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무섭습니다”…7세 소년, 혹독한 조기교육 끝에 벌어진 일[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루돌프 황태자 편]
일곱 살부터 혹독한 제왕 교육 시달리고
냉정한 부모 아래 마음의 병만 깊어지다
사랑도 이루지 못한채 모욕감만 겪은 뒤
아쉽고 안타까운 퇴장 한 세계가 저물다
![루드비히 앙게러, 헝가리군 제18보병연대 명예 연대장 옷을 입은 루돌프 황태자(4세 무렵·일부 확대), 1862 [Self-scanned(Source),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 위키미디어커먼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1/ned/20260501235233936cqek.png)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문화예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 ‘원조 맛집’입니다.■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새로운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으로 쓰였습니다.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는 일곱 살 무렵부터 제왕 교육을 받았다.
다만 말이 교육일 뿐, 실제로는 아동 학대와 다를 바 없었다. 루돌프는 매일 새벽 권총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놀란 가슴을 다독일 틈도 없이 찬물을 맞았다. 봄과 가을이면 산에 올랐다. 한 번도 간 적 없는 곳만 골라 덤불을 헤쳤다. 제일 높은 봉우리 또는 한참 깊은 계곡에 닿으면, 그때부터는 또 홀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걷고 뛰는 내내 가시에 박히고, 벌레에 물려도 호소할 이는 없었다. 약 올리는 까마귀, 주변을 맴도는 여우를 보고도 다독여줄 사람 한 명 없었다. 여름은 여름대로 괴로웠다. 이때가 되면 총을 챙겨 숲으로 가야 했다. 눈에 보이는 야생동물을 무작정 쏴 죽여야 했다. 힘이 부쳐서, 죄책감이 밀려와서 울먹인들 역시나 위로해 줄 어른은 없었다.
그런 루돌프에게 겨울은 가장 가혹한 계절이었다.
미끄러운 빙판을 밤낮으로 걷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에서 끝도 없이 행군을 해야 했으니. 살얼음에도 피부는 베일 수 있다. 발바닥은 피와 땀으로 푹 젖기 십상이었다. 차라리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아직 어리광에 더 익숙할 소년으로는 참혹한 나날이었다.

황제는 강건한 군인형 인간이 돼야 합니다.

시간이 흘렀다.
루돌프는 클수록 그의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1세를 닮아갔다. 줄러 벤추르가 그린 <장군의 갈라 유니폼을 입은 루돌프 황태자>를 보면 제법 카리스마도 풍긴다. 모피로 된 흰 망토와 황금빛 장식의 정복은 있는 그대로 멋스럽다. 벨트와 깃털, 가구는 빛 아래서 반짝인다. 혹독한 수업이 효과를 본 것일까. 그럴 리 없다. 루돌프는 평생을 지옥에서 살았다. 죽을 때까지 약물과 우울증, 스트레스성 이상 증상에 시달렸다. 알고 보면 이 그림에도 서글픈 비밀이 서려 있다. 그것은….

1858년, 8월. 루돌프가 태어나는 순간 제국에서는 환희의 나팔 소리가 울려퍼졌다.
루돌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그리고 황후 시씨(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여공작) 사이의 첫아들이었다. 첫째는 딸, 둘째도 딸. 당시 시선으로는 결혼 생활 4년 만에 낳은 소중한 후계자였다. 루돌프는 외려 부모가 안고 어르는 철부지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할 것 같았다. 확실히 귀한 몸이었던 만큼, 보통의 가정 환경이었다면 충분히 이를 염려할 법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루돌프를 둘러싼 어른 중 보통이라고 부를 만한 이는 없었다. 비극은 예고돼 있었다.

루돌프는 친할머니 조피 대공비 밑에서 컸다.
“강하게 커야 한다.” 조피의 육아관은 이처럼 쉽고 단순했다. 조피는 본인부터도 기가 셌다. 오죽하면 “궁정의 진짜 장군감은 조피뿐”이라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루돌프의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1세? 그는 자기 어머니이기도 한 조피의 억센 손자 양육에 토 한 번 달지 못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유독 조피에게 약했다. 그는 조피에게 빚이 있었다. 조피는 진작부터 특유의 카리스마로 궁을 휘어잡았다. 그런 조피의 장남이었기에, 별다른 견제 없이 황위에 오를 수 있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프란츠 요제프 1세 또한 아들 루돌프만큼은 더 특별히 다뤄야 한다고 믿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본인부터도 매일 새벽 4시부터 서류 뭉치와 싸웠다. 늦은 밤까지 회의를 하고, 잠들기 직전까지도 서명용 펜을 들었다. 그는 대체로 성실한 군주였다. 그렇게 성실한 만큼 더 고지식한 지도자였다. 성과와 업적에 대해선 평이 갈리지만, 평생을 지독한 원칙주의자로 살았다는 점만큼은 확실했다.

루돌프는 그런 자신의 뒤를 이어야 할 차기 황제이지 않은가.
왕관이 얼마나 무거운지, 정복과 군화가 얼마나 묵직한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루돌프가 어릴 적부터 고문과도 같은 교육을 받은 것. 이는 보통이 아닌 할머니와 아버지의 합작품이었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그러는 동안, 루돌프의 어머니 시씨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시씨는 아들 루돌프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그녀대로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시씨는 시어머니 조피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둘은 서로를 아예 원수처럼 대할 지경이었다. 불화의 역사는 깊었다. 조피는 원래 며느리 시씨에게 호감이 있었다. 예쁜 외모, 귀염성 있는 태도를 마음에 들어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한 지붕 아래서 살기 시작한 후부터는 매번 실망만 했다. 조피가 볼 때 시씨는 어리숙한 철부지였다. 너무 무르고, 약해보이기만 했다. 실제로 시씨는 여렸다. 눈물도 많았다. 칼 같은 황실 예법을 따르는 일 또한 버거워했다. 그럴 만도 했다. 시씨는 원래 바이에른 왕국의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던 사랑둥이였으니. 조피는 그런 시씨를 직접 가르쳤다. “공주 놀이를 할 시간은 끝났다”고 나무라고, “제국의 어머니가 된 만큼, 이제는 힘들고 귀찮은 규범도 지켜야 한다”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다만, 조피가 생각하기에 만족스러운 변화는 없었다. 따라오는 건 마른 한숨이었다.
그러는 동안, 시씨의 마음에도 당연히 불길이 일었다.
낯선 환경, 허례허식으로 꾸며진 규율, 졸졸 따라다니며 다그치는 시어머니…. 시씨는 여린 만큼 섬세했다. 시씨는 격려와 다독임을 원했다. 반대로 내려꽂히는 건 감시와 미행의 기척이었다. 그녀는 매일 앓아누웠다. 좁은 계단 앞에서 숨이 막히는 폐소공포증에도 시달렸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조피의 아들로서, 시씨의 남편으로서도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 서류 뭉치에만 파묻혀 있을 뿐이었다.

시어머니 조피와 며느리 시씨 사이 충돌이 극에 달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시씨의 큰딸, 아기 조피의 죽음이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시씨는 1857년 헝가리에 간 적이 있었다. 장녀 아기 조피, 둘째 딸 기젤라도 이들 옆에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이상하게 아기 조피와 기젤라가 아팠다. 고열로 눈이 풀리고, 복통으로 먹은 것을 쏟아냈다. 최악 사태까지 왔다. 그래봤자 고작 두 살이었던 첫째 딸, 아기 조피의 몸이 갑자기 식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는 돌연사였다. 그뿐인가. 갓 출생한 기젤라 또한 죽음 문턱까지 다녀왔다. 병명은 장티푸스로 추정되고 있다. 시어머니 조피는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며느리 시씨에게는 아기를 키울 능력 자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은 1년 뒤, 시씨가 루돌프를 낳자 그 핏덩이를 ‘구출하듯’ 자기 안방으로 데려온 이유였다. 사실, 조피는 앞서 아기 조피와 기젤라 또한 자기 고집대로 키우고 있었다. 조피는 애초 두 아이를 헝가리로 데려가는 일 또한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필이면 그런 상황, 그런 분위기에서 사달이 나고 만 것이었다. 시씨는 그렇게 첫째 딸을 영영 잃었다. 둘째 딸은 거의 죽을 뻔했으며, 이 일 직후 낳은 신생아 아들은 그대로 빼앗겨버렸다. 심신이 피폐해지지 않을 리 없었다.
시씨도 나름대로 억울한 점은 있었을 터였다.
시씨는, 그럼에도 그냥 다 내려놓았다. 황후 역할도 유기하고, 자식을 향한 관심 또한 끊어버렸다. 강하지 못한 심성, 숨통을 조이는 환경, 밀려오는 불운과 우울증이 낳은 결과였다.

불같은 할머니, 벽같은 아버지, 그리고 맥 빠진 어머니.
루돌프는 이처럼 보통이 아닌 어른들 틈에서 기댈 곳 없이 클 수밖에 없었다. 루돌프는 그나마 두 살 차인 누나 기젤라에게 의지했다. “할머니가 두렵다”거나, “아버지가 너무 무섭다”는 식으로 울먹이기도 했다. 기젤라는 이를 안쓰럽게 봤다.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루돌프를 후계자가 아닌 여린 막내아들로도 봐달라”고 간청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젤라 또한 곧 남편을 구해 떠났다. 루돌프는 외로움에 절여졌다. 몸은 커졌지만, 마음은 점점 작아졌다.

루돌프는 1881년에 벨기에 공주 스테파니와 연을 맺었다.
정략결혼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셋. 신부는 열일곱이었다. 루돌프와 스테파니의 관계는 나쁘지 않아보였다. 둘은 서로를 애칭으로 불렀다. 함께 여행을 가고, 아기자기한 선물도 주고받았다. 다만 이는 굳이 따지자면 예의일 뿐,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루돌프는 스테파니의 외모와 배경에 만족하지 않았다. 스테파니는 루돌프의 침울함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 마음을 외도 등 문란함으로 풀고자 하는 태도 또한 매우 못마땅해했다. 부부는 곧 딸 마리를 안았다. 그리고, 이 일은 둘 사이 모른 척 일고 있던 균열을 더 자극해 버렸다. 아들이 아니라 딸…. 루돌프는 실망했다. 짐짓 스테파니를 위로하는 척했지만,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루돌프는 그날 이후 술을 더 많이 마셨다. 바깥을 더 자주 나돌았다. 언젠가는 “어릴 적부터 지금껏 뜻대로 이뤄진 일이 하나도 없다“는 식으로 말하며 울음도 터뜨렸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스테파니는 갑작스럽게 큰 병을 앓았다.
스테파니는 루돌프의 무책임한 사생활을 의심했다. 증상이 성병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간신히 살았지만, 더는 임신을 할 수 없게 됐다. 실망에 실망이 포개졌다. 루돌프와 스테파니의 관계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루돌프의 얼굴은 눈에 띄게 흐릿해졌다.
그런 루돌프 앞에 한 여인이 등장했다. 어느 백작 부인이 소개한 상대, 열세 살 밑의 마리 폰 베체라 남작 부인이었다. 루돌프는 생애 처음으로 진짜 사랑에 빠졌다. 아니,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해버렸다. 그녀 앞에서는 세상도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괴로운 악몽도 꾸지 않았다. 어릴 적 잠을 깨운 권총 소리, 덫에 걸려 신음하는 짐승, 할머니와 아버지의 실망 어린 눈빛 중 무엇도 나타나지 않았다. 루돌프는 빛나는 사랑에 눈이 멀었다. 그는 교황 레오 13세를 은밀하게 찾았다. 천년의 사랑을 이제야 만났으니, 과거 스테파니와의 결혼 따위 무효로 인정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교황이 이를 받아줄 리 없었다. 그저 당황스럽고, 황당하기만 한 해프닝으로 보일 뿐이었다.

어쩌겠는가.
교황은 루돌프의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이 사연을 알려버렸다. 일각에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소식을 접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루돌프에게 당장 궁으로 올 것을 명령했다. “나는… 이제 너란 녀석의 얼굴조차 보기가 싫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루돌프 앞에서 차갑게 말했다. 루돌프는 고개를 숙인 채 또 몸을 떨고만 있었다.
얼마 후, 프란츠 요제프 1세와 루돌프는 같은 자리에서 신임 대사를 만나야 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그때도 루돌프의 인사를 철저히 무시했다고 한다. 신하와 시종들 틈에서조차 술렁임이 일 정도였다.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수치심이 떨었던 만큼, 루돌프 또한 끓어오르는 굴욕감에 울컥했다. 끝까지 가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건, 핏빛 파국뿐.

탕.
1889년 1월30일, 빈에서 25㎞가량 떨어진 숲 지역 마이어링의 사냥용 별장. 그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루돌프의 시종이 별장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문고리를 살짝 돌렸다. 이는 일찌감치 꽉 잠겨 있었다. ‘일이 터졌다.’ 시종은 직감했다. 서늘한 공기, 왠지 모르게 비릿한 공기가 팔다리의 소름을 일깨웠다. 시종은 망치로 문짝을 때려부쉈다. 안쪽으로 손을 넣어 문을 쪼개듯 열었다. 방은 어두웠다. 창문은 모두 닫혔고, 커튼도 바닥 끝까지 내려가 있었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는 건… 루돌프. 정확히는, 이미 차가워진 루돌프의 몸이었다. 그는 앞으로 몸을 기울인 채 굳어가고 있었다. 탁자에는 거울과 유리잔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루돌프만 있지 않았다. 침대 위에는 다른 시신이 있었다. 시종은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루돌프가 “나의 진정한 빛”이라고 칭한, 베체라 남작 부인이었다. 어떻게 손 쓸 도리도 없었다. 금빛으로 물든 세상, 그것은 새빨갛게 바뀌며 막을 내렸다. 당시 루돌프는 서른 살, 베체라 남작 부인은 열일곱 살이었다. 이 일은 훗날 ‘마이어링 사건’으로 불리게 된다.
루돌프가 생애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루돌프 혼자, 또는 베체라 남작 부인과 둘이서 모든 일을 계획했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진보 성향의 루돌프를 위협적으로 본 보수파 주도 암살설, 독일 등 외국 요원 개입설 등도 거론되곤 한다. 두 사람이 일말의 가능성도 없이 죽어있었다는 것. 쏟아지는 설과 추측, 증언과 회상 틈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일단 이것뿐이다.

어머니 시씨에게 먼저 소식이 닿았다.
시씨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의 기록에 따르면, “간신히 힘을 모아”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이 비보를 알려야 했다(할머니 조피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충격에 빠진 채 집무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당시 프란츠 요제프 1세를 본 인사는, 그의 기적과도 같은 자제력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훗날 회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늦었다.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고 말도 하지 못할 만큼 늦은 후였다.

끝으로, 다시 줄러 벤추르의 <장군의 갈라 유니폼을 입은 루돌프 황태자>로 돌아가 본다.
이 그림은 1891년 작이다. 즉, 루돌프가 이미 죽고 세상을 떠난 뒤 2년 후에 완성된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그의 불운을 알고 보면, 이것은 황태자의 위엄만을 부각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루돌프의 눈빛은 슬프다. 진지한 표정은 이제 침울해보인다. 선택받은 존재로의 사명감 또한 흐릿해보인다. 그가 보는 건 위다. 정면, 당장의 현실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눈길을 주지 않는다. 화려한 금칠 의자와 거리를 두고, 발 또한 외려 바깥쪽을 향한다. 슬쩍 보이는 하늘에는 먹구름이 깔렸다. 여러 해석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는 이토록 서글픈 지상에서 떠오를 채비를 하는 듯도 하다.
어른들은 루돌프를 가혹하고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루돌프는 그저 사랑과 관심만으로도 정말 쉽게 다룰 수 있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그는 여린 만큼 순하고, 눈물이 많은 만큼 섬세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어른들의 욕심과 무책임이 한 인간, 한 운명을 비틀어버린 것이었다.
나카노 교코,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한경arte
Barkeley, Richard., The Road to Mayerling: Life and Death of Crown Prince Rudolph of Austria., London: Macmillan
Hamann, Brigitte., Kronprinz Rudolf: Ein Leben., Vienna: Amalthea
루이제 린저, 속 생의 한가운데,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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