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는다는 건, 지켜야 한다는 것
당신이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것, 소중히 여기는 것을 떠올릴 테다. 야구 경기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승리다. 하지만 야구에서의 승리는 한 번 갖는다고 끝이 아니다. 경기 시간에 제약이 없기에, 승자는 오래 이기는 팀이 아닌 마지막에 이기는 팀이니 말이다. 마지막 그 기쁨의 순간을 위해 끝까지 승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 LG 트윈스에서는 정우영이 그 역할을 해낸다. KBO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 정우영은 지난해 구단 역사상 최초로 30홀드를 달성하며 팀의 셋업맨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해 35홀드까지 기록하며, 리그 전체 1위 홀드왕의 영광을 껴안았다. 그렇게 팀의 승리를 지키는 그에게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나고 있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Yeonsu Kim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Hair & Makeup Kim Ryeo Won Stylist Jeong Joo Youn(I AM)
#몬스터와의 만남
투수가 마운드로 향하는 20초 남짓한 시간. 타석에 있을 때 다양한 응원가가 흘러나오는 타자와 달리, 투수는 연습 투구를 하는 짧은 시간 동안 흘러나오는 등장곡만이 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2019년에 이 괴물 같은 신인이 등장한 뒤로, 경기장에 드렁큰 타이거의 ‘Monster’가 흘러나올 때면 트윈스의 팬들은 안도감에 마음을 놓는다. 그가 남은 이닝을 모두 ‘발라버리고’ 이 게임을 승리로 마무리 지을 테니까!
작년에 잠실야구장에서 만나고 1년 만이네요.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해요! (7월 16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LG 트윈스 투수 정우영입니다.
오늘 <더그아웃 매거진> 스튜디오에서 에너지 음료 ‘몬스터’ 화보 촬영도 함께 진행했는데요. 몬스터 에너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올해부터 몬스터 에너지와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어요. 몬스터 측에서 먼저 에이전트를 통해 계약을 맺자는 연락이 왔죠. 원래 몬스터 음료를 좋아해서 즐겨 마시고 있던 터라 빠르게 계약했습니다.
요즘 들어 날씨가 부쩍 덥고 습해졌는데, 경기 중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은 없어요?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이 아니라서요. 게다가 더운 날에는 시원한 몬스터 하나 챙겨서 경기장에 나가면 든든합니다. (웃음)
#우영의 영광의_순간
흔히 야구는 실패의 스포츠라고 한다. 아무리 뛰어나도 5할 타율의 선수는 없는 것처럼,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것이 야구에서는 당연할 일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타자의 이야기. 투수의 입장은 다르다. 특히나 경기 막바지에 올라오는 마무리 투수와 셋업맨에게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로부터 다양한 것을 배우는 법. 실패를 통한 발전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더 이상 실패라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올해 정우영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란 걸.
최근 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전반기를 마무리했어요. 이번 시즌을 돌아보자면?
프로 입단하고 제일 힘든 시즌이었어요. 매년 고비가 있었는데, 올해에는 그 슬럼프가 굉장히 길었습니다. 아직 시즌이 끝난 건 아니지만, 프로 데뷔 이후로 가장 힘들었던 한해로 기억될 거 같아요.
전반기 동안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어요?
자신감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지난 5년 동안 자신감 하나로 공을 던졌거든요. 근데 올해는 유난히 자신감이 없었던 한해였어요.
하지만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이번 달 안에 폼 찾겠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바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요!
다시 자신감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일단 말은 뱉었는데, 이후로 점차 좋아져서 다행이었죠. (웃음) 그래도 아직 완전히 슬럼프를 극복한 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평소 변화를 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올해는 어떤 부분을 바꾸고 있어요?
예전부터 주자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퀵모션에 변화를 계속 주고 있어요. 그리고 그동안에는 투심 패스트볼 위주의 원 피치로 타자를 상대했다면, 지금은 다른 구종의 변화구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투구폼의 변화도 많던데요?
올해 LG 트윈스가 뛰는 야구를 시즌 초반부터 보여주면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을 때 견제가 심하게 들어올 거라 예상해요. 저희 투수들도 마찬가지로 상대 팀의 도루를 신경 써야 하니까, 감독님께서 먼저 투구폼 변화를 제안하셨죠. 평소에 변화를 추구하기도 해서 열린 마음으로 꾸준히 연습하는 중입니다.
아까 화보 촬영할 때 야구공을 건네주니 바로 투심 패스트볼 그립으로 잡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현재 준비 중인 다른 구종은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아직 80% 정도? 나머지 20%는 당장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라, 경험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해요. 실제 시합에 나가서 계속 던져봐야 완전히 습득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남은 후반기에는 결과와 기록에 신경을 쓰기보다, 팀 내에서 제 가치를 올린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구종을 던질 예정입니다.
올해부터 박동원 선수와 새로운 배터리 조합을 보여주고 있어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호흡을 맞추고 있나요?
동원이 형은 제가 던지고 싶은 공을 다 던져보라고 해요. 근데 정말 솔직하십니다. 제가 던진 공에 대해 좋다 혹은 안 좋다가 확실해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정확한 조언을 해주세요. 동원이 형 얘기를 듣고 다음 피칭 때 반영해서 던지고 있어요. 그래서 전 동원이 형이랑 맞추는 호흡이 좋습니다.
야구 할 때 객관적인 평가를 듣는 걸 좋아하나 봐요?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니까요. 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야구선수 정우영은 어떤 유형인지 MBTI 야구 버전으로 한번 정해볼까요? 먼저, 마운드에서 타자와 적극적으로 대결하는 E 타입? 신중한 I 타입?
정면승부 하는 E. (현재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는 S? 앞으로의 미래까지 고려하는 N?) 미래 지향적인 N이요! (스스로 채찍질하고 객관적인 T 타입? 자신을 격려하며 자신감을 중요시하는 F 타입?) 이건 둘 다 있는데… 그래도 더 큰 건 T 같아요. (평소 훈련 루틴이 명확한 J? 그때그때 다른 P?) P! (원래 성격은 ISTP인데, 이건 ENTP네요?) 일할 때랑 평상시는 완전 다르죠. (웃음)
#우리_우정 영원히
그럼, 쉴 때는 어떤지 궁금한데요. 이번 올스타 휴식 기간을 앞두고 미리 휴식기에 들어갔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어제는 잠시 여행도 다녀오고, 시즌 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면서 재밌게 지내고 있어요. 항상 힘들 때마다 기력보충으로 소고기를 먹는데, 쉬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컨디션 회복에 집중했습니다.
최근 허리에 불편감이 있다고 들었어요. 몸 상태는 괜찮아요?
휴식기 동안에 잘 먹고 푹 쉬면서 어느 정도 회복됐어요. 근데 지금 당장은 괜찮은데, 훈련에 들어가면 또 어떨지 몰라서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상태를 다시 봐야 알 거 같습니다.
평소에 야구선수 말고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잖아요. 함께 ‘우영즈’라고 불리고 있는 2명의 정우영 축구선수, 정우영 캐스터와는 어떻게 친해졌어요?
정우영 캐스터님이 먼저 다가와 주셨고, 그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아직 넷이 한자리에 모인 적은 없지만 따로 인연은 계속 이어 나가고 있어요.
또 다른 이색 인연으로 두산 베어스의 정철원 선수가 있어요. 정철원 선수가 ‘이상한 사이드암 투수 우영정’이라고 부르던데 무슨 의미예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따온 별명인데요. 대표팀에 갔을 때 SSG 랜더스(김)광현이 형이 먼저 그 별명을 지어줬는데, 철원이가 계속 따라 불러요. 근데 정작 저는 그 드라마를 안 봤어요.
LG에는 신인 시절부터 함께 한 ‘두루미즈’가 있어요.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의 이정용, 이상영 선수와 비슷한 외모로 유명한데, 성격도 잘 맞나요?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쭉 팀에서 가장 친한 동료들이에요. 근데 제가 벌크업을 하면서 더 이상 두루미즈가 아니라는 얘기도 있는데… (일동 웃음) 그래도 두루미즈의 케미는 영원할 것 같습니다.
최근 오지환 선수가 ‘원래 우영이가 팀에서 잘생긴 선수에 속했는데, 벌크업하면서 외모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야구 실력을 얻었으니 그걸로 됐다’라고 얘기한 영상이 있어요.
저도 봤어요. 근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야구만 잘할 수 있다면 외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처음 몸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런 부분은 이미 감안했기 때문에 현재의 제 모습이 더 만족스러워요.
그럼, ‘다리 길이 20cm 줄고 구속 160km/h 달성하기 vs 그대로 살기’ 중에 고른다면?
음… 지금 상태로도 160 km/h 찍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말 나온 김에 밸런스 게임 하나만 더 해볼게요! LG 트윈스 선수가 아닌 상대 팀으로 만났을 때, ‘이재원 vs 신민재’ 중 더 까다로울 거 같은 타자는?
한 점도 허용하면 안 되는 불펜 특성상 중요한 순간에 만난다면 한 방이 있는 재원이가 더 부담되지 않을까요? 물론 평소 주자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발 빠른 민재 형도 까다로울 것 같아요.
작년 인터뷰에서 군 제대 이후 복귀할 이주형(현 키움 히어로즈) 선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어요. 실제로 함께해 보니 어때요?
아직 그때의 제 기대만큼 주형이가 올라오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앞으로의 미래가 밝은 선수인 건 틀림없습니다. 가진 재능도 좋은데 항상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선수니깐, 팬분들은 기대 많이 하셔도 좋을 거예요.
최근 최연소·최소경기 100홀드를 달성했어요. 이후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깨지기 힘들 것’이라며 밝힌 소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기록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네요?
정말로 앞으로 깨지기 힘들 테니깐요. 아직은 그 기록을 깰 선수가 제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장래성으로 봤을 때는 기록을 깰 훌륭한 선수가 많은데, 현시점에서는 제 눈에는 아직 없는 거 같아요. 특히나 나이 제한도 있어서 빠르게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하니 쉽게 깨지지 않을 겁니다.
그런 역사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을 꼽자면?
일단 부상이 없었던 점이 가장 크고요. 또, 감사하게도 구단 내에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홀드 상황에 자주 내보내 주셨던 부분이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입단할 때만 해도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대기록을 달성해서 뿌듯합니다.
#우리들의 영광을_위해
앞으로 더 달성하고 싶은 기록도 있어요?
전 중간 투수이기 때문에 작년에 이어 앞으로도 계속 홀드왕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홀드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싶어요.
데뷔 4년 차에 홀드왕을 수상하는 등 빠른 연차부터 남다른 커리어를 쌓아 오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부담감도 상당할 거 같아요.
솔직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현재 팀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 스스로 느끼기에 경험도 부족하고 여전히 긴장되는 순간들도 많아요. 경기 자체에 대한 압박감도 크고, 주위의 기대가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죠. 다행히 그런 순간마다 잘 이겨내 온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3시즌 전반기도 끝이 났습니다. 올해 목표했던 바는 잘 이뤄지고 있나요?
매년 아프지 않은 걸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데요. 아직 컨디션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불편한 감도 조금은 있지만, 큰 부상은 아니기 때문에 제법 괜찮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경기를 돌아봤을 때, 이번 시즌의 만족도를 퍼센트로 표현하자면?
80%요. 나머지 20%는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남겨두겠습니다. (이거 소름인데요? 박해민 선수도 지난 인터뷰에서 이유까지 완벽하게 똑같은 대답을 했거든요.) ‘승리를 향해, 하나의 트윈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1등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뿌듯)
2024 신인드래프트가 어느덧 두 달 앞으로 다가왔어요. 신인왕까지 수상하며 누구보다 화려한 신인 시절을 보냈던, 그때의 정우영에게 건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거침없이 잘해왔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 당시에는 무서운 게 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났고, 그게 마운드 위에서도 보였거든요. 덕분에 지금만큼 성장할 수 있었고, 정말 그대로 ‘신인답게’ 보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신인에서 이제는 베테랑 선수로 거듭나기 위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요. 지난 5년의 프로 생활은 어땠어요?
매년 행복한 시즌이었어요. 제가 입단한 이후로 항상 가을야구에 진출했거든요. 팀이 매년 높은 순위에 있으면서, 남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경험을 저는 할 수 있었어요. 제 개인 성적보다 팀이 올라가는 것에 대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그런 순간에 함께할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합니다.
먼 미래지만 나중에 팬분들께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잠실야구장에 영구결번 깃발이 걸려 있잖아요. 거기에 제 등번호인 18번이 걸려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인터뷰에서는 영구결번보다는 차세대 프랜차이즈 후배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했잖아요!) 네? 제가 그랬나요? 원래 사람 마음은 쉽게 바뀌는 거니깐요. (웃음) 물려줄 생각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LG 트윈스와 정우영을 응원하는 팬분들께 한마디 전하며 마무리할게요.
그동안 계속해서 많은 응원 보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특히 제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도 항상 꾸준히 응원해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의 말씀 전해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팀이 우승하는 데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지금처럼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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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체격, 추가된 구종 등 최근 정우영을 보며 누군가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변화가 없으면 발전도 없는 법. 변화가 있다는 건 현실의 부족함을 깨닫고 더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사람이 진정 멋있는 이유는 노력한다는 이유 하나만은 아니다. 노력하기까지 자신의 강점과 약점, 고쳐야 할 점을 정확히 깨닫고, 이를 인정하는 겸손까지 갖췄다는 사실이 그 과정을 더 빛나게 한다.
본인의 장점으로 ‘자신감’을 꼽는 정우영. 자기 스스로를 믿는 자신감을 가졌다는 건, 현재의 부족함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달라질 것이라 믿음을 함께 지녔다는 것이다. 꽃이 지는 이유는 단단한 열매를 맺기 위함이듯, 지금의 변화가 그를 더 성장시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3년 149호 (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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