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루·샤 만져본 적 없어도… 이론 수업만 듣고 ‘명품감정사’
‘합격률 98%’ 업체, 25강 수강 후 시험 60점 이상 땐 자격증 줘
중고 명품 거래 늘며 감정 수요↑… 플랫폼간 기준 달라 분쟁도
“명품 감정에는 많은 경험·노하우 필요… 충분한 실무 뒤따라야”

“십자 나사가 들어가 있으면 가품입니다. 나사 형태와 상품에 각인된 브랜드 로고 등을 살펴보면 가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인된 글자를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비교해보면 됩니다.”
해외 고가 브랜드(명품) 감정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한 교육업체 강의에 나온 프랑스 패션 브랜드 샤넬 가방 감정 방법이다. 최근 패션업계가 이른바 ‘짝퉁’으로 불리는 가짜 명품과의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문화일보 기자가 직접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강의를 수강해 확인한 내용이다. 명품 관련 재판매(리셀)와 온라인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덩달아 가품 논란도 끊이지 않아 소비자 피해가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상품의 진·가품 여부를 구별하는 명품감정사의 전문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명품감정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강의 제공업체에 따라 일부 차이는 있지만, 보통 온라인으로 기본 이론 수업을 수강하면 약 한 달 만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과정은 업체마다 다른데, 최종 시험 합격률이 90%를 넘어서는 경우가 적지 않고 제공되는 자격증 또한 민간 자격증이어서 다소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명품감정사 자격증은 사설기관인 한국자격증협회에서 인증하는 ‘명품감정사’, 한국명품감정원에서 제공하는 ‘명품감별사’ 등으로 나뉜다. 이 외 기타 사설업체에서 진행하는 감정 수업과 자격증도 난립해 있다.
본보 기자가 수강한 온라인 강의는 총 25강으로 구성돼 있었다. 4주 안에 60% 이상 듣고 온라인 시험을 쳐서 60점 이상(100점 만점) 성적을 거두면 명품감정사 1급을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 명품·가품의 정의와 유통 경로 등 약 13분짜리 이론 수업 4강과 시계 기본용어와 조작 원리 등 20분여 수업 4강, 주요 시계 브랜드 인기 모델에 대한 강의 5강 등이 포함됐다. 각 브랜드 가품을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용강의는 에르메스·샤넬·루이비통·구찌·프라다·디올·고야드 등 가방 정품 확인법 30분여 총 6강과 롤렉스 예시의 시계 정품 확인법 13분여 강의 총 6강으로 구성됐다.
특히 샤넬 가방 감정법 강의는 △샤넬의 역사 △자주 쓰이는 가죽 △시리얼 넘버 △개런티카드 △홀로그램 △나사 등으로 이뤄졌는데 총 강의 시간이 26분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이론 수업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강사는 “진품과 가품 샤넬 제품의 홀로그램을 비교하면 로고의 간격과 글자체, 사선 등이 다를 수 있다”고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이 방법에 의하면 샤넬 진품과 가품은 감정사가 아닌 일반인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했다. 모든 교육을 수료한 뒤 진행되는 온라인 시험은 몰래 교재나 메모를 펴둔 채 치러도 문제가 없었다. 본보 기자가 수강한 온라인 강의업체의 경우 명품감정사 자격증 합격률이 무려 98%에 달했다. 사설업체 관계자들은 “교육만 수료한다면 대부분 한 번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간혹 재시험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면 거의 한 번에 합격한다”고 말했다.
명품 업계는 감정 자격증뿐 아니라 업계 경력과 공신력 있는 명품 감정업체 인증 등 다양한 기준을 통해 감정사를 검증한다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회사 자체적으로 감정 시험을 쳐서 능력이 검증된 명품감정사를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적지 않은 상품들이 시즌마다 로고 모양이 달라지는 등 디자인이 자주 바뀌어서 진품과 가품을 분별하려면 꾸준한 정보 습득과 관련 학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신생 온라인 플랫폼은 시스템 구축 미비로 상대적으로 역량 있는 명품감정사를 채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에서 감정사 능력을 검증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 신생 플랫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실정”이라며 “이에 전문성을 갖춘 명품감정사가 크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명품감정사 수업이 공인된 기준 없이 대부분 도제식으로 이뤄지면서 플랫폼 간 정품 감정 기준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 명품 거래 업체에서 진품으로 인정됐던 상품이 다른 업체에선 가품으로 판정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단순 중개 역할에 그치는 플랫폼들도 생겨나 소비자가 가품을 구매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22년 한 명품 플랫폼에서 스위스 브랜드 태그호이어 시계를 200만 원을 주고 구매한 소비자 A 씨는 지난 2월 시계 배터리를 갈기 위해 백화점 정식 매장에 들렀다가 가품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해당 플랫폼의 자체 감정원을 통해 추가 감정을 받았지만 결국 ‘감정 불가’ 통보를 받고 분통을 터뜨렸다.
플랫폼 업계는 채용 후에도 자체 교육을 충분히 진행하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설명이지만, 검수 물량이 늘면서 시간에 쫓기는 업체들이 교육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할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명품감정원 관계자는 “교육 후에도 충분한 실무 경험이 필요하다”며 “명품 감정은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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