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고유명사 안양1번가, 청춘 사진첩 닮은 그 길 [레트로K: 보통의 역사]
경부선 따라 열린 안양의 황금시대
군포·과천 주민들 찾아오는 번화가
상경한 청년들 찾던 곱창골목 그대로
범계역에 물러섰지만 활기는 여전
지금으로부터 120여년 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기차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름은 ‘경부선’. 세로로 길쭉한 우리 국토의 중추선을 따라 서울 용산에서 부산까지 연결된 길입니다. 경부선은 산넘고 물건너 걷거나 말타고 서울서 부산까지 가던 구시대의 종식을 의미했죠. 경부선을 따라 수많은 ‘교통 요충지’들이 탄생했고 요충지마다 행정이 커지고 상업이 융성해졌으며, 산업도 발달했습니다.
안양이 ‘별의 순간’을 맞는 시점도 바로 이때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기차길, 그 첫번째 길목이 바로 ‘안양역’이기 때문입니다. 1905년 안양역은 경부선이 만들어지는 그 시기에 함께 건설됐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생전 본 적도 없는 기차라는 것을 타고 사람들이 내리고, 또 기차를 타기 위해 사람이 모였습니다. 사람이 모인다는 건 곧 도시의 발전과 직결됩니다. 근방에 있던 시장, 음식점, 여관 등 상업시설들이 안양역 인근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경기 중부지역의 경제중심지라 불렸던 ‘군포장’이 안양역 인근으로 옮겨왔고 그게 ‘안양시장’으로 발전했습니다.
행정도 마찬가지입니다. 1973년 안양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시흥군 안양읍에 속했는데 시흥군청이 서울 영등포에서 1949년 안양역 인근으로 이전하면서 안양은 명실상부 경기중부 행정의 중심지 역할까지 도맡게 됩니다. 군청에 교육청, 읍사무소, 경찰서 등 공공기관들이 역사 맞은편에 줄줄이 자리를 잡았고 주변으로 식당과 유흥주점, 상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이 한번쯤은 들어본 ‘안양1번가’의 시작입니다.
안양1번가는 지금도 건물 곳곳에 걸린 간판들에서 ‘잘 나갔던’ 그 시절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1번가 콜라텍’ ‘1번가 노래방’ 등이 상점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안양을 비롯해 군포, 과천 등 경기 중부지역 주민들에게 안양1번가는 젊음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로 불립니다.
그래서 안양1번가에는 청춘들의 재밌는 추억이 많습니다. 1970년대 안양역에 지하철이 개통되며 안양 뿐 아니라, 서울의 젊은이들까지 가세해 안양1번가는 대호황을 이뤘습니다. 특히 안양에는 ‘안양극장’ ‘화단극장’ ‘삼원극장’ 등 큰 극장들이 있었는데 서울보다 싼 영화가격으로 서울의 청춘들을 유혹했죠.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에 안양에는 아주 유명한 나이트클럽도 있었는데, 실컷 새벽까지 놀다 통금시간에 걸려 해장국집으로 숨어 들어간 청춘들이 많았고 그 덕분에 화진정, 유래정 같은 음식점들도 번창할 수 있었습니다.
철도가 있는 곳에 오고가는 사람도 많지만, 물자도 모이기 마련입니다. 안양역과 안양1번가 주변으로는 큼지막한 공장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물이 좋아서, 물 사용이 많은 섬유공장이나 제지공장 등이 많았는데 금성방직·태평방직이 대표적입니다. 방직공장의 특성상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또 그 인근에는 삼덕제지 같은 제지공장들이 있었고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기계공장들도 포진돼 있었습니다. 이들 공장들엔 주로 남성 노동자들이 근무를 했죠. 이들의 월급날은 안양1번가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음식점이며 술집이며 그야말로 문전성시였습니다. 1979년부터 안양1번가 한 모퉁이에서 약국을 운영해온 백발의 약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1981년 1월에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고 야간에 활동하는 유동인구가 정말 많아졌어요. 어느날 보건소장님이 여기서 술먹고 놀다가 심야에 갑자기 응급환자가 발생할까 걱정이다, 심야에도 약국문을 좀 열고 있으면 안되냐고 부탁하더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벽까지 문을 열고 있어요. 그때는 새벽4시까지 영업을 했는데, 많이들 찾아왔습니다. 그때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안양1번가가 전국 7대 상권에 들어갈 정도로 제일 번화했다고. 이 근방에선 유흥가도 제일 컸고 젊은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으니 인기 있는 브랜드들이 시험무대(요즘으로 치면 팝업스토어)같은 매장들이 무조건 안양1번가에 차려졌어요. 광고효과가 제일 크거든.”
안양에서 태어나 안양의 현대생활사를 꾸준히 발굴하는 안양지역도시연구기록소의 최병렬 소장은 안양1번가 곳곳에 숨어있는 보통의 역사들을 기억하고 기록합니다.
안양1번가를 설명하면서 함께 걷던 중 잠시 롯데리아와 오락실이 들어선 건물 앞에 멈추더니 최 소장은 벽면에 새겨진 표지판을 가리킵니다. “1976년에 지어진 ‘안양백화점’이 안양 최초의 백화점이에요. 그 백화점이 문을 닫을 때 이 곳이 백화점 건물이었다는 표시를 해두려 건물주가 브랜드동판을 그대로 살려두었습니다.”
큰 사거리로 나오니 이번엔 노란색 3층짜리 건물을 가리킵니다. “이 건물은 예전에 시흥군교육청이었던 건물인데, 그때 사용하던 건물 그대로 사용하는 거에요. 맞은편 길에 보이는, 비슷하게 생긴 3층짜리 낮은 저 건물은 시흥군 도서관이었던 건물입니다. 그 옆에 큰 빌딩이 안양극장이었어요. 지금은 허물고 새롭게 빌딩을 지었지만 건물이름은 그대로 살려두었습니다.”
여전히 무수한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번화가라, 어쩌면 무심코 지나쳤을 건물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오래되고 소중한 추억이었다니, 옛 자취를 찾아 걷는 맛이 제법 재밌습니다. 오랫동안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도 있습니다. 안양1번가 인근에 있는 안양중앙시장의 곱창골목입니다. 곱창골목은 작은 곱창집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 골목인데, 생김새가 아주 특이합니다. 작은 곱창집을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다락을 만들었습니다. 성인 남성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앉아야 할 만큼 낮지만 오래전 지방에서 상경한 청년들이 공장에 취직해 땀흘리며 일하고,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곱창과 소주한잔에 풀던 추억이 녹아 있습니다.
곱창골목이 있는 중앙시장을 나오면 파란 굴뚝이 우뚝 선 도심 속 작은 공원이 보입니다. 삼덕제지공장이 있던 자리입니다. 공장을 이전하며 당시 전재준 삼덕제지사장이 안양시민 일상의 휴식을 위해 공장부지를 기증한 겁니다. 공장부지는 삼덕공원으로 조성됐고 지금은 도심 속 아이들이 뛰놀고, 일상 속에서 잠시 눈 감고 숨을 쉴 수 있는 소중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시끌법적했던 안양1번가는 1990년대 1기신도시 평촌이 개발되고 범계역이 번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쇠퇴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빛나던 청춘들처럼 중후한 모습으로 함께 나이들어갑니다. 아마도 그때를 기억하는 누군가는 레트로K를 읽으며 아주 오랜만에, 오래된 사진첩에서 낡지만 귀중한 추억을 발견한 기분이겠죠.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세월이 흘러도 안양사람들의 마음 속에 안양1번가는 안양의 첫번째 중심지로 유효하다는 겁니다. 또 언젠가 다시 한번 안양1번가의 ‘별의 순간’이 올테니까요.
/공지영·김대훈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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