. 미국 내 전체적인 리그 숫자는 계속 감소해 이제는 1000개 이하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원유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하루 1400만 배럴에 육박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한 것일까?
원유 생산은 매장지를 찾아 시추공을 뚫고 매장돼 있는 원유를 뽑아내면 되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원유 생산은 의외로 섬세한 작업이다. 지진파를 이용해 지질 구조를 정밀하게 파악해야 최소한의 탐사 비용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일단 경제성 있는 유정을 발견한 이후에도 내부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해 줘야만 안정적으로 원유를 생산할 수 있다. 최초 채굴 이후 압력이 낮아지면 원유 생산량은 급감한다. 압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유정에 해수, 이산화탄소 등을 주입해 압력을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유정 내부의 원유를 모두 채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전통적인 유정이 아닌 셰일의 경우 매장량 가운데 8% 내외만 채굴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종 펌프와 배관으로 이루어진 생산설비가 고장 날 경우에도 생산량은 감소한다. 설비의 신뢰성과 안정성은 물론 고장 여부에 대한 예측과 사전 대비가 원유 생산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다.
오랫동안 현장의 노하우와 경험에 따라 이뤄지던 석유 매장지 탐사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컴퓨터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탐사 지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관련 데이터를 확인해 시추 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지상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지하 구조를 사람의 지식과 경험에 근거해 판단하고 시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필연적으로 운에 의존해야만 할 것 같은 원유 매장지 탐사와 채굴 과정에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이 도입되면서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셰일 매장지인 노스다코타주 유전지대의 경우 생산설비는 현장에 있지만 사람들이 머무르는 통제실은 수천km 떨어진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하고 있다. 각종 센서를 통해 전달된 데이터를 토대로 AI는 셰일오일 생산에서 가장 핵심적인 수평굴착 경로를 판단해 제시하고 있다. 인간이 AI의 제안을 수용하면 현장에 위치한 무인 로봇이 AI가 지정한 경로를 따라 굴착하게 되는데 사람이 굴착 경로를 결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원유 생산에 필요한 시간이 최소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굴착 속도만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로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 숫자도 훨씬 줄어들고 있다. 기존에 사람이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 양의 1~3%만 가지고도 AI은 최적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생산이 시작된 유정에서도 AI의 역할은 크다. 생산설비에서 고장이 발생할 경우 생산을 멈추고 고장 부위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수일 또는 수 주씩 걸리곤 했다. 반면 AI는 생산설비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고장 발생 이전에 어느 부위가 문제를 일으킬 것인지 예측하고 점검하도록 권고함으로써 생산 중단을 최소화하고 있다. 업체에 따라 다르지만 고장 발생 최장 30일 이전에 고장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AI는 기존 유정 내부의 압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안을 제시, 과거에 비해 더 오랫동안 원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AI는 유정 1곳당 최소 5만~10만 달러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탐사부터 진행돼야 하는 경우 기존 방식과 비교할 때 30% 이상 비용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원유 생산에 AI가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2025년 중반 이후에야 본격적인 비용 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 규모는 최소 10% 이상이며 최대 50%에 이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가경제 발전 핵심요소로 떠오른 AI 활용도
도전적인 소규모 원유업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AI 도입은 최근 석유 메이저 업체들로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석유 메이저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미국의 유명 AI 서비스 제공업체인 팔란티어와 5년간의 AI 활용계약을 체결했다. 팔란티어는 기존에도 현장을 그대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모델 제공을 통해 BP와 협력하고 있었는데 그 범위가 더 확대된 것이다. 일반적인 상용 AI의 경우 환각작용으로 인한 신뢰성 문제가 있는데 팔란티어는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AI를 통한 원유 생산 효율화는 중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시노펙 등 국영기업들은 화웨이 등과 협력해 자체적인 AI 모델을 개발·적용하고 있는데 미국과 달리 원유 탐사 및 생산 이외에 원유 저장 및 운송 효율 향상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표준화된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좀 더 편리하게 AI를 학습시킬 수 있는 체제 구축도 병행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AI에 대해 신기해하면서도 특별히 사용하기는 곤란한 물건이라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주요 강대국들은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면서 약점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AI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국가경제 발전의 핵심요소가 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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