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던 미술계 소녀들의 패션이 달라졌다
미술계 소녀들이 고가의 하우스 브랜드 대신 IYKYK 패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패션 위크를 제외하면 예술계 무대만큼 유행에 민감한 곳도 드물다. 다만 지난 몇 년간 예술계가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거듭나게 되면서 둘 사이 경쟁이 치열해졌다. 프리즈부터 파리+,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 그리고 런던, 뉴욕 등지에 생겨난 신생 갤러리에 이르기까지, 미술계를 움직이는 이들이 독특한 신예 디자이너와 거장의 아카이브를 점점 더 자주 찾아 입기 시작하면서 뜻밖의 스타일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한때 올드 셀린느(Celine)와 프라다(Prada) 스커트, 거만한 태도로 유명했던 갤러리 직원, ‘갤러리나(gallerina)’는 이제 순수 미술계의 옷 잘 입는 문지기라는 타이틀을 잃었다. 과거에 이들은 강렬하고 깔끔한 하우스 브랜드 옷을 입고 갤러리 프런트 데스크를 지키며, 위협적인 태도로 로로피아나(Loro Piana) 데저트 부츠를 신은 개미 컬렉터를 벌벌 떨게 했다. 이제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샬롯 요크를 떠올리는 이 냉정하고 전형적인 갤러리나는 찾아볼 수 없다.
요즘 경매장과 아트 페어에서 이름을 알리기를 원한다면 좀 더 스타일리시해질 필요가 있다. Z세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밀레니얼 세대인 갤러리나 2.0은 패션 감각이 뛰어나며 어느 까다로운 고객 앞에서도 그 개성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대개 전에 샌드위치 가게였던 작은 공간을 마련해, 예술 활동 면에서나 상업적으로나 어려움을 겪는 아티스트와 함께 일한다. 초포바 로위나(Chopova Lowena) 스커트에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 발레리나 플랫 슈즈를 신고 빈티지 발렌시아가(Balenciaga) 시티 백을 들며, 이들은 당신에게 이것들을 유행 전에 샀다고 말할 거다. 현대의 갤러리나는 한 가지 룩에 얽매이기보다 날카롭고 난해한 취향으로 정의된다.
뉴욕 차이나타운과 로어 이스트 사이드 사이에 자리 잡은 맥스웰 그레이엄(Maxwell Graham) 갤러리의 디렉터 클레어 새무트(Claire Sammut)를 예로 들어 보겠다. 그는 (당연히 올 블랙인)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 아카이브에 블랙 가죽 롱 부츠를 신었다. 여기에 Y2K 스타일 액세서리를 매치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갤러리나 클래식 아이템으로 매력적인 룩을 완성했다. 새무트가 말하기를 “어깨 패드가 달린 엠마뉴엘 웅가로(Emanuel Ungaro) 울 카디건에 밑창을 갈 때가 온 오래된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 끌로에(Chloé) 실버라도 백을 매치하기도 한다.” 룩이 약간 혼란스러워 보여도, 새무트처럼 불안정한 업계에서 일한다면 90년대 스타일과 IYKYK 패션을 섬세하게 탐구하는 것은 생활비 위기로부터 지갑을 보호하는 데에도 좋다.
이스트 런던에 새로 네벤 갤러리(Neven Gallery)를 연 헬렌 네벤(Helen Neven)도 약간의 혼란이 담긴 룩을 입기를 좋아한다. 네벤은 비치 백(Bitch Bag)이라는 발칙한 이름의 루이스 데 하비에르(Luis De Javier) 가방에, 베를린에서 주말을 보낼 때면 어김없이 챙기는 클래식 가죽 코트와 블록 힐 부츠를 매치했다. 때로 그는 그가 소개하는 아티스트의 디자인을 닮은 옷을 입고 스스로 갤러리의 마스코트가 되기도 한다. 네벤은 “언제나 레오 코스텔로(Leo Costelloe)의 실버 리본 네크리스를 하고 다닌다.” 그가 이르기를 ‘미우미우코어(Miu Miu-core)’를 입고 기존 갤러리나 룩에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펜슬 스커트와 카디건, 크루넥 스웨터 셋업은 전문가로 보이기 딱 좋으며 2000년대 스타일 안경은 괴짜스러운 맛을 더한다. 전반적으로 촌스러운 구석이 있고 테크노 무드가 느껴지면서도 뻔뻔한 이 룩은 아티스트의 자존심을 지키고 거래처와의 지루한 미팅에 나갈 때 입기 이상적이다.
동명의 갤러리를 운영하는 또 다른 신예 로즈 이스턴(Rose Easton)은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를 지원한다. 2011년부터 2013년 사이 피비 잉글리시(Phoebe English)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이스턴은 이후 패션계를 뒤로하고 갤러리로 향했다. 갤러리에서 일하면서도 브랜드가 모여 있는 런던 중심지에 머물어 패션에 대한 지식이 어디 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실제로 그의 갤러리는 몰리 고다드(Molly Goddard)의 스튜디오 바로 옆에 있어서 이스턴은 전시 오프닝 행사에 종종 몰리 고다드를 입는다. 꾸레쥬(Courrèges)의 화이트 바이닐 부츠나 셀레스틴 쿠니(Celestine Cooney)가 스타일링해 웨딩드레스로 입었던 코페르니(Coperni) 수트처럼 눈에 띄는 옷도 입는다. “일본 패션을 피비식으로 재해석한 피비 잉글리시는 내가 언제까지나 입을 옷이다. 주로 화이트 셔츠에 블랙 슬랙스를 매치한 룩이다. 작품을 닮은 의상을 입고 전시를 응원하는 것은 재밌다.” 예술계의 고스족인 이스턴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도 인정한 아티스트, 아를레트(Arlette)의 작품을 입기도 한다. 모노크롬 패션이 갤러리나 사이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웬즈데이 아담스를 떠올리는 이스턴의 고스족 스타일은 참신하다.
갤러리나의 스타일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최근까지는 아티스트만이 기이하고 멋진 패션을 뽐내 왔다는 것과 연관 있다. 갤러리 운영자나 프런트 데스크 직원, 큐레이터는 조용한 럭셔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보이는 학술 용어와 거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뿐이었다. 걸어 다니며 말하는 판매 기계나 다름없는 이들은 자신의 아름다운 작품을 팔기 위해 애쓰며 고통받는 아티스트와, 노팅 힐과 맨해튼의 주택을 꾸미는 데 관심 있는 부유층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기존 갤러리나 스타일은 이들이 아티스트가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한다는 사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오늘날 Z세대 패션에서 이러한 노력은 명예의 훈장처럼 여겨진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junyawannabe로 더 알려진 데이지 산체스(Daisy Sanchez)를 예로 들 수 있다. 텀블러 전성기에 온라인에서 이름을 알린 그는 나중에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와 팔로워를 모았고 뉴욕의 갤러리들에서 인턴십을 했다. 이제 그는 시카고에 위치한 갤러리 보덴레이더(Bodenrader)를 운영하며 미국 전역에 전시를 열고 있다. 25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말이다! 산체스는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담당하고 프라다(Prada)와 함께 일하기도 했다. 투박한 탱크탑과 스웨터 베스트, 낡은 데님 같은 아이템을 기본으로하는 그의 스타일에서는, 어떻게든 해내는 그의 태도가 느껴진다. 산체스는 갤러리에서 “후터스(Hooters) 티셔츠나 ‘I Love Hot Moms’라고 적힌 티셔츠, 내가 만든 게이 굿즈 컬렉션의 티셔츠를 입기도 했다.” 과거 갤러리나가 주로 이성애자가 갖는 전형적인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가졌다면, 지금의 갤러리나는 누구에게도 퀴어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산체스에게 잘사는 이성애자 여성처럼 입는 것은 일종의 드래그다. “작년 프리즈에서는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블라우스에 빈티지 아페쎄(A.P.C.) 남성 데님 진을 입고 피비 파일로(Phoebe Philo)의 셀린느(Celine) 12cm 힐 부츠를 신었다.”
영국의 LGBTQ 큐레이팅 플랫폼, 퀴어 다이렉트(Queer Direct)를 설립한 개비 사하르(Gaby Sahhar)와 플랫폼을 이용하는 아티스트는 새로운 갤러리나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다. 패션계와 미술계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들은, 단순히 작업복을 구하러 해러즈 백화점에 가는 과거 갤러리나와 다르다. 베트멍(Vetements), 후드바이에어(Hood By Air),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Charles Jeffrey Loverboy) 런웨이에 선 적이 있기도 한 사하르는 이제 이 미술계 뉴웨이브의 선두에 서 있다. “올리 신더(Olly Shinder), 모와롤라(Mowalola), 시네아드 오드와이어(Sinéad O’Dwyer) 등 국제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신진 디자이너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옷장에 영향을 미치며, 이들의 옷을 입는 것은 곧 그 디자이너를 지지하는 창조적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사하르의 말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의 최전선에 있는 갤러리나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 브랜드만 고집해서는 좋은 큐레이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지금의 갤러리나는 마이클 호(Michael Ho)나 그레이 윌리빈스키(Gray Wielebinski) 같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하고 2024년 봄-여름 쇼에서 본 올리 신더 런웨이 피스를 구하기 위해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으로 향한다.
패션과 예술이 교차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인기 있는 인디 갤러리스트와 작은 브랜드, 신선한 빈티지 컬렉션의 만남은 그렇다. 컬렉터의 취향과 업계 사람들의 패션 감각 면에서 전통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한 예술계이기에 이 변화는 반갑다. 기뻐하자! 가방끈 긴 귀족만이 갤러리 화이트 큐브(White Cube)를 드나들며 군림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쇼를 기획하고 누구를 소개할지 정하는 이들은 무대에 오른 예술가 못지않게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우리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베스티에르 콜렉티브(Vestiaire Collective)를 수시로 확인하고, 덜 알려진 브랜드의 런웨이를 챙겨 보고, 패션계에 항상 귀를 기울이자. 지배적인 남성 화가 뿐만 아니라 따분한 패션 역시 예술계를 지루하게 만들 뿐이다.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와 에르메스(Hermès)의 시대가 가고 아를레트와 시네아드 오드와이어의 시대가 왔다.
에디터 Joe Bobowicz
번역 Jiyeo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