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기술 막히자 선택한 길, “직접 만든다”
대한민국 해군은 1980년대부터 공기부양형 상륙정 도입을 추진했고, 1989년 국내 조선소가 제작한 시제함 솔개-611(LSF-I)을 통해 첫 시험 운용에 나섰다. 그러나 파고를 견디는 내항성과 탑재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1척만 건조되고 사업은 중단됐다. 이후 러시아제 무레나 공기부양정을 도입해 솔개 621급으로 운용했지만, 잦은 고장과 부품 수급 문제로 상륙작전에 제약이 컸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국산 LCAC 도입도 타진했으나, 핵심 기술 이전 불가 방침에 부딪히면서 계획은 좌초됐다.

5년 설계·건조 끝에 탄생한 솔개 632급
기술이전이 막히자 우리 군과 방산 업계는 ‘불리한 조건의 라이선스 생산’ 대신 독자 개발을 선택했다. 2002년 9월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이 주도해 기본 설계에 착수했고, 약 5년간의 개발·건조 끝에 2007년 솔개 632급(LSF-II)이라는 국산 공기부양정이 탄생했다. 선도함 두 척은 독도함 취역 시기에 맞춰 전력화되며 한국 해군의 초수평선 상륙작전에 투입되기 시작했고, 이후 추가 5척이 건조돼 총 7척 전력이 계획·배치되고 있다.

‘작지만 센’ 국산 공기부양정의 스펙
솔개급 고속상륙정(LSF-II)은 전장 약 28m, 경하 95톤급의 LCAC형 공기부양정으로, 만재 배수량은 약 155톤 수준이다. 최대 속도는 40노트, 시속 약 74km에 달하며, 전차 1대와 병력 24명 또는 최대 150명 규모의 병력을 탑재할 수 있어 독도함·마라도함에서 해안선 밖으로 병력과 장비를 신속히 투입하는 역할을 맡는다. 무장으로는 12.7mm 중기관총 2정을 탑재하고, 야간투시장비와 개량된 스커트 구조를 적용해 내항성과 야간 작전 능력을 높였다.

부품 국산화와 고장률 개선이 만든 신뢰도
LSF-II 개발 과정에서 해군이 겪었던 가장 큰 고민은 신뢰성이었다. 러시아제 무레나를 운용하면서 부품 수급 지연과 높은 고장률로 출동 가능 전력이 제한되자, 새 공기부양정에는 부품 국산화와 정비 편의성 향상 요구가 강하게 반영됐다. 부양·추진 계통을 통합 설계하고, 주요 부품을 국내 생산 체계로 돌린 결과 정비 효율성이 크게 개선됐고, 실전 운용에서의 고장률도 기존 장비보다 낮아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방위사업청은 부품 국산화 활성화와 중소·벤처 방산기업 참여 확대를 위해 솔개급 관련 부품·장비 전시회를 열어 국내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LCAC 대비 비용·효율 경쟁력
솔개 632급은 성능 측면에서 미 해군 LCAC와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생산 단가는 해외 동급 장비 대비 약 30% 수준이라는 평가가 국내 군사 전문 매체와 분석 기사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척당 건조단가는 공개 자료 기준으로 수백억 원대이며, 2차 사업에서 HJ중공업이 수주한 3·4호정은 척당 약 762억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운영·정비를 포함한 생애주기 비용까지 감안하면, 미국산 LCAC보다 비용 대비 효율성이 높아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Batch-II로 이어지는 상륙전력 확장 계획
해군과 방위사업청은 독도급 2번함 마라도함 취역에 맞춰 LSF-II 2차 사업을 추진했고, 2023년 솔개-636·637호정 진수 및 전력화 과정을 거치며 고속상륙정 전력이 계속 보강되고 있다. 이어 고속상륙정 Batch-II 사업은 향후 대형수송함·동원선박에 탑재해 적 레이더·유도탄 사거리 밖에서 초수평선 상륙돌격이 가능한 차세대 상륙정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사업은 2019년 선행연구와 개념 설계, 2021년 ROC 결정, 2022~2023년 소요 검증을 거쳐 2025년 방추위(사전 타당성 심의)를 통과하는 수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 시장이 주목하는 ‘K-공기부양정’
국내 기사·분석에 따르면 솔개 632급은 중동을 포함한 해외 해군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안·도서 지역이 많은 국가, 상륙작전 능력 강화가 필요한 국가들은 상륙함·상륙주정과 함께 공기부양형 상륙정을 패키지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의 독도급·마라도함 + 솔개급 조합은 “실전 운용으로 검증된 세트”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미국·러시아 장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국가 입장에서는, 한국산 공기부양정이 기술 이전·공동 생산 가능성이 있는 대안으로 거론된다.

“기술 봉쇄의 역설”이 만든 자주국방 사례
국내 칼럼에서는 솔개급 개발사를 “기술 봉쇄의 역설”로 표현하며, 미국의 기술이전 거부가 결과적으로 한국의 독자 개발 의지를 자극한 사례로 소개한다. 1980년대 미국 LCAC 도입 시도 무산, 러시아 무레나 운용 난항, 그리고 독자 개발 전환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한국 해군은 자국 환경과 작전 개념에 맞는 공기부양정을 확보하게 됐다. 이는 단순히 장비 한 기종을 국산화한 것을 넘어, “상륙 수송 방식까지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단계로 올라선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 대신 ‘자기 답’을 고른 선택
결국 솔개 632급(LSF-II)의 가치는 숫자 몇 개가 아니라, 선택의 방향에서 드러난다. 미국 LCAC 기술 이전을 기다리거나, 러시아 장비에 계속 의존하는 대신, 한국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체 설계·건조로 방향을 튼 결과, 독도급·마라도함과 연계된 상륙전 체계를 온전히 자국 기술로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이 공기부양정은 지금도 해군 상륙훈련과 연합작전에서 실전 운용을 통해 성능을 검증받고 있고, Batch-II와 잠재적 수출 기회까지 열어 놓은 상태다. “너무 강해질 것이 두려워 안 알려 준 기술”이라는 과장된 표현을 걷어내면, 남는 것은 미국의 기술 봉쇄를 계기로 ‘자기 방식의 해답’을 만들어낸 한국식 자주국방의 한 페이지라는 사실이다.
Copyright © 저작권 보호를 받는 본 콘텐츠는 카카오의 운영지침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