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빗슈와 격투가 처남 KID의 이야기

“누가 그딴 거 해 달래요?”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한 장면이다. 백강혁 교수(주지훈)가 남수단으로 급파된다. 이현종 대위를 살리기 위해서다. 여기서 장관 2명과 열띤 화상 회의를 벌인다. 환자 수송 대책이 지지부진한 탓이다.
백강혁 교수 “최대한 빨리 이송해야 합니다. 상태가 심각합니다.”
국방부 장관 “그래서 우리 국방부가 수송기에 의료 장비를 설치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기간은…. 2주라네요.”
백 교수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걸로 시체 운송하면 되겠네.”
장관 “시체 운송이라뇨. 무슨 막말을.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국적기 업체에 의자 떼 달라고 문의도 했지만.”
백 교수 “누가 그딴 거 해 달래요? 에어 앰뷸런스요, 에어 앰뷸런스.”
장관 “그게 뭡니까?”
장관2 (보건복지부) “백 교수님. 에어 앰뷸런스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비용 문제가 있습니다. 예산이 최대로 3억에서 5억인데, 그거는 적어도 7~8억이 드는 상황이라서.”
백 교수 “지금 돈이 문젭니까? 나라를 지키다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있는데.”
긴박한 순간에 등장한 에어 앰뷸런스. 그 말에 떠오르는 야구 선수가 있다.

암 판정을 받은 젊은 격투가
어느 격투가의 얘기다. 야마모토 노리후미라는 이름이다. 흔히 KID(키드)라고 불린다.
레슬링 선수로 컸다. 꿈은 올림픽 무대였다. 그러나 이루지 못했다. 대신 파이터로 전향했다. K-1 HERO'S, DREAM 같은 링에서 활동했다. 나중에는 UFC까지 진출했다. 경량급의 간판스타였다.
인생 경기가 있다. K-1 MAX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 마사토와의 일전(2004년)이다. 체격 차이가 꽤 나는 상대다. 163cm/66kg의 몸집으로 174cm/70kg과 붙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말이 많았다. 게다가 불리한 입식(K-1) 룰이었다.
그럼에도 선전을 펼쳤다. 다운도 한 차례 시켰다. 판정패로 끝났지만, 눈물겨운 경기였다. 순간 최고 시청률이 31.6%까지 올라갔다. NHK의 <홍백가합전>을 앞질렀다.
그렇게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이다. 갑자기 몸에 이상이 찾아온다. 의사를 만났다.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된다. 위암이었다.
처음에는 쉬쉬했다. 가족들에게만 알렸다.
여기서 그의 집안을 알아야 한다. 유명한 레슬링 가문이다. 아버지 야마모토 이쿠에이는 뮌헨 올림픽에 출전했다. 누나와 여동생은 모두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다. 하다못해 어머니 역시 여성 최초로 심판 자격증을 딴 ‘관계자’다. (혈액암으로 타계했다.)
가슴 아픈 사연에 누나가 먼저 나섰다. 17세에 세계를 제패한 야마모토 미유다. 역시 격투가 엔센 이노우에의 부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낸다. 나이 41세 때다. 이유는 오직 하나다. 남동생을 트레이너로 고용하기 위해서다. ‘내 세컨드를 봐 달라. 그럼 적어도 그 시간 동안은 필사적으로 살 것 아니냐.’ 하는 뜻이었다.


작은 사위의 등장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다. 건강은 몇 년 새 급격히 악화된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 가혹한 선고가 내려진다.
가족회의가 열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동생이고, 오빠다. 마지막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천근만근의 무거운 얘기들이 오간다. “남은 시간, 편안한 마음으로 아내와 아이들(1남 1녀)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자.”
그런 마음이 모인다. 장소도 정했다. 괌이다. “나중에 은퇴하면 여기서 살고 싶다.” 환자가 평소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마저도 쉽지 않다. 도쿄에서 비행기로 3시간 30분 거리다. 그것도 견디기 어렵다. 환자의 상태가 그만큼 악화됐다.
가족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3살 아래 여동생은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그녀의 남편이다. 그러니까 환자의 매제다. 둘은 9살 차이, 평소 친형제처럼 가깝던 사이다.
그는 레슬링과 거리가 먼 직업이다. 어쩌면 그 패밀리에 색다른 존재다. (또 한 명은 이름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 일반인 며느리). 둘째 사위인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다. 당시 시카고 컵스에서 뛰던 투수 다르빗슈 유다.
6살 연하 남편이 묵직하게 아내를 안심시킨다. “내가 한번 알아볼게.” 그리고는 오래지 않아 해결책을 내놓는다. “비행기 준비해 놓을 거야. 형님 모실 준비하자.”
바로 그 ‘에어 앰뷸런스’다. 일본에서 괌까지 운행할 의료용 전세기를 띄우기로 한 것이다. 백강혁 교수가 울분을 토하던, 예산이 부족해서 장관이 난색을 표하던. 그걸 개인 비용으로 준비했다는 얘기다.

승리투수의 티셔츠
물론 달랑 비행기만 뜰 수는 없다. 의사와 간호사도 섭외를 마쳤다. 기내에서 뿐만이 아니다. 괌 현지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24시간 돌봐 줄 의료진이 동행했다. 환자와 가족들의 숙식 경비도 모두 해결해 준다.
그렇게 3개월 남짓이 흘렀다. 초가을 무렵이다. 이별이 찾아왔다. 41세의 아까운 나이다.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을 지켰다. (2018년 9월 18일)
그리고 시간이 꽤 지났다. 작년 10월의 일이다. NL 디비전 시리즈 때다. 다저스와 파드레스의 격전이 펼쳐졌다. 2차전 승리투수는 매제의 차지였다. 경기 후 기자회견 때다. 주인공의 티셔츠가 눈길을 끈다.
한 기자가 묻는다. “티셔츠 속의 얼굴은 누구 사진인가.”
다르빗슈가 바로 반응한다. 통역도 필요 없다. 영어 즉답이다. “아, 이거? 6년 전에 세상을 떠난 형님(처남)이다. (He is my brother-in-law. He passed away six years ago.)”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된다.

2023년 WBC 때도 그랬다. (일본) 대표팀 훈련을 위해 모일 때다. 자신만 혼자 먼 길을 돌아간다. 오키나와를 들르기 위해서다. 거기서 어느 체육관으로 향한다. 형님이 후배들을 위해서 마련한 곳이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더니, 한바탕 땀을 빼고 떠난다.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이렇게 상상한다. ‘아마 그동안 시설 운영에도 다르빗슈가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줬을 것이다.’ 그런 짐작이 충분히 가능하다.
추측의 근거가 있다. KID가 생전에 준비하던 대회가 있었다. 후배들의 훈련 자금 마련을 위한 이벤트였다. 그런데 그가 떠나면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아무 문제 없이 치러졌다. 역시 든든한 매제의 후원 덕이다.
다르빗슈는 평소 SNS 활동에 적극적이다. 바른말도 잘하고, 팬들과 소통도 활발하다. 그러나 스스로 이런 미담을 밝힌 적은 거의 없다. 따라서 보도된 양도 극히 드물다. 주변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전해질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