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학- 철학실종시대, 사라진 강원 동학사를 찾아서] 12. 동경대전 초판 진위 논쟁
인제지역의 기념사업 방안
인제 130·정선 30냥 발간 지원
국립도서관·장서각·소장본 등
글씨체 일치 초판 추정본 다수
19세기 말 서지학적 가치 높아
“동일 판본에 활자 재조판 흔적
독립기념관본 목활자 설득력”
“새긴 사람 표현 도원기서 기록
목판본 동경대전 완성” 주장도
‘동경대전’은 인제에서 초판이 만들어진 동학의 최대 경전이다. 하지만 판목이나 활자가 남아있지 않아 초판본에 대한 진위 여부는 학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이 논란은 2021년 도올 김용옥 교수가 ‘동경대전’을 발간하면서 불을 붙였다. 핵심은 2009년 충남 서산에 사는 이상훈 씨가 독립기념관에 기증 의사를 밝힌 ‘동경대전’이 인제에서 처음으로 발간된 목활자본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씨의 집안은 원래 대대로 동학의 2대 교조인 해월 최시형과 인연이 깊었던 지역인 영월에서 살았고, 그의 큰아버지가 남긴 유품이라는 것이 초판에 대한 설득력을 더했다. 기존에는 정선에서 만들어진 동학의 초기 역사서 ‘도원기서’의 내용에 따라 ‘목판’이라는 학설이 대다수를 이뤘다. 윤석산 천도교 교령은 2010년 ‘새로 발견된 목판본 동경대전에 관하여’라는 논문으로 초판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동경대전에 얽힌 여러 의견과 이야기들을 지난 19일 인제군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주최한 ‘인제 동학사상과 동경대전 학술대회’의 내용들과 함께 소개한다. 인제지역의 동학 선양을 위한 방안도 함께 제시한다.

■초판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동경대전 초판 추정본은 개인 소장자가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2009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돌아다녔다. 본지는 한승윤 연구자의 도움을 받아 1994년 범우사 출판사에서 나온 동경대전을 입수했다. 당시 동경대전의 영인본을 제작하고자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출판사에 의뢰해 인쇄한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최근 출판물임에도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실에 비치돼 있는 문건이다. 분류기호는 ‘古1912-20’이며 인제 초판으로 추정되는 독립기념관 기증본의 글씨체와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당시 발간에 참여했던 인물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200여부가 인쇄됐고 시중에는 거의 유통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더 놀라운 점은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독립기념관본과 일치하는 원본 동경대전(분류기호 古1912-19)도 존재했다는 것이다. 1986년 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간 책이며 도서관장의 직인이 찍혀 있다. 무엇보다도 동경대전 판본에 대한 기초 연구가 부실했음을 드러내는 사례다. 현재 이와 같은 동경대전은 독립기념관본, 국립중앙도서관본, 장서각본, 개인 소장본 등이 있다. 하지만 30년 전 이미 초판에 가까운 동경대전이 있었음에도 왜 존재 여부를 몰랐는지, 그것이 지금까지 어떻게 전승돼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동경대전 판본의 연구는 서지학적 가치도 매우 높게 평가된다. 19세기 말 조선의 책 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사회적 배경과 함께 다양한 판본에 따른 인쇄 방식과 종류를 분석할 여지도 충분하다. 동경대전 발간을 총괄했던 해월 최시형이 젊은 시절 종이를 만드는 조지소에서 일했다는 점도 이같은 관계성을 뒷받침 한다. 또 동경대전 발간 비용 171냥 중 인제에서 130냥, 정선에서 30냥을 지불하는 등 두 지역이 동학 부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뜨거운 감자’ 인제경진판
독립기념관 소장본의 초판 여부에 대한 확정은 학계에서도 의견이 나뉘는 가운데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맹수 원광대 명예교수는 “해당 동경대전은 발행일자와 간행자의 이름 등이 드러나지 않았고, 100권 밖에 발간되지 않은 책이 전국에 4권 이상 있다는 점에서 초판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독립기념관본 기증 당시 해당본을 확인했던 성주현 청암대 교수는 “과거에는 판본 연구가 부족했고 최근 들어 목활자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제경진판이라는 가능성이 있지만 ‘동학론’이 쓰여진 다른 책이 남아 있어 아직 초판본으로 확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윤석산 천도교 교령은 해당 판본을 초판으로 확정할 수는 없고, 초판이 존재한다면 도원기서의 내용에 따라 목판으로 제작됐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초판본을 확인하려면 ‘도원기서’를 쓴 전세인의 글씨체와 필적 확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가운데 초판이 목활자인지 목판인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동경대전의 간행 과정을 통해 당시 동학의 활동 양상을 살피려는 시도다.
서지학 전문가인 손계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1880년대 간행 동경대전’이라는 발표를 통해 독립기념관 소장 동경대전을 목활자본으로 추정했다. 목활자로 추정되는 테두리가 선명하게 인쇄됐다는 점, 활자의 높이가 맞지 않아 일부가 인쇄되지 않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동일한 판본으로 보이는 국립중앙도서관본 등과 비교했을 때 서로 다른 글씨체의 활자를 사용해 재조판을 한 흔적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다. 손 교수는 “도원기서’ 등 문헌기록에 따라 1880년대 동경대전은 목판본이라는 편향된 시각이 있었다. 19세기 들어서는 목판과 목활자의 인쇄 용어가 혼용됐다”며 “목판본은 목활자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들고 대량 발간이 가능한데 100부만 인쇄했을리는 없다”고 말했다.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도 “도원기서에 목판본 출간을 의미하는 침재·기궐·간판·각판 등의 용어가 쓰여 있어 목판본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1880년대의 동경대전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목활자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목판 인쇄라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6월 열린 ‘도 지역학 연구 발표대회’에서 인제의 동학 교세와 동경대전 판본을 주제로 발표한 한승윤 인제문화원 연구자는 해당 책이 동경대전 초판은 맞지만 목활자본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연구자는 “1882년 이전 동경대전의 ‘논학문’은 ‘동학론’으로 쓰였는데, 이것 외에는 ‘동학론’이 목차에 들어간 것이 없다. 동경대전 초판의 발문은 도원기서에 쓰여있고, 7권 1책으로 나뉘어졌다는 내용과도 일치한다”고 했다. 해당 책이 목판본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는 “동경대전 발간 과정을 쓴 도원기서의 별공록을 보면 글을 쓴 사람(서유사)과 목판에 글을 새긴 사람(각수)이 존재한다. 각수 4명이 14일간 작업하면 동경대전 목판 64판을 새길 충분한 시간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김진형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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