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독이 든 성배일까...토레스 바이퓨얼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대세다.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가 메인 차종에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선택지를 마련해 소비자 입맛을 돋우고 있다.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급진적인 변화를 꺼리는 소비자를 향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 동시에 높은 연료효율과 두둑한 초반 토크라는 매력으로 디젤 파워트레인의 대체재 역할을 하며 주류 파워트레인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난해KG그룹에 인수돼 부활의 날개를 편 KG 모빌리티도 대세에 편승하려는 듯 올해 1월 토레스 하이브리드를 출시했다.
자료를 차근차근 살펴보니 어딘가 이상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에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더하는 방식인데, 토레스 하이브리드는 전기모터가 없다. 대신 하나의 엔진에 두 가지 연료 (가솔린과 LPG)를 사용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고전압 전기모터를 갖춰야 한다’는 환경부의 규정이 있는 만큼 토레스 하이브리드는 엄밀히 따지면 ‘토레스 바이퓨얼’로 불러야 한다. 소비자의 관심을 얻기 위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제조사의 정확한 설명이 없다면 소비자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토레스 바이퓨얼은 KG 모빌리티 영업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토레스의 트림과 옵션을 선택하고 330만원을 추가하면 국내 LPG 개조 전문업체 로턴의 손을 거쳐 소비자에게 인도한다. 가솔린 터보 엔진 기반 토레스를 바이퓨얼로 개조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외모만 보고 파워트레인 유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튜닝의 흔적이 남아있긴 하다. 트렁크 하단에 LPG 봄베를 보호하기 위한 철제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가솔린 버전 토레스보다 트렁크 바닥이 위로 올라와 트렁크 공간이 약간 좁아졌다. 다만, 2열 시트를 폴딩 했을 때 등받이 부분과 단차 없이 딱 들어맞도록 구성해 최근 유행하는 차박을 즐기거나 기다란 짐을 수납하기 용이한 장점이 있다. 두 가지 연료를 먹이로 사용하는 만큼 주유구 커버를 열면 가솔린 주유구와 LPG 충전 주입구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주유구 커버 안쪽을 홀쏘로 뚫었다. 마감이 엉성하기 그지없다.
가솔린, LPG 전환과 LPG 잔량 인디케이터 기능을 겸하는 버튼은 계기판 왼쪽 하단에 위치하고 있다. 가솔린 연료량은 기존과 동일하게 계기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료량에 따른 주행가능거리가 정확히 표시되지 않는다. 분명 가솔린이 절반 이상 남아있는데 주행가능거리는 100km가 채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주행가능거리는 연료 잔량을 보고 어림짐작해야 한다. 로턴 관계자의 “LPG 게이지 한 칸(총 5칸)으로 대략 100km를 주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운전자의 주행 환경에 따른 편차가 있는 만큼 실주행거리와 차이가 있다. 더불어 LED 인디게이터의 위치가 애매해 고개를 아래로 꺾어야만 확인이 가능하다. 주행 중 LPG를 모두 소모했지만, 주차를 하고 나서야 LPG를 모두 소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성차 제조사 이름을 내세워 출시한 만큼 튜닝 업체보다 높은 완성도를 기대한 소비자가 실망할 포인트다.
세심한 손길이나 마감 퀄리티는 아쉽지만, 파워트레인 완성도는 수준급이다. I4 1.5L 터보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 조합으로 앞바퀴굴림 혹은 네바퀴굴림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165마력, 27.3kg•m로 가솔린 터보 버전의 토레스와 비교해 최고출력은 5마력, 최대토크는 1.4kg•m 낮다. 토레스 바이퓨얼은 LPG를 우선 사용하고, LPG를 다 소모하면 자동으로 가솔린 모드로 전환해 주행을 이어 나간다. 다만, 시동과 아이들링 스톱 기능은 가솔린만 사용하기 때문에 항상 소량의 가솔린을 남겨두어야 한다. 가솔린으로만 주행하길 원한다면 계기판 옆에 마련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달리는 중에도 연료 전환이 가능하다. 연료가 바뀌는 과정이 굉장히 매끄러워 운전자는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가솔린에서 LPG로, 다시 LPG에서 가솔린으로 수 차례 연료를 변경하며 달려도 소음이나 진동은 물론 주행 질감 차이가 없다.
토레스 가솔린 터보 모델에 비해 출력이 소폭 줄었지만, 토레스 본연의 주행 질감은 그대로다. 낮은 엔진회전수에서 최대토크가 발생하는 터보 엔진의 장점은 가속 상황에서 드러난다. 어느 정도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밟아도 힘은 남아돈다. 자연흡기 엔진을 사용하는 경쟁 LPG 모델과 달리 터보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토레스 LPG의 강점이 드러난다. LPG만 사용해 꽉 막히는 출퇴근 시간 서울 시내와 흐름이 원활한 고속도로를 누비고 나니 LPG 잔량이 바닥났다. LPG만으로 349km를 달렸고, 평균연비는 1L에 9.4km로 대략 37L의 연료를 소모했다. 4월10일 기준 평균 LPG 유가(988.42원)를 대입해 계산하면 연료비로 3만6500원을 지출했다. 만약 동일 비용으로 휘발유(1622.95원)를 주유해 달렸다고 계산하면 연비가 무려 1L에 15.5km에 달하는 셈이다.
예상보다 LPG 소모 속도는 빨랐지만, 충전에 대한 염려는 없다. 수도권에서는 충전소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고,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LPG 충전소가 있어 장거리 주행도 불편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LPG를 모두 소진하면 가솔린으로 자동 전환되는 바이퓨얼의 특성 덕에 LPG 충전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토레스 바이퓨얼은 장단이 확실하다. 주행 질감이나 연료효율은 튜닝 업체의 손을 거쳤다는 점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완성도가 높다. 다만, 조립과 마감 퀄리티만 놓고 보면 완성차 업체 수준을 크게 벗어난다. KG 모빌리티는 재정적으로 힘든 와중에도 신차 개발에 최대한의 역량을 쏟아부었다.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커스터마이징 혹은 추가 선택 품목이라는 이름을 붙인 ‘순정형 옵션(바이퓨얼도 여기에 해당한다)’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KG 모빌리티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 사명까지 바꾸며 새로운 시작을 알린 만큼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글 남현수 사진 한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