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에 묻은 돈가방, 3억 와르르…'ATM 털이범' 9일 만에 잡은 비결[베테랑]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2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새벽에 보안업체 직원이 은행 ATM(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현금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지난 7월 23일 오후 8시쯤.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 강력1팀으로 신고 1건이 접수됐다. 보안업체 직원이 자신이 관리하던 은행 ATM에서 현금을 챙겨 달아났다는 것이다.
경찰은 퇴근한 A씨가 곧장 택시에 탄 사실을 확인했다. 추적기법을 동원해 A씨가 탄 택시가 경기 안양으로 이동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날 저녁 안양에서 택시 하차 지점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A씨 흔적을 찾긴 어려웠다.
하 경위와 강력팀은 이튿날 오전에 어렵게 찾은 CCTV를 분석해 A씨가 택시를 2번 갈아타고 경기 용인 한 백화점으로 이동한 경로를 밝혀냈다. A씨는 오전 반나절 사이에 서울→안양→용인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옷을 사 갈아입는 치밀함도 보였다. A씨를 쫓기 위해 영등포서 강력1팀은 주정차 감시용 CCTV,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 사설 CCTV 등을 분석해 달아난 A씨를 추적했다.
신고 접수 3일 차인 같은달 26일 강력1팀은 A씨가 택시를 타고 용인에서 충북 청주의 한 마을로 이동한 흔적을 찾아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형사들은 A씨가 택시에서 내린 청주의 한 마을을 집중적으로 수색했다. 모텔을 돌아다니며 A씨 행방을 쫓았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하 경위는 "추적하는 동안 피해 은행 등에서 확인한 결과 8000만원인줄 알았던 피해금이 2억원으로 늘더니 곧 약 4억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전달 받았다"며 "추적을 포기하면 미제사건이 될 수 있어서 힘들어도 쉴 수 없었다"고 했다.
강력1팀은 청주의 한 주유소 앞에서 손님을 태운 택시를 찍은 CCTV를 확보했다. 주변 모든 CCTV를 분석하다 찾은 단서였다. 이어 이날 해당 주유소 근처에서 운행한 택시 목록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청주 번화가로 이동한 택시를 추렸다. 도주 중에도 유흥을 즐길 것이라 판단했다. 택시 하차 지점 근처 CCTV를 확보해 A씨가 탄 택시를 찾아냈다.
강력1팀은 A씨 행동 패턴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그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며 현금만 썼다. A씨는 1만원권과 5만원권 지폐로 4억원을 배낭에 넣어 다녔다. 택시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근처 모텔에 들어갔다.
행동 패턴을 파악하면서 추격 속도도 빨라졌다. A씨는 이후 대전과 대구, 경남, 충북을 거쳐 강원도로 이동했다. 한 때 A씨 이동 시점과 강력1팀의 추격 사이 시차가 5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일주일 넘게 추격하면서 시차가 줄었다. A씨가 강원도 원주의 한 모텔을 숙소로 잡았을 땐 약 한나절 차이로 시차가 줄었다.
모텔주변 CCTV를 분석한 결과 A씨는 삽과 현금 가방을 들고 인근 야산 등산로로 올라 갔다. 산에서 내려올 땐 삽만 가지고 있었고 가방은 없었다.
약 2시간 잠복한 끝에 지난 1일 오후 3시40분쯤 A씨를 검거했다. 도주 9일만이다. A씨는 4억2000만원을 훔쳐 빚을 갚고 유흥비 등으로 썼다. 약 3억4000만원은 강원도 원주 한 야산에 묻어둔 것으로 조사됐다.
하 경위는 "우리만의 추적 노하우가 있다"며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모든 범죄에는 목적이 있고 추적할 땐 나무보단 숲을 본다"고 했다.
하 경위는 '강력팀 형사'로 오랫동안 현장을 지키는 게 목표다. 하 경위는 "형사들은 사건복이라고 하는데 팀장님이 오시고 우리 팀은 올해 사건복이 좀 있는 편"이라며 "강력팀 형사들과 현장에서 계속 뛰고 싶다"고 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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