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의 통섭의 황혼]
과학사의 위대한 거인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그의 저서 『통섭 Consilience』에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언젠가 말했듯이 이론은 거듭되는 장례식을 통해 진보한다”고 표현했다. 과학은 한 명 혹은 소수의 교주나 정치 지도자에 의해서 도그마가 확립되고 그것을 교조적으로 추종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세기에 학문적 아이콘으로 추앙받았던 인물이 바로 다음 세기에는 당시 기술력과 세계관의 한계를 상징하는 인물의 표본으로 다루어지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이는 과학사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거인들에게도 예외 없이 닥치는 일이다.

지난 2월 12일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의 아버지인 찰스 다윈의 생일이었다. 그래서 ‘다윈의 날’(Darwin Day)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그의 기일은 4월 19일이다). 찰스 다윈은 생물학사를 넘어 과학사 전체에서, 그리고 과학사를 넘어 인류사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성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다윈의 탄생 이전에도 생물이 진화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존재했다. 그는 '자연선택'이라는 핵심 메커니즘을 제시하고, 고생물학, 지질학, 해부학, 육종학 등 분야를 넘나들며 설득력 있는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업적을 세워 현대 진화생물학의 시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인도, 그의 저술과 이론 곳곳에서 당대의 과학기술과 세계관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 한계의 증명은 다윈 이후 약 160년간 발전과 수정을 반복해 온 생물학사의 치열한 논쟁과 대립 속에서 수차례 발견된다. 물론 160년 전의 인물이 얼마나 무지했는가에 관해서 일일이 논하는 것은 소모적이고 옹졸하다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보다 큰 틀과 핵심 개념들의 차원에서 다윈은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20세기를 풍미한 그의 후배들은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 후배들은 어떤 도전과 마주치는지 짚어보려 한다.
『종의 기원』이 설명하지 못한 '종의 기원'
다윈을 거장의 반열에 올린 저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생물 종(species)이 기존의 종에서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자연선택이라는 가장 핵심적 메커니즘을 통해 생물 집단의 유전적 구성이 세대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자세히 논증 및 구상했다. 그러나 이는 현대 진화생물학에서 흔히 소진화(microevolution), 즉 한 종 내에서 일어나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에 가깝다. 흔히 대진화(macroevolution) 라고 하는 분류군과 생물군 차원의 거대한 진화 현상, 그리고 그 소진화와 대진화의 경계에 있는 종분화(speciation)까지 모두 정리할 수 있는 만능의 도구가 아니다.
생물학에서 한 종을 정의할 때 가장 흔히 사용되는 정의는 ‘상호 교배하여 생식력 있는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개체들의 집단’이다. 그리고 상호 교배가 불가능한 두 집단이 탄생하는, 즉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메커니즘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이소적 종분화(allopatric speciation)이다. 지리적 격리로 인해 갈라진 두 집단이 서서히 유전적 차이를 쌓아가다가 다시 만나면 교배나 제대로 된 자손 생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달라지는 것이다.
위의 개념들을 이론적,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종의 기원’의 구체적 메커니즘을 설명해 낸 인물은 1940년대의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였다. 1905년 태어나 2005년까지 말 그대로 한 세기를 풍미한 이 대학자는 평생동안 진화생물학과 생물철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탐구했고, 다윈조차 명확히 짚고 넘어가지 못한 한계를 극복했다. 그러나 이런 마이어 또한 신예와 신학문의 등장에서 한계를 보였다.
물리학자 출신인 칼 워즈(Carl Woese)는 1977년 리보솜 RNA 분석을 기반으로 생명체는 크게 3역(domain), 즉 진핵생물, 고세균, 그리고 세균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상식을 뒤집어버리는 연구에 당시 워즈는 엄청난 비난과 비판에 시달렸다. 그 중에는 전통적인 박물학적 관점이 아닌 분자생물학적 신기술로 생물을 분류하는 데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구세대의 거장, 마이어도 있었다.
마이어와 워즈는 미 국립과학원회보 같은 국제 학술지를 무대로 삼아 치열한 논쟁을 벌였고, 시간은 결국 워즈의 편을 들어 현재 전세계 생물학 교과서는 워즈의 '3역 체계'를 싣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을 지켜준 유전이론
당대 다윈 이론의 주요한 문제 중 하나는 그가 유전의 메커니즘에 무지했다는 것에서 기인했다. 다윈은 제뮬(gemmule)이라고 하는 입자가 체세포에서 방출되고 이것이 유전의 기반이라는 범생설(pangenesis)을 채택했는데, 유전의 기반은 체세포가 아닌 '생식세포'라는 현대의 상식과 크게 다르다. 멘델의 이론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시점에서 이를 그의 무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더불어 자연선택을 위해서는 끝없는 유전적 변이의 생성이 필요한데, 유전이 명확한 물리적 실체를 가지고 구분되는 입자들이 만나 변이가 생성된다는 오늘날의 상식은 그에게 없었고 혼합유전 정도의 생각이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변이의 원천을 설명하지 못한 다윈 이론(이하 다윈주의)는 190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경쟁 진화 학설들의 도전을 마주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자연도태를 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를 극복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그 주역은 멘델의 이론을 발굴한 유전학의 거인들과 그러한 멘델식 유전 이론이 실제 생물 집단에서 유효함을 수학, 통계학을 통해서 증명해내고 이를 다윈주의와 연결한 집단유전학자(population geneticist)들이었다. 이 중 로널드 피셔(Ronald Fisher)는 현대 통계학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다.
더불어 어거스트 바이스만(August Weismann)은 생쥐의 꼬리를 자르는 실험을 통해 체세포에 일어난 변화가 후대에 유전되지 않음을 증명함으로서 그 유명한 '용불용설(用不用說)을 반박했고, 더 나아가 다윈처럼 변이를 설명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용불용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19세기 지성들의 한계를 극복해냈다. 여기서도 아이러니한 것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들어 용불용설과 본질은 다르지만 상당히 결이 닮았다고 볼 수도 있는 학문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바로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다.

살아있는 또다른 '용불용설'
후성유전학은 생물의 후천적 행동이나 환경 노출의 결과로 유전자 발현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며 이것이 후대에 유전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가장 잘 알려진 연구로 꿀벌과 여왕벌은 유전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달라진다는 연구, 그리고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어미의 양육 행동이 후세대의 화학적 변화와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등이 있다.
이 관점은 체세포가 아닌 유전자 발현에 주목하는 점에서 분명 라마르크주의(용불용설)와는 다르지만, 앞서 말한 멘델적 관점과 바이스만에 기초하는 전통 진화생물학과도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후성유전 메커니즘과 그것이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는 과정, 다시 말해 연성유전(soft inheritance; 일반적인 유전 메커니즘인 경성유전 hard inheritance 와 대비된다)이 진화에서 어느 정도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에 대해 진화학자들이 제각기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는 연성유전의 존재는 인정하나 그것이 생물계에, 특히 동물과 인간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발생하는지는 회의적이기에 기존 진화 이론의 대대적 수정은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반면 연성유전이나 표현형 가소성(phenotypic plasticity) 등을 비롯하여 생물의 유전과 진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수많은 생명 현상이 발견되었고, 따라서 기존 진화론의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틀을 제시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후자를 지지하는 관점을 ‘확장된 진화적 종합(Extended Evolutionary Synthesis, EES)'이라고 부르며, 이는 1940년대에 진화생물학의 기초를 닦았던 ‘근대적 종합(Modern Synthesis, MS)'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마이어는 근대적 종합의 기수이자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거인의 장례식을 다시 치르는 신예들
분명 다윈은 인류 지성사에서 가장 높이 올라선 거인이자 가장 멀리 내다본 영웅 중 한 명이며 그 전당에 입성해 마땅하다. 그러나 앞서 굵직하게 살펴봤고 앞으로도 더 살펴볼 수 있듯이, 그는 당대의 관찰 기술과 이론적 발전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를 20세기 초중반의 후배들이 극복하면서 진화생물학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고, 다시 이 틀에 20세기 후반과 21세기의 신예들이 도전했으며 그 중 일부는 이미 교과서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윈을 비롯하여 19세기와 20세기를 풍미하고 세상을 떠난 대학자들은, 다시 한 번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첫 장례식은 그들의 육신이 소멸하여 치르게 되는 장례식이며, 두 번째 장례식은 그들의 이론을 후배들이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치르게 되는 장례식이다.
장례식이 과학의 본질 중 하나인 이유는, 과학이 권위에 저항하는 성격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과학은 부당하고 무의미한 권위는 물론, 합당하게 세워진 권위라고 해도 새로운 사실과 관점이 주어진다면 이에 기초하여 도전함으로써 진보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과학의 분야가 그렇듯이, 진화생물학 또한 권위에 대한 도전과 무수한 장례식을 통해서 진보했다. 이것이 과학이 지식 전달의 차원을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관점과 자세에 있어서 사람들과 함께 사유할 수 있는 지점 중 하나이다.
권위주의에 저항하라
현재 대한민국은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이 매스미디어를 타고 강력한 자기복제를 통해 정치권과 국가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권위주의뿐만 아니라 다양한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사고방식과 그 유령들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의, 특히 우리가 이성과 합리와 발전의 이미지를 가지고 바라봤던 서구 세계의 정치권까지 검은 촉수로 휘감고 있는 암울한 현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지난 2월 12일의 '다윈 데이'를 그저 한 위대한 거장의 탄생을 축하하고 조용히 넘어가려니 아쉬움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다윈 데이'를 그런 거장조차 가질 수 밖에 없던 한계, 그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독립적으로 사유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모든 퇴행적인 권위주의적, 전근대적, 극단적 사고에 저항하는 사유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당대의 세계관과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다윈도 현재 그가 잠들어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조용히 미소를 지어줄지 모르는 일이다.
※ 이지훈은 역사학, 진화생물학, 지성사 등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훈련 중으로, 자신의 공부가 사회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 배움을 실천하는 길을 걷고자 한다. 진정한 '더불어 넘나드는 통섭'이 무엇인지 사유하는 글을 목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