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한 공정금융포럼 공동대표]
이젠 무너진 서민경제 살릴 때
한국 경제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저성장 쇼크에 빠지면서 그 충격이 서민경제를 선별 타격하는 국면에 진입했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에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다. 무너지는 내수경제는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 상황으로 보는 것이 맞다. '특단에 특단'의 경기부양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코로나 이전의 성장 균형(경제성장률 3% 안팎)으로 돌아갈 길이 막히게 되고,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성장률은 ‘3년 연속 2% 이하 성장’이라는 사상 초유의 저성장 충격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이 잠재성장률 하락을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률은 2023년에 1.4%로 주저앉았고 그나마 작년에는 내수 공백을 수출로 메우며 2.0%에 턱걸이했다. 올해에는 다시 1%대 성장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0%대 성장률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 경제는 1956년 대기근 사태 이후 지난 70년 동안 ‘2% 이하의 성장률을 기록한 적은 단 다섯 차례뿐이다. 그것도 4번의 사례는 경제위기와 관련이 있었다. 1980년 2차 오일쇼크(–1.6%) ▲1998년 IMF 외환위기(–5.1%) ▲2009년 금융위기(0.8%) ▲2020년 코로나사태(–0.7%) 정도인데, 이때에는 단기 충격 이후 강한 상승 복원력을 보인 바 있다. 정리하자면, 정상적인 경제 하에서 발생한 저성장 쇼크는 ‘2023년 1.4%’와 ‘2024년 2.0%’가 유일한 셈이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내수 경제
문제는 건전재정발 세수펑크 사이클이 장기화되면서 서민경제가 만성적 내수불황의 늪에 빠졌다는 것이다. 유례없는 세수펑크 충격이 민생 긴축 압력을 높여 구조적 소득충격이 발생하고, 그 충격이 다시 만성적 내수불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핵심 내수 지표들은 ‘사상 최초’가 일상화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소매판매’(불변지수)는 2021년 5.8% 성장한 이후에 내리 3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있다. 1995년 이후 소매판매액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적 역시 1998년 외환위기(-16.3%), 2003년 카드 사태(-3.2%), 2020년 코로나 사태(-0.1) 뿐이다. 그나마 이 때에는 단기 충격 이후 그다음 해에 회복할 정도였는데, 지금의 소비 불황이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매판매지수(통계청)
▹ ‘21년(+5.8%) ⟶ ’22년(-0.3%) ⟶ ‘23년(-0.5%) ⟶ ’24년(-2.2%)
불황 경제의 주범은 구조적 소득 감소다. 경제가 성장해도 소득이 늘지 않는 소득충격에 빠졌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실질임금(전산업 월평균 임금)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2022년 –0.2%, 2023년 –1.1%)을 기록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작년에도 0.5% 성장에 그쳤다.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실질임금이 성장률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구조적 소득충격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건전재정발 세수충격이 민생긴축 압력을 높이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인세 세수는 경기충격과 감세 여파로 2022년 103.6조 원에서 2024년 62.5조 원으로 2년간 무려 39.7%나 감소했다. 반면, 근로소득세는 민생 위기 속에서도 2022년 57.4조 원에서 2024년 61조 원으로 오히려 6.3%나 증가했다. 세수 구간을 10년(2015~2024년)으로 늘리면, 근로소득세는 125.1% 증가해 법인세의 38.8% 증가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민생긴축 압력으로 소득세가 증가해 가처분소득이 줄면, 소비 불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
◆근로자 실질임금증가율(고용노동부)
▹ ’22년(-0.2%) ⟶ ‘23년(-1.1%) ⟶ ’24년(0.5)
◆법인세·근로소득세 추이
▹ 법인세(41.1조원↓): ’22년(103.6조원) ⟶ ‘24(62.5조원)▹ 근로소득세(3.6조원↑): ’22년(57.4조원) ⟶ ‘24(61조원)
가계 부채 위험 수준 진입
이제 목전으로 부채발 경제위기가 다가왔다. 코로나발 경기충격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코로나 부채가 고금리 충격의 직격탄을 맞아 잠재부실이 현실화될 위험에 놓여있다.
기업대출로 분류되는 개인사업자대출은 엄밀히 따지면, 가계대출이다. 따라서, 개인사업자대출을 포함한 실질 가계부채는 2019년 2,050조 원에서 2024년 2,639조 원으로 2019년 이후 발생한 코로나부채만 약 600조원에 육박한다.
취약 자영업자대출(소득 30% 미만·신용점수 664점 이하 다중채무) 연체율은 2022년 5.3%에서 작년 11.2%로 급증하는 등 본격적인 부실확산 국면에 진입한 상태다. 보편적 금리 수준이 속도감 있게 내려가고 내수업종의 매출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 한, 부채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금융 수준으로 전락한 국내은행들도 결코 팬데믹 이자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내은행들도 팬데믹 위기에 편승해 매년 60조 원 안팎의 역대급 이자폭리를 거둬들였다. 서민경제가 어려울 때 우대금리를 확대하고 가산금리를 낮춰 고금리 충격을 완화하기보다는 이자장사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가계의 부채건전성이 나빠져 부채발 경제위기가 발현하면, 결국 은행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 국내은행 이자이익
▹ ’20년(41.2조원) ⟶ ‘22년(55.9조원) ⟶ ’24년(60조원)
고강도 금리인하+강력한 민생 추경을
최근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재난·재해 대응, 통상·AI 경쟁력 강화, 민생지원 분야에 집중 투입하는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경’ 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게 산업·통상 지원 대책인지, 경기부양책인지, 그것도 아니면 민생 추경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정도 '비빔밥 추경'으로 만성적 내수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무능이자 죄악이다.
내수경제가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 상황에 직면해 있는데, 10조원짜리 졸속 추경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설령, 민주당이 제안한 35조원 규모의 민생추경을 단행한다 해도 작금의 민생대란 사태를 진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경제 수장의 상황인식이 안일하기 짝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필수 추경'이 아니라, 내수경기 부양책을 탑재할 '강력한' 민생추경'이다. 민생추경은 내수 불황을 타개할 ▲소득보전대책 ▲소비진작책 ▲코로나부채 대책 등 구조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근본 대책들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자영업 위기가 화급을 다투는 상황에서 정부가 당장 쓸 수 있는 카드는 '지역화폐 정책'뿐이다. 정부가 예산으로 2조원을 지원하면, 지방정부가 매칭해 사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30조원 안팎의 지역화폐 공급이 가능해진다. (지역화폐는 지역 내 가맹점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면 결제액의 최대 10%를 할인해주거나 캐시백 등으로 돌려주는 상품권 개념이다.) 할인 금액을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한다. 최소한 소비 불황의 원천인 지역상권의 매출증대를 견인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건전재정 기조를 전면 폐기하고 중장기 균형 재정의 틀 안에서 민생확대 재정을 추진해야 한다. 진짜 건전재정은 경기가 어려울 때 재정을 풀어 민생을 살려내고, 경제 활력을 복원해 다시 곳간을 채우는 전문가적 역량이다.
민생추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은행의 강력한 금리인하 정책이다. 가장 확실한 부채대책은 금리인하를 통해 국민경제가 짊어진 '보편적' 이자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강력한 금리인하 로드맵을 예고하고, 단계적 금리인하에 착수해야 한다.
부동산경기가 이미 하강사이클에 진입한 상황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하면, 기존대출의 이자부담 경감 효과가 신규대출 증가 위험을 압도한다. 물론,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 조합이 전제되어야만 금리인하가 가능해진다. 정부는 가계부채의 양적 팽창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한국은행이 과감한 금리인하에 나설 수 있는 제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환율 상승 걱정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면 환율 상승(원화가치 절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내외 금융환경은 금리를 통해 환율을 제어할 수 있는 구간을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글로벌 증시충격이 발현하면, 금리를 올려도 환율이 상승하고, 금리를 내려도 환율이 상승하게 된다. 한은이 환율에 발목이 잡혀 금리인하에 나서지 못한다면, 결국 환율도 잡지 못하고 부채도 잡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를 잡을 '골든 구간'(2015년~2018)에서 금리인상 시기를 놓쳐 가계부채 불길에 기름을 붓는 우를 범한 바 있다. 이번만큼은 금리를 인하할 골든타임을 놓쳐 부채발 경제위기가 발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실기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부채대란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끝으로, 민생긴축 압력이 근로소득세를 통해 소득충격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차단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근로소득세가 증가하는 현상은 현행 소득세법에 제도적 결함이 있다는 방증이다. 즉, 세율구간이 물가를 반영하지 못하면,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세금이 불어나는 ‘자연증세’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실질소득이 그대로인데 세금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다.
※ 송두한 민주금융포럼 상임대표(경기대 겸임교수)는 NH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장을 지냈다. 미 오토바인 대학교 Visiting Assistant Professor를 역임했다. 저서는 '서브프라임 버블진단과 향후 파급효과 진단'(2007), '주택버블주기 진단과 시사점'(2012), '경영분석을 위한 고급통계학'(201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