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분위기 속 톈안먼 34주년… 홍콩 곳곳서 체포·연행 잇따라

오남석 기자 2023. 6. 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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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 5000~6000명 철통 경비… 촛불·꽃 든 이들 검문·체포
민주 진영 지도자 탄압에도 저항… 옥중 단식 투쟁도
톈안먼 민주화시위 34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3일 홍콩 번화가 코즈웨이베이에서 한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중국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34주년을 맞은 4일 홍콩에서 경찰 수천 명이 삼엄한 경비를 펼친 가운데, 체포와 연행이 잇따랐다.

홍콩 명보와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홍콩 거리 곳곳에서 불심검문이 이뤄졌다. 오후 6시를 전후해서는 야당 지도자와 민주 진영 활동가 등이 연이어 경찰에 연행됐다.

홍콩 경찰은 이날 대테러 부대, 폭동진압 부대 등을 포함해 5000∼6000명의 경찰관을 번화가인 빅토리아 파크와 코즈웨이베이 등 주요 지점에 배치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명보에 따르면, 군소 야당인 사회민주연선의 찬포잉 주석이 오후 7시쯤 코즈웨이베이의 한 백화점 앞에서 작은 LED 촛불과 두 송이의 꽃을 들고 있다가 경찰에 끌려갔다. 이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막인팅 전 홍콩기자협회장이 경찰관과 말다툼을 벌이다 경찰차에 실려갔다.

AFP는 오후 7시 30분 현재까지 코즈웨이베이에서 최소 10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한 여성은 경찰에 연행되면서 “촛불을 들어올리자. 6·4를 추모하자”고 외쳤으며, 검은 옷을 입은 채 ‘5월 35일’이라는 책을 들고 나온 남성도 연행됐다고 AFP는 전했다.

코즈웨이베이 쇼핑가는 지난 몇년간 톈안먼 시위를 기리는 장소로 떠올랐다. ‘5월 35일’은 중국에서 톈안먼 시위 기념일인 ‘6월 4일’이 검열에 걸리자 이를 피하기 위해 등장한 표현이다.

홍콩인들 사이에서 ‘그랜마 웡’이라 불리는 백발의 여성 활동가도 이날 꽃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34주년을 맞은 4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 인근에서 경찰이 검문검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콩 경찰은 전날에도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해치거나 선동적 행위를 한 혐의로 4명을 체포했고, 공공의 평화를 해친 혐의로 다른 4명을 연행했다고 발표했다.

전날 오후 톈안먼 시위 희생자 유가족 모임인 ‘톈안먼 어머니회’ 회원인 라우카이와 민주 활동가 콴춘풍이 빅토리아 파크 인근에서 체포됐다. 라우카이는 촛불 그림과 ‘진실’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흰색과 붉은색 장미를 든 채 “우리는 톈안먼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오후 6시 4분에 단식을 시작할 것”이라고 외쳤다.

빅토리아 파크는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1년간 매년 6월 4일 저녁 톈안먼 시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린 곳이다. 그러나 2020년 6월 30일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빅토리아 파크 촛불 집회는 열리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한 친중 단체가 3∼5일 이곳에서 쇼핑 축제를 열겠다며 일찌감치 장소를 선점했다.

이번에 체포된 이들 가운데에는 지난 수년간 6월 4일 저녁 톈안먼 시위를 기념하는 행위예술을 해온 예술가 산무찬과 찬메이텅도 포함됐다. 이들은 코즈웨이베이에서 “홍콩인들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이 6월 4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외쳤다.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도 홍콩의 목사 등 기독교인 360명이 서명한 ‘6월 4일 기념일 기도회’ 청원이 현지 기독교 매체 크리스천타임스에 전면 광고로 게재됐다. 이들은 “역사적 트라우마가 고도의 압박 아래 잊히겠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를 지켜보고 추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님이시여. 우리가 가련한 자들과 투옥된 자들을 계속 지켜보고 탄압받는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며 6월 4일의 트라우마로부터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걸어가도록 가르침을 주시옵소서”라고 희구했다.

중국 정부가 1989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하자 홍콩에서는 이듬해부터 매년 6월 4일 저녁이면 빅토리아 파크에서 시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최대 수십만명 규모 촛불 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2019년 반정부 시위가 거세게 벌어진 후 홍콩 경찰은 2020년 코로나19를 이유로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추모 집회를 불허했다. 그럼에도 당시 2만여 명의 시민이 빅토리아 파크로 와서 촛불을 들어 올리자 경찰은 집회에 참석했던 26명의 야권 지도자를 불법 집회 가담 혐의로 기소했다.

경찰은 2021년과 지난해 6월 4일에는 빅토리아 파크를 아예 봉쇄하고 사람들의 접근도 차단했다. 또한 주변 검문검색을 강화하며 인근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제한했다.

홍콩 보안장관은 이번 톈안먼 시위 34주년을 앞두고도 국가안보를 해치려는 자들에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초우항텅 전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 부주석이 톈안먼 시위 34주년을 맞아 34시간 옥중 단식을 시작했다가 독방에 감금됐다고 정치 활동가 프란시스 후이가 전했다. 이 단체는 1990년부터 30여년 간 빅토리아 파크 촛불 집회를 주최해왔으나, 당국의 압박 속에 2021년 해산했다. 이후 초우항텅 등 이 단체 간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오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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