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칼럼]스타벅스 논란이 남긴 질문, 시장은 정치의 전장이 되어야 하는가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스타벅스 논란은 겉으로 보면 한 기업의 마케팅 실수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사건은 단순한 홍보 실패를 넘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더 큰 문제를 드러낸다. 기업의 역사 인식, 소비자의 권리, 정치권의 개입, 진영 대립, 그리고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까지 여러 층위의 문제가 한꺼번에 얽혀 있다.
논란의 과정에서 스타벅스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정치적 상징으로 소환됐으며, 여야 정치권은 각자의 논리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는 질문은 따로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비판받을 수 있다. 아니, 비판받아야 한다. 특히 수백만 명의 고객을 상대하는 기업이라면 국민의 마음이 담긴 역사적 감수성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
이번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 역시 그런 측면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보다 신중했어야 했다.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결과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불쾌감을 느꼈다면 기업은 그 이유를 경청해야 한다.
실제로 스타벅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수습에 나섰다. 이번 조치는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 이후 스타벅스가 내놓은 가장 강도 높은 소비자 보상책으로 평가된다. 스타벅스는 손정현 대표 교체와 공식 사과에 이어 카드 잔액 전액 환불이라는 이례적인 조치를 시행하며 소비자 신뢰 회복에 나선 상태다. 단순한 해명에 그치지 않고 최고경영자 교체와 선불충전금 환불이라는 실질적 조치를 단행했다는 점에서 기업 스스로도 책임을 인정하고 후속 대응에 나선 셈이다.
기업은 정당이 아니다. 특정 정치 세력의 지지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도 아니다. 가능한 한 넓은 고객층을 품어야 하는 시장 주체다. 그런 점에서 스타벅스의 판단은 미숙했고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 기업의 실수와 정치의 확대 재생산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논란은 어느 순간 스타벅스를 넘어 정용진 회장으로 향했다. 다시 정치권으로 번졌다. 여당은 역사 인식 문제를 제기했고, 야당은 과도한 정치 공세라고 맞섰다. 일부 정치인은 스타벅스 출입 자제를 권고했고, 일부 정치인은 오히려 스타벅스를 찾으며 반발했다. 커피 한 잔이 정치적 선언이 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한다.
시장은 어디까지 정치화될 수 있는가.
민주주의는 불매의 자유를 보장한다. 소비자는 기업을 평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동시에 선택의 자유도 보장한다. 누군가 스타벅스를 이용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계속 이용할 자유도 있다.
문제는 최근 한국 사회가 점점 그 경계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실수에 대한 비판이 기업 전체에 대한 낙인으로 바뀌고, 소비자의 선택이 정치적 충성 경쟁으로 해석되기 시작하면 시장경제의 건강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장은 본래 경쟁의 공간이다. 더 좋은 제품과 더 좋은 서비스, 더 나은 가격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곳이다. 그런데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가 아니라 정치적 성향으로 평가받기 시작하면 경쟁은 왜곡된다. 어느 순간 기업들은 혁신보다 정치적 눈치를 보게 된다. 역사적 감수성을 갖는 것과 정치적 눈치를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권의 개입이다.
정치인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갈등을 확대해 지지층 결집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정치의 인질이 된다. 오늘은 스타벅스일 수 있다. 내일은 다른 기업일 수 있다. 진보 정권에서는 보수 성향 기업이, 보수 정권에서는 진보 성향 기업이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시장은 자유로운 경쟁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전장이 된다.
◆ 중국이 보여준 '정치가 시장을 지배할 때'의 대가
건강한 민주주의는 비판할 자유만이 아니라 용서할 자유도 존재하는 사회다. 기업이 잘못했을 때 사과하고 책임을 지면 그 책임의 정도를 평가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그러나 사과와 개선 이후에도 끝없는 정치적 응징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힘이라기보다 민주주의의 과잉에 가까울 수 있다.
건강한 자본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은 잘못에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기업이 정치적 이유로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구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비자의 선택이 시장을 움직여야지 정치권의 낙인이 시장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그 반대 사례를 중국에서 목격했다.
2020년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공개 석상에서 중국 금융당국을 비판했다. 이후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앤트그룹 상장은 전격 중단됐고, 알리바바는 대규모 반독점 조사와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어 디디추싱, 텐센트, 메이퇀 등 중국의 대표 플랫폼 기업들도 잇따라 강도 높은 규제 대상이 됐다.
물론 중국 정부는 시장 질서 확립과 독점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세계 투자자들이 받아들인 메시지는 달랐다. 기업의 성공 여부보다 정치 권력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그 결과는 예상보다 빨랐다. 민간 투자는 위축됐고 청년 일자리는 줄어들었으며 중국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혁신보다 눈치가 중요하다"는 자조가 퍼졌다. 한때 세계를 놀라게 했던 중국 빅테크의 공격적 도전은 눈에 띄게 둔화됐다. 최근 중국 정부가 다시 민영기업 지원과 기업가 신뢰 회복을 강조하는 것도 그 후유증을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한국이 중국과 같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일당 체제인 중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기업이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시장이 정치적 신호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특정 기업이 아니라 경제 전체라는 사실이다.
건강한 자본주의는 기업을 무조건 보호하는 체제가 아니다. 기업이 잘못하면 비판하고 책임을 묻되, 그 평가의 기준은 정치적 호오가 아니라 법과 시장이어야 한다. 그래야 혁신도 살아남고 투자도 이어질 수 있다.
◆ 건강한 민주주의와 건강한 시장의 조건
스타벅스는 분명 실수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실수 하나를 계기로 기업마저 진영의 편 가르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커피는 커피여야 한다. 시장은 시장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침묵시키는 체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선택을 인정하는 체제여야 한다.
스타벅스 논란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건강한 민주주의와 건강한 자본주의는 기업의 실수를 비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비판이 정치적 응징으로 변하지 않도록 스스로 절제하는 데서 완성된다.
스타벅스 논란은 결국 커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정치적 적과 동지를 구분하려 하는지, 얼마나 쉽게 시장을 진영의 전장으로 만들려 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오늘은 스타벅스다. 내일은 다른 기업이 될 수 있다. 특정 기업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자유로운 시장과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원칙이다.
시장이 정치의 전장이 되는 순간, 소비자의 선택은 줄어들고 기업의 도전은 위축된다. 건강한 민주주의와 건강한 자본주의는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비판할 자유와 선택할 자유를 함께 존중하는 데서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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