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공격 위해 원전 올인…기후 대책 퇴행 어떡할 건가”

2024. 10.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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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본 백지화’ 외치다 체포됐던,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인터뷰
공청회장에서 ‘전기본 백지화’ 등을 외치다 체포됐던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을 만나 체포됐던 기후·환경운동가들이 11차 전기본에 대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에 대해 들었다. 송윤경 기자


지난 9월 26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최한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공청회에서 기후활동가·환경운동가 18명이 체포됐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 전력이 얼마큼 필요한지를 계산한 뒤 필요한 만큼의 전력 생산을 위해 석탄·원자력·재생에너지 등을 조합한 ‘에너지 믹스’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담은 행정계획이다. 전기사업법에 따라 2년마다 수립하게 돼 있어 올해는 11차 전기본을 수립해야 한다. 이날 공청회는 지난 5월 31일 정부가 발표한 11차 전기본 실무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공청회 직전 기후위기비상행동,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 탈석탄법제정을위한시민사회연대, 탈핵시민행동 회원들은 세종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차 전기본이 전력수요 전망을 부풀려 원전 확대를 정당화하고 석탄 발전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반면 재생에너지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었다. 이어 일부 활동가들은 공청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단상을 점거하고 “기약 없는 탈석탄 재생에너지 전환” “핵발전소 수명연장 신규건설 결사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공청회 시작 시각인 오전 10시가 되자 경찰은 수갑을 채워 활동가들을 끌고 나갔다. 체포된 18명은 세종남부경찰서와 세종북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 이날 오후 6시쯤 풀려났다.

지난 9월 26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 시작에 앞서 기후활동가들과 환경운동가들이 “핵발전소 수명연장, 신규 건설 결사반대” 등을 주장하며 단상을 점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환경운동가 18명의 체포 소식을 다룬 언론은 많지 않았다. 애초 전력수급 정책에 관심이 크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전기본은 ‘앞으로 어떤 전기를 얼마큼 생산해 누가 주로 쓰도록 할 것인가’라는 기후위기 시대의 중요한 질문을 담고 있다. 기후·환경운동가들이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를 들여다봤다.

공청회장에서 ‘전기본 백지화’ 등을 외치다 체포됐던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을 지난 10월 2일 서울 을지로의 한 공유 오피스에서 만났다.

-전기본의 전력수요 전망부터 잘못됐다는 비판을 하는 것으로 안다. 무엇이 잘못됐나.

“전기본을 보면 2038년까지 10.6GW의 전력공급 설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2년 전엔 2036년까지 1.7GW가 필요하다고 했다. 갑자기 크게 불어났다. 왜 갑자기 수요가 크게 늘었는지 근거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전기본을 보면 2038년까지 10.6GW의 전력공급 설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2년 전인 10차 전기본에서는 2036년까지 1.7GW가 필요하다고 했다. 갑자기 크게 불어났다. 10.6GW는 어느 정도의 전력량일까. 신고리 5호기(새 명칭 ‘새울 3호기’) 같은 핵발전소를 7개 더 지어야 하는 양이다. 왜 갑자기 수요가 크게 늘었는지 근거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전기본 수립과정의 회의록, 회의자료 등은 단 한 차례도 공개된 적이 없다.”

-비유를 하자면 가계부를 쓸 때 미래에 필요한 지출(전력량)을 넉넉하게 예상하는 셈이다. 그것이 나쁘냐고 보는 시각도 있을 것 같다.

“식구가 늘 것을 대비해서 집을 더 지어놓는 것으로도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집을 짓는데 너무 큰 비용이 드는 거다. 발전소를 더 짓는 문제는 그저 여유분을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 짓고 있는 신고리 5·6호기(새울 3·4호기) 건설 비용이 10년 전 추산 기준으로도 8.6조원이었다. 게다가 기후위기 시대에는 전력 수요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수요를 줄여야 석탄발전에서 벗어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탈석탄을 선언한 나라들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표 1). 2000년과 2023년 발전량을 비교해보면, G7 국가 대부분은 (발전량이) 줄었고, 일부는 소폭 늘었다. 우리는 2배가 넘게 늘었다.”

<표 1> 2000년의 발전량을 100으로 보았을 때 지난 20년간 각국 발전량이 얼마나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표이다. 영국의 에너지 연구기관인 에너지 인스티튜트의 ‘세계 에너지 통계’의 데이터를 가지고 이헌석 정책위원이 재구성했다.


-정부가 전력수요를 부풀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원전 때문이라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원전 최강국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지 않은가. 원래는 전력수요를 예측한 다음 어떤 발전 설비가 얼마큼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노후 원전 수명을 연장하고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 위해 거기에 맞게 수요 예측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윤석열 정부의 기후 에너지 정책엔 오직 원전만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원전으로 다 할 수 있다’는 식인데 불가능하다. 반도체 공장에서 나오는 불소화합물 등 산업 부문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에너지 발전과는 상관이 없다. 당연히 원전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최근 동해안에 완공된 석탄화력발전소들은 가동을 못 하고 있다. 송전선로가 없어서다. 호남권에선 송전선로가 없어 재생에너지 신설이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원전 의제에 밀려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 강국’ 의제를 과도하게 부각하고 있다는 비판인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윤석열 정부에게 원전 확대는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수단이다. 문재인 정부 말미에 국민의힘이 탈원전을 정치 쟁점화하기 시작했는데 윤석열 정부가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현 정부가 전 정부를 공격하려 원전에 올인(몰방)하는 바람에 기후·에너지 정책은 이전보다 더 후퇴하고 있다.”

기후활동가와 환경운동가들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 시작에 앞서 “핵발전소 수명연장, 신규건설 결사반대” 등을 외치다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추가 전력수요 이유로 데이터센터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을 들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50년까지 10GW 정도 전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11차 전력계획 초안에서는 2038년까지 10.6GW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당장 숫자부터 맞지 않는다. 아울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결정이다. 애플이나 구글에선 RE100(재생에너지 100%) 기준에 맞는 반도체만 사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용인에 짓는 게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그 많은 전기를 보낼 송전선로를 어디에 어떻게 지을 것인가. 발전소를 지으면 송전선로는 따라간다(함께 지으면 된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 이 전제는 밀양 싸움 이후로 무너졌다. 데이터센터에 대해선 조절 정책이 필요하다. 싱가포르가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할 방법이 없으니까 일정기간 더는 짓지 말라는 모라토리엄 선언을 한 후 일정한 규제를 하면서 다시 풀어줬다. 우리도 수도권에선 데이터센터를 더 짓지 못하게 규제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전력정책은 기업이 필요하면 어디든 다 공급해준다는 식이었다. 이제는 이 틀을 벗어나야 한다.”

-현재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구 신고리 5·6호기), 신한울 3·4호기가 완공되면 한국의 원전은 총 30기로 원전밀집도 세계 1위다. 11차 전기본을 보면 여기에 신규원전 3기와 SMR(소형모듈원전)이 추가로 지어진다.

“홍준표 시장이 대구 군위에 SMR 1기를 짓겠다고 나섰는데 SMR엔 원자로 4개가 들어간다. 사실상 네 기의 핵발전소가 대구에 지어지는 거다. SMR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원전 최강국 건설을 위해서 그걸 우리가 먼저 하자는 게 윤석열 정부의 계획이다. 우리가 대형 핵발전소 건설 경험은 있지만 SMR 기술은 그것과는 다르다. 만드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느냐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아울러 원전의 세계적 위상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지난 20년간 거의 모든 선진국이 핵발전소 개수를 줄였고 원전은 사양길을 걷고 있다. 그나마 핵발전소 시장에서 중국이 가장 큰손인데 우리는 거기에 진출도 못 하는 처지다. ‘너희 기술은 어차피 웨스팅하우스 것 아니냐, 그냥 웨스팅하우스가 들어와라’라는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에 원전 기술을 전수한 미국 기업인데 그 웨스팅하우스마저 망해가고 있는 게 원전 산업의 현실이다. 최근 전 세계의 에너지 투자 비중을 보면 태양광이 원전의 5배가 넘는다.(표 2 참고)”

<표 2> 2021년~2024년(추정치) 동안 각 발전원에 투자된 자금 규모. 태양광(solar PV) 투자금 규모가 압도적 1위다. 원전(nuclear)의 다섯 배가 넘는다. /출처: 세계에너지 기구 ‘세계 에너지 투자 2024’


-중국은 원전을 많이 짓나.

“중국이 핵발전소를 많이 짓는다고 해도 그 비중은 4.6%(2023년 기준)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30.7%다. 우리보다 훨씬 낫다. (한국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은 30.7%, 재생에너지는 8.4%를 차지한다. 표 3 참고) 태양광 패널 세계 10위 내 기업 대부분이 중국 기업이고, 풍력발전은 북유럽 국가들이 연구개발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중국이 많이 따라잡았다. 적어도 기후·에너지 정책 면에서는 중국을 무시해선 안 된다.

<표 3>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32.9%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는 태양광, 풍력, 바이오에너지, 수력 등의 재생에너지와 석탄액화가스, 수소, 연료전지 등의 신에너지를 포함한 개념이다. /출처: 11차 전기본 실무안


-11차 전기본을 보면, 2038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32.9%다. 지난해 전 세계의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30%였다는데, 우리는 15년 뒤에나 30% 수준이 되는 셈이다.

“우리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꼴찌 수준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3배로 늘리는 계획을 내놨다고 자찬을 했는데 그마저도 분모를 태양광과 풍력만 잡았기 때문에 나온 착시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일단 양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자면 다시 전력망 문제로 돌아간다. 당장 내년부터는 호남권과 제주에 태양광발전시설을 못 짓는다. 전기를 보낼 망이 없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를 늘린다고는 하는데 실행할 방법이 없는 거다. 이 문제에 대해서 빨리 해법을 내놔야 한다. 아울러 전기를 많이 쓰는 수도권에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많이 지어야 한다. 서울의 전력 자립도가 10% 안팎인데 적어도 40~50%까지는 높여야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 모든 지붕에 태양광을 올린다는 자세로 늘려야 한다. 일본과 프랑스에선 주차장에 태양광을 의무적으로 올리는 법이 통과됐다.”

-전기본대로라면 석탄발전과 LNG발전 등 탄소 배출 발전원 비중이 15년 뒤에도 29.8%다.

“산업혁명을 처음으로 했던 영국이 얼마 전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함으로써 탈석탄을 이뤄냈다. 다른 G7 국가들도 2035년까지 탈석탄을 약속한 바 있다. 우리는 석탄발전을 언제 멈출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대로 공장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등 산업 분야의 탄소중립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라는 대안이 확실한 전력 분야부터 탄소중립을 이뤄내는 것이 맞다. 그런데 2038년에도 석탄발전을 포함한 탄소배출 발전원 비중이 29.8%이면 ‘2050년 탄소중립’까지는 큰 문제가 생길 거다. 정부의 11차 전기본으로는 2050년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표 4> G7 국가들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지난 20년간 크게 상승했다. 한국이 이 같은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선 대담한 확대가 필요하지만, 11차 전기본엔 신재생에너지가 2038년에 32.9% 수준으로 오르는 계획이 담겼다. 독일의 경우 2017년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33.5%였고, 영국에선 2018년에 33%였다. /출처 : 영국의 에너지싱크탱크 ‘엠버’와 ‘에너지 인스티튜트’의 ‘국제 에너지 통계’.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서 재인용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등의 실천도 늘고 있지만, 전력 정책에 관한 관심은 덜한 것 같다.

“한국만큼 쓰레기 분리배출을 잘하는 나라가 있을까. 기후와 환경을 위한 개인의 실천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정부나 기업은 기후 대응이 ‘꽝’이면서 시민들만 닦달하는 형국이다. 이제는 정부와 기업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야 한다. 전력기본계획은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전문용어가 많아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장벽이 높다. 그런데 그걸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정책이라면 널리 알려야 하는데도 계획의 수립 근거와 회의록 등은 공개하지 않은 채 결과만 발표할 뿐이다. 심지어 전기사업법엔 공청회가 두 번 무산되면 공청회를 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까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활동가들이 단상을 점거한 것은 형식적인 공청회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이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 에너지 정책은 더는 밀실에서 짜여선 안 된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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