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와 참상 사이 언론 보도의 딜레마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래전 나는 회사 화장실 변기에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었다.
여론 통제라는 반발에 따라 이 규정들은 완화되었지만, 언론은 여전히 희생자의 주검을 보도하지 않는 것을 관행으로 삼고 있다.
전설적인 분쟁 전문기자 마리 콜빈은 "우리는 역사의 첫 번째 기록을 전달한다"라며, 갈기갈기 찢긴 시신을 보여주면서라도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여론을 형성하고 행동을 촉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나는 회사 화장실 변기에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었다. 사회부 수습기자 첫날, 생활고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무명 연극배우의 얼굴 사진을 구해오라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빈소는 눈물바다였고 유족은 사진 제공을 원치 않았다. “그림 없이 무슨 기사가 되냐, 영정 사진이라도 들고 왔어야지!”라는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비극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일 때 소구력이 더 크다는 소리였을 것이다. 나는 화장실로 숨어들어 잘 모르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비극을 얼마나 더 접하고 어디까지 들춰내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당일 밤새 잠들지 못하고 사고 현장의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다가 오래전 그날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간 언론인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몇몇 언론은 현장의 처참한 모습을 상세히 보여주려 했다. 찬 바닥에 어지럽게 누워 있는 희생자들, 그들의 하얀 얼굴, 축 늘어진 팔과 다리, 누군가 얼굴을 덮어준 주검의 모습은 참담한 현장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희생자에 대한 예의가 없다’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는 등의 반발이 잇따르면서 해당 언론사들은 현장 장면이 담긴 기사와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사고, 자연재해, 전쟁 등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딜레마에 빠진다. 한편에서는 희생자와 유가족의 존엄과 프라이버시가 우선이므로 주검을 포함한 적나라한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걸프전 당시 미국 정부는 사상자 근접촬영을 금지했고 사망자 사진을 보도할 때도 72시간 뒤 또는 유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알린 후로 제한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에도 희생자 근접촬영을 허용하지 않았다. 여론 통제라는 반발에 따라 이 규정들은 완화되었지만, 언론은 여전히 희생자의 주검을 보도하지 않는 것을 관행으로 삼고 있다. 다른 한편 언론이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현실을 왜곡·미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전설적인 분쟁 전문기자 마리 콜빈은 “우리는 역사의 첫 번째 기록을 전달한다”라며, 갈기갈기 찢긴 시신을 보여주면서라도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여론을 형성하고 행동을 촉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적나라한 시각자료 사용 금지’ 조항 추가하면 끝인가?
참사 보도를 둘러싼 윤리적 판단에서 이처럼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그 상황에서 희생자의 존엄, 프라이버시와 국민의 알권리 중 무엇이 ‘더 큰 선(善)’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뉴욕타임스〉는 2022년 3월7일 관행을 깨고 우크라이나 이르핀에서 러시아의 공습으로 사망해 길가에 쓰러져 있는 일가족 얼굴이 담긴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보다는 전쟁 희생자의 모습을 직접 묘사함으로써 전쟁의 처참함을 알리는 일이 더 큰 선이자 더 공적인 애도의 방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언론인은 또 다른 비극의 현장에 가게 될 것이다. 이태원의 경험은 차후 참사 보도에 어떤 가르침을 줄 것인가? 그냥 ‘적나라한 시각자료(특히 주검) 사용 금지’ 조항을 보도 가이드라인에 추가하면 끝인가? 중요한 것은 판단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런 판단에 이른 과정일 터이다. 타인의 비극을 다룰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어떤 결정을 했는지, 그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평가는 어떠했는지 기록해놓을 필요가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참사 희생자의 개인정보 공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앞으로도 비극의 현장에서 수십 년 전 내가 했던 수준의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