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이탈리아, 일본이 함께 만들겠다던 꿈의 차세대 전투기 프로그램 GCAP.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 나라는 "우리는 하나"를 외치며 역사적인 국제 공동개발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무대 뒤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3월 23일, 충격적인 내부 증언을 공개했습니다.
GCAP 관계자가 "솔직히 말해서, 지금 상황은 끔찍하다"고 털어놓은 것입니다. 도대체 이 프로젝트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계약 하나 못 맺고 있는 세 나라
GCAP의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세 나라 정부가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기관 GIGO와, 세 나라 방산기업(BAE Systems·Leonardo·미쓰비시중공업)이 세운 합작회사 Edgewing이 양 축을 이루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정부 측 기관과 산업 측 기관이 공식 계약을 맺어야 본격 개발이 시작되는 구조인 것이죠.

당초 이 첫 번째 계약은 2025년 9월, 늦어도 연말까지는 체결될 예정이었습니다.
수십억 파운드 규모의 개발 자금이 Edgewing에 공급되고, 그것을 기점으로 2035년 배치를 향한 대장정이 시작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계약이 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영국이 돈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돈 문제 — 말은 하는데, 지갑은 닫혀 있다
영국 스타머 총리는 2025년 6월 국방전략 재검토 결과를 발표하며 "62개 권고사항을 모두 이행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국방예산도 2027년까지 GDP 대비 2.5%, 2035년까지 3.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죠.
나토 정상회담에서는 총액 5.0% 목표에도 동참했습니다.
말만 들으면 영국은 국방에 엄청난 의지를 보이는 것처럼 들립니다.

문제는 그 재원입니다. 전문가들은 62개 권고사항을 실행에 옮기려면 향후 4년간 무려 280억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56조 원에 달하는 재정 부족이 발생한다고 지적합니다.
스타머 총리는 결국 2025년 말 발표 예정이었던 '국방투자계획'을 2026년 3월 이후로 미뤘습니다.
영국 산업계는 어느 분야에 얼마가 투자될지 가늠조차 못한 채 불확실성 속에서 몇 달을 더 버텨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스타머 총리가 직접 일본을 방문해 다카이치 총리에게 "GCAP에 대한 영국의 헌신은 변함없다"고 강조했지만,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실제 자금 수당이 뒷받침되지 않은 그 말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말과 돈은 다른 것이죠.
이탈리아도 흔들린다 — 비용이 3배로 불어났다
영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탈리아에서도 심상치 않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올해 1월, 이탈리아 국방부 장관이 의회에서 "우리가 GCAP 개발에 지출하는 금액이 3배로 늘었다"고 공개 발언한 것입니다.

상원 국방위원회에 제출된 문서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원래 GCAP 연구·개발 1~2단계 비용으로 60억 유로(약 10조 원)를 부담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실험, 개발, 설계 비용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부담 예상액이 186억 유로(약 32조 원)로 치솟은 것입니다.
즉, 세 나라 전체의 1~2단계 개발 총비용은 약 9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탈리아 야당인 5성운동은 "프로그램 자체의 가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지만, 부담액이 이렇게 급증하는 것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위원회가 캐시 디스펜서처럼 쓰이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균열의 조짐이 보이는 것입니다.
일본의 불만 — 조용하지만, 분명하다
일본이 원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2030년대 중반, 즉 2035년 전후로 신형 전투기를 실전 배치하는 것입니다.
일본으로서는 노후화되는 F-2 전투기의 후계기를 그 시점까지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한 안보적 이유가 있습니다.

반면 영국과 이탈리아는 일정에 다소 유연한 입장입니다.
무인기와 협조 운용이 가능한 최첨단 '시스템 오브 시스템즈' 개념의 완성도 높은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방향성을 더 중시하고 있죠.
파이낸셜 타임스가 인용한 관계자는 "영국은 개발 작업을 늦추고 지출을 억제하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속도를 원하는 일본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괜찮다는 영국·이탈리아 사이의 온도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이미 장관급에서 GCAP의 자금 조달 문제에 대한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합니다.
"점점 일본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감각이 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인정했을 정도입니다.
일본이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죠.
캐나다 카드 — 해법인가, 또 다른 복잡성인가
이런 자금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영국과 이탈리아가 꺼내든 카드가 있습니다. 바로 캐나다의 추가 참여입니다.
GCAP는 '출자액에 비례한 워크쉐어 보장'이라는 원칙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캐나다가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금을 투입하면 영국과 이탈리아의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캐나다가 유력한 후보국"이라는 언급이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에 소극적인 입장입니다.
과거 영국과 이탈리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개발 참여를 추진했을 때도 일본이 저항했던 것처럼, 새로운 파트너가 들어오면 설계·개발 결정 구조가 흔들린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캐나다가 참여하면 워크쉐어를 새로 재조정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세 나라 기업 간, 정부 간 협상이 또 한 차례 길게 이어질 수밖에 없죠.
자금 문제 해소를 위해 도입한 캐나다 카드가 오히려 2035년 배치 목표를 더 멀게 만드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2035년 배치, 이제는 목표가 아닌 희망이 됐나
현재 영국 BAE Systems, 이탈리아 Leonardo,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엔지니어들은 각자 자국 정부의 자금으로 설계·개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스는 "영국의 자금이 몇 주 안에 바닥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계자의 증언을 전했습니다.
GIGO와 Edgewing 간 공식 계약 없이는 이 작업이 머지않아 한계에 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국과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Edgewing 측이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GCAP는 순조롭다",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내놓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정반대입니다.
자금은 막혀 있고, 계약은 지연되고 있으며, 파트너 간 신뢰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2035년 배치"라는 목표가 점점 '계획'이 아닌 '희망'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GCAP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 앞으로의 몇 달이 이 프로그램의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