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청약제도]③'2030만?'…중장년층은?
수십억 아파트도 특공…'금수저'만?
4050 중장년 역차별…"통장 기능 확대해야"
2030 세대의 주택 청약 문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정부는 가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청년층을 배려해 추첨제를 늘리고, 각종 특별공급의 범위를 넓혔다. 주거 안정을 통해 결혼·출산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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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특별공급의 문턱을 지나치게 낮추면서 '젊은 금수저'만 배불리는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래도록 무주택으로 지내 온 4050 세대, 나아가 노년을 바라보는 장년층 무주택자에게 '역차별'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시장에선 청약통장 기능 확대 등을 통해 청약제도의 혜택을 다양한 세대가 나눌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2030을 위하여? 금수저를 위하여?
서울 강남권의 이른바 '로또 청약'은 '금수저 특공' 논란을 낳았다. 고가지만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 주변 시세보다 싸게 나오는 신규 분양 아파트를 '부유층 2세'들만 차지한다는 것이다.
특공에는 소득 제한이 있다 보니 같은 연령대에서도 소득이 높은 이들은 자격조건 문턱을 넘지 못한다. 반면 소득이 적지만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일반분양에 비해 경쟁률이 낮은 특공을 신청해 당첨 기회를 노릴 수 있다.
금수저 특공 논란은 투기과열지구 특공 분양가 9억원 제한을 폐지하면서 불거졌다. 2018년 도입된 이 규제는 분양가 상승으로 수도권 등 투기과열지구에선 소형 평형만 특공에 배정된다는 지적에 따라 2023년 3월 풀렸다.
규제 완화와 함께 특공 범위까지 확대되자 2030의 청약 당첨 기회가 높아졌다. 문재인 정부가 가점제 위주로 주택을 공급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젊은 층의 주택 마련 기회를 확대하겠다며 추첨제 및 특공의 범위를 늘렸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엔 2017년 8·2 부동산대책을 통해 수도권 공공택지와 투기과열지구 일반공급 가점제 비율을 기존 100%까지 확대했다. 그러자 2030 세대들이 가점 경쟁에서 밀려 당첨 확률이 확 낮아졌다.
주택 청약 가점제는 △무주택 기간(32점) △부양가족수(35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을 기준으로 가점 점수(총 84점)가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제도다. 나이가 어릴수록 가점이 낮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저출생 해소 등을 위해 2030의 청약 문턱을 낮추고자 무작위 추첨 물량을 늘렸다. 2022년엔 투기과열지구에서도 전용면적 59㎡ 이하는 추첨제 60%, 전용 60~85㎡ 이하는 추첨제 30%를 배정했다. 올해 3월부터는 신생아 특공도 도입했다.
현재 신생아, 생애 최초, 신혼부부 등을 포함한 특공은 전체 일반 공급 물량의 최대 50%까지 늘었다. 여기에 특공 소득 기준까지 확 낮아지자 강남 등 가격 상승 가능성이 높은 주요 단지의 경우 특공이 오히려 고소득층의 재산을 불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상 특공에서 제한하는 소득·자산 요건을 갖춘 이라면 십수억원에 달하는 아파트 분양가를 감당하기 어렵다. 신혼부부 특공의 경우 우선 공급과 일반 공급으로 나뉘는데, 우선 공급을 받으려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전년도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00%(맞벌이는 120%) 이하여야 한다. 3인 이하 가구라면 맞벌이라도 세후 월 660만원 이하로 벌어야 참여할 수 있다.
단순히 계산해도 월 660만원을 버는 부부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년을 모아야 7920만원, 10년을 모아야 7억9200만원, 20년을 모아야 15억8400만원이다. 하지만 올해 강남권 공급 단지 중 최고 경쟁률(1순위 평균 667 대 1)을 기록한 '청담 르엘'의 전용 59㎡의 최저 분양가는 17억3900만원이었다.
신혼 특공 기준 소득으로는 한 푼도 쓰지 않고 20년을 모아도 강남권 신축 아파트 중소형 분양가도 마련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청담 르엘 특공 64가구 모집에 2만70명이 접수해 313.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사회적 배려의 대상으로 특공 차격을 갖춘 이들이 고가 주택 청약에 줄지어 선 것이다.
올해 역대 최고 분양가를 기록한 서울 광진구 '포제스 한강'의 경우 전용 84㎡의 분양가가 32억~44억원에 책정됐지만 그럼에도 신혼부부 특공과 생애최초 특공을 진행했다. 계약금(10%)만 해도 3억~4억원 수준이지만 소득 등의 자격만 맞다면 특공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외되는 4050…"청약통장 기능 확대해야"
가점을 차곡차곡 쌓아온 4050 세대는 불만이 많다. 정부가 2030의 청약 기회 확대를 위해 특공 물량을 늘리면서 일반 분양이 줄어서다. 가점 경쟁력이 높은 4050의 입장에선 정부의 정책 방향을 '역차별'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실제로 올해 강남권에서 분양한 5개 단지들 모두 일반공급 물량 가운데 특공 물량이 40~50%에 달했다. △메이플자이는 162가구 중 81가구(50%) △래미안원펜타스는 292가구 중 114가구(39%) △래미안레벤투스는 133가구 중 62가구(46.6%) △디에이치 방배는 1244가구 중 594가구(47.7%) △청담르엘은 149가구 중 64가구(43%) 등이다.
상대적으로 청약 가점이 높은 4050은 결국 나머지 일반 분양 물량에서 당첨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다.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주택 공급 위축, 공사원가 인상 등이 맞물리며 청약 경쟁이 심해져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올해 8월 기준 2683만3303좌로 2021년 2837만1714좌를 정점으로 3년째 감소세지만, 1순위 통장 비율은 3년 연속 70%를 넘보고 있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남권 '로또 청약' 단지의 경우 당첨 가점 커트라인 다수가 70점 이상이다. 그러려면 무주택 유지 기간과 청약 통장 가입 기간을 모두 채우고 부양 가족이 4인 이상은 돼야 한다. 이에 위장전입 등 부정청약 의혹도 거세다.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2023년 적발된 부정 청약 1116건 중 778건(69.7%)이 위장 전입 사례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 청약 통장에 공들인 4050 입장에선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연령대별 균등한 분배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저출생뿐만 아니라 고령화 또한 심화하는 만큼 청약통장을 오래 유지한 이들을 위해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청약통장의 기능 확대를 제안했다.
진미윤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이학박사(한국주택학회 회장)는 "청약 시장이 기대 심리로 인해 '묻지마 청약'이 성행하며 마치 인형 뽑기 하듯 가수요가 몰리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특정 연령층에만 유리하게 규제를 계속 푸는 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약저축액을 주택 기금으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건강보험처럼 모든 가입자가 혜택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저출생을 고려해 청년층에겐 특공으로 공급한다면, 중장년층은 노후에 청약 저축액을 일대일 매칭해서 지원해 주거나 연금과 연계해서 지원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균형 분배를 위해 다시 추첨제를 활용하고 잦은 손질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두성규 목민경제연구소 대표는 "기본 골격은 추첨제로 가되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대해 특공 물량을 확대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며 "아울러 정권에 따라 왔다갔다 하지 못하게 청약 제도를 규칙이 아닌 법률 단계로 올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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