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돋보기] 금리 인하와 대출 규제의 시소게임
한국은행이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연 3.5%에서 3.25%로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2021년 8월 0.25%포인트 인상한 이후 이어온 긴축 기조는 3년 2개월 만에 끝났다. 금리는 모든 자산 시장의 중력이라는 말이 회자한다. 이론적으로 볼 때 기준금리 인하는 국내 시중금리와 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져 부동산 시장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즉 부동산 가격과 반비례 관계인 금리 하락은 ‘금융 비용 감소→투자 기대 수익률 상승→거래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기준금리 변수 하나로만 결정되면 얼마나 간단할까. 정신분석학의 ‘중층 결정’처럼 여러 가지 변수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가격과 거래량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거시적 환경이나 금융정책 등을 함께 고려하는 ‘맥락적 사고’가 필요하다.
지금 주택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의 대출 옥죄기다. 실제로 9월부터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등의 대출 규제가 본격화했다. 기준금리 인하와 대출 규제라는 두 가지 변수의 비중 조절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시장 전망이 달라진다.
서울 핵심 지역은 대출 규제가 더 무섭다
서울 강남권이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핵심 지역에서 집을 살 땐 대출을 낄 수밖에 없다. 집값이 그만큼 비싸기 때문으로 가계 대출 규제 영향이 클 수 있다. 실제로 부동산학 연구 논문을 보면 서울 주택 시장에선 금리 변수보다는 대출 변수의 상관관계(탄력성)가 더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최근 다른 논문에선 수도권의 경우 주택 담보대출의 증감이 먼저 주택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시장에선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 부분 선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택 담보대출 금리가 한때 연 2%대까지 낮아진 점, 강남 등 일부 핵심 지역 아파트값이 신고가를 경신한 점을 볼 때, 그렇다. 이 때문에 지금 시점에선 기준금리 인하보다 대출 규제 약발이 더 먹힐 수 있다.
또 주택 담보대출에서 변동금리보다 고정금리를 선택하는 비율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 번 고정금리로 대출받으면 시시각각 변하는 시중금리 흐름에서 거리를 둘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8월 주택 담보대출 가운데 고정금리 비중은 잔액 기준으로 65.2%에 이른다. 이 통계 조사가 시작된 2013년만 해도 21.3%만 고정금리를 선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아진 것이다. 신규 기준으로는 요즘 주택 담보대출은 대부분 고정금리(8월 96.1%)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4분기 기준 주택 담보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비중이 77.9%로 월등히 높다(일본 국토교통성 자료). 요컨대 우리나라에선 과거 변동금리에 대출을 내던 그 시절에 비해 금리 변동에 따른 주택 시장 영향이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주택 시장은 어떻게 될까. 아파트 거래량이나 가격 상승세가 주춤할 것이다. 실제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8월 아파트 거래는 6114건으로 7월(8884건)의 68.8%에 불과했다.
시장의 선행성을 띠는 거래량이 줄어들면, 가격도 크게 오르기 힘들다. 이 때문에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단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도 9월 초 0.2%대에서 10월 초에는 0.1%대 이하로 낮아졌다. 수요자가 가격 상승에 대한 부담에다 대출 규제 영향으로, 관망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거래 건수로 본다면 서울 아파트 시장은 7월이 단기 고점을 형성했다고 본다. 지난해에는 8월이 단기 상투였다.
아파트 시장 어게인 2023년?
일각에서는 올 4분기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시장이 지난해와 닮은 꼴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결론적으로 거래 위축 흐름은 비슷할 가능성은 있으나 가격 하락 폭은 심하지는 않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올 4분기에 약세로 전환하더라도 지난해 4분기만큼 큰 조정을 받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대출 규제에 나서는 것은 지난해와 유사하지만, 금융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말 특례보금자리대출 일반형 판매를 중단하고 50년 대출 판매도 중단하도록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선 스트레스 DSR 2단계를 도입했다. 이들 대출 규제책은 주택 시장으로 흘러가는 유동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장중 연 5%를 돌파하는 등 채권시장 발작이 있었다. 이 바람에 한국부동산원 기준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는 10월부터 급락, 4분기에 3% 하락했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13% 상승했다가 악재가 쏟아지면서 급격히 조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올해는 금리 인하 국면으로 채권시장은 안정적이다. 더욱이 수요자가 원하는 주택 공급이 당장 늘어날 수 없고 상승 기대 심리도 있어서 급격한 내림세가 나타나긴 어렵다. 요컨대 서울 지역의 경우 올 4분기 큰 조정보다는 약한 조정(약보합세) 정도로 내다본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는 올 들어 7월까지 6.6% 상승했다.
부동산 실수요자의 자세
수요자는 지역별, 상품별로 구분해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인하돼 가격이 덜 오른 지역이나 상품에는 단비가 될 수 있다. 지역적으로 수혜는 서울보다 지방이 될 것이다. 서울의 경우 물이 빠질 때 가장자리부터 빠지는 것처럼 외곽 지역이 핵심 지역보다 먼저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상품으로서는 빌라, 상가, 빌딩, 오피스텔, 토지 등 비(非)아파트에 영향을 끼쳐 거래에 숨통이 트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특히 수익형 부동산은 시중금리와 비교 우위를 통해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만큼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상가 등에는 섣불리 투자해선 안 된다. 최근 들어 소비 패턴이 급격히 모바일로 바뀌는 ‘소비의 디지털화’ 현상으로, 레드오션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금리만 보고 투자 여부를 판단할 게 아니라 입지나 상품 경쟁력도 함께 보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기 급등하거나 신고점을 찍은 서울 핵심 지역 아파트를 추격 매수하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금리 인하와 공급 부족론에 현혹돼 서둘러 집을 사는 것은 좋지 않다. 시장을 좀 더 지켜보다가 시세보다 싼 급매물을 선별 매수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지방의 경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금리 인하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므로 꿈틀거리는 모습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 아파트는 한국부동산원 실거래가 기준으로 7월 한 달간 0.2% 오르면서 두 달 연속 상승세다. 지방도 서서히 바닥에서 탈출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지방 미분양이 우리나라 전체의 미분양80%에 달하는 데다 핵심 수요층인 젊은 인구 유출 등으로 본격 회복하기는 어렵다. 당분간 매물 소화 과정 중 바닥을 다지는 양상이 이어질 것이다. 실수요자라면 타이밍을 너무 재기보다는 고점(2021년 10월) 대비 가격 메리트를 따진 뒤 매수에 나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역별로 시장 흐름이 울퉁불퉁한 양상이므로 지역 밀착형 돋보기를 통해 분석하는 것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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