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쇼크] 꿈의 비만약, 치매·심장병·알코올중독까지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일까

이정아 기자 2024. 9. 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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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지, 체중 감량 외 치료 효과 연구 소개
질병 유발하는 장기 염증, 뇌세포 통해 억제
치매 부르는 뇌 염증 줄이고, 중독 질환도 치료
일러스트=챗GPT 달리3

‘꿈의 비만약’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와 젭바운드(티르제파타이드)가 체중 감량 외에도 수면 무호흡증과 치매, 파킨슨병, 난임, 심혈관질환, 만성콩팥병, 지방간, 알코올 중독 등 다양한 질환에 효과가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비만 치료제는 과연 만병통치약일까. 과학자들은 약물이 여러 경로로 뇌에 작용해 다양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5일(현지 시각)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 같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계열 비만 치료제가 어떻게 만병통치약처럼 여러 효과를 내는지 규명한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원래 장에서 분비되는 GLP-1 호르몬은 췌장을 자극해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을 분비시킨다. 소화 속도를 늦춰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GLP-1은 이와 동시에 뇌에서도 생성돼 식욕과 기분 조절, 보상 등에 관여한다.

GLP-1 유사체 비만 치료제는 GLP-1 호르몬을 흉내 내 체중을 감량하는 효과가 있다. GLP-1 호르몬처럼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고 식욕을 줄여 포만감을 유발한다. GLP-1 호르몬이 체내에서 몇 분만에 사라지는 것과 달리, GLP-1 유사체 비만약은 몸속에서 일주일 이상 머물며 뇌와 장에 작용한다.

지금까지 비만 치료제가 만병통치약처럼 다양한 치료 효과를 내는지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GLP-1 유사체 비만 치료제가 식욕을 억제해 체중을 감량하는 것과 비슷한 경로로 뇌에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비만과 관련 있는 질환에 특히 효과

캐롤리나 스키비카(Karolina Skibicka)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수는 네이처지에 “GLP-1 유사체 비만약이 뇌와 말초신경계 모두에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체중 감량 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다른 질환들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심뇌혈관질환이나 수면 무호흡증, 다낭성난소증후군처럼 비만과 관련된 질환은 특히 치료 효과가 좋다. 이들 질환자는 체중을 감량하는 것만으로도 치료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GLP-1 유사체 비만약의 항염증 효과에도 주목한다. 염증을 줄여 만성콩팥병, 지방간, 파킨슨병, 치매 등에 치료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염증은 면역반응의 결과이지만 지나치면 여러가지 병을 일으킨다.

동물실험에 따르면 GLP-1 유사체 비만약은 심장과 신장, 간 등 여러 장기에서 염증 반응을 줄인다. 이들 장기에는 GLP-1 수용체가 많지 않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역시 GLP-1 유사체 비만약이 뇌에 작용하면서 면역세포를 통해 항염증 효과까지 내는 것으로 추정한다. 동물실험에서 뇌의 GLP-1 수용체를 차단하면 항염증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문제는 뇌에 이물질의 침입을 막는 혈뇌장벽(血腦障壁·Blood Brain Barrier)이 있다는 사실이다. 산소나 영양분은 혈관에서 뇌로 가지만, 그보다 큰 이물질이나 병원체는 혈관을 둘러싼 내피세포라는 장벽에 막혀 뇌로 가지 못한다. 다행히 여러 동물실험 결과에 따르면 GLP-1 유사체 약물은 일부가 BBB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니얼 드루커(Daniel Drucker)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BBB장벽을 통과하더라도 이 약물이 실제로 얼마나 깊게 들어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면서도 “BBB장벽이 헐거워진 틈으로 GLP-1 유사체가 뇌의 특정 영역에 들어가 연쇄적으로 뇌 심부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래픽=손민균

◇뇌에 직접 작용, 치매·파킨슨병도 공략

치매 환자의 7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과 운동능력을 잃는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질환들은 GLP-1 유사체 비만약이 뇌의 염증을 줄여주면서 증상을 줄여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진이 GLP-1 유사체 비만약을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덴마크 생명공학기업인 카리야 파마슈티컬스(Kariya Pharmaceuticals) 연구진은 현재보다 더 높은 농도로 뇌에 침투할 수 있는 GLP-1 유사체 비만약을 개발하고 있다.

GLP-1 유사체 비만약은 심지어 약물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 현상도 줄이는 효과가 있는데, 이에 대한 작용 원리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앨리슨 샤피로(Allison Shapiro)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는 “GLP-1 유사체 비만약은 배고픔과 체온, 심박수 뿐 아니라 미각, 보상 등에도 관여하는 시상하부와 후뇌에 작용할 것”이라며 “이 덕분에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 증상을 줄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태마스 호바스(Tamas Horvath) 미국 예일대 교수는 GLP-1 유사체 비만약을 만병통치약처럼 곳곳에 쓸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비만 치료제를 수년~수십 년 투여했을 때 장기적인 효과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며 “만능으로 표현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비만 치료는 만병의 근원을 없애는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GLP-1 유사체 비만약은 간접적인 영향을 미쳐 고혈압이나 치매, 심혈관질환 등 비만과 연관 질환을 상당부분 치료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지난 6월 GLP-1 유사체 비만약이 시상하부의 어느 신경과 작용하는지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그는 “다만 병에 따라 GLP-1 유사체 비만약의 치료 효과 정도가 다를 수 있다”며 “앞으로 관련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4-03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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