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교수 하다가 재벌이 된 남자

고(故) 신용호(왼쪽) 교보생명 창립자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 회장은 2023년 ‘보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 명예의 전당 월계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부친에 이은 쾌거로, 신 창립자는 1996년 이 상을 수상했다. 교보생명 제공

신창재(72)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은 전형적인 이과생이다. 학창 시절 공학에 관심이 많아 처음에는 공대 전기과 진학을 꿈꿨다. 진로를 고민하던 중 ‘매형 될 사람’(고 함병문 전 서울대 의대 교수)이 의대에 다니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의사의 길을 결심했다. 의대로 진로를 바꾸자 부친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도 “의사가 사업가보다 너의 성격에 잘 맞을 것 같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새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일이 얼마나 보람찬 직업이냐며 크게 기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창재 회장은 1953년 10월 31일 서울에서 신용호 창립자와 부인 유순이씨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경기고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부인과 의사를 거쳐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로 근무했다. 암 선고를 받고 경영권 승계 문제를 고민하던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1996년 교보생명 부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했으며 2000년 회장직에 오른 뒤 적자 기업이었던 교보생명을 총자산 기준 생명보험 업계 3위로 키워 냈다.

신 회장은 검소한 편이다. 교보생명에 입사(1996년)하기 전인 1993년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할 당시 전임자가 쓰던 법인 차량인 로얄 브로엄을 물려받았는데, 차량을 바꾸자는 임원들의 제안에 손사래 치며 “저 지금 르망 타요”라고 답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술도 즐기지 않는다. 서울 의대 시절 폭탄주에 질려 직업을 경영인으로 바꾼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와인이나 맥주 정도를 가볍게 마실 뿐 술자리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30년 넘게 서울 중구 교보생명 본사 2층에 터를 잡고 있는 레스토랑 ‘라브리’가 우리나라에 와인 문화를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아이러니다. 골프도 한때 시도했지만, 경영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금방 접었다.

교보생명은 경영 승계라는 주제를 놓고도 '정도(正道)'를 걷고있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교보생명은 세대를 이어 가며 보통의 재벌가와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2003년 창립자 신용호 회장이 별세한 이후 오너일가가 주식 현물 등으로 18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납부했다는 스토리는 유명하다. 당시로서는 국세청이 개소한 이래 최대 액수의 상속세액으로 회자됐다.

오너 2세이자 맏아들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가업을 잇고 상속세를 부담하는 과정에서 지분율이 45%에서 33%까지 크게 하락하기도 했다. 부친인 고 신용호 회장이 경영철학으로 강조했던 '성실'의 원칙은 대를 이어 경영 뿐 아니라 납세에서도, 또한 경영 승계에 있어서도 올곧은 신념으로 적용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창립회장은 '경영은 유능한 경영자가 해야한다'는 원칙 하에 일찍부터 전문경영인에게 대표자리를 맡겨왔다. 아들 신창재 회장이 대표에 올라 2세 경영이 시작된 것도 신용호 회장의 병환이 급속히 악화되던 시기였다. 신창재 회장은 43세에 처음 교보생명 경영에 합류했으며 1999년, 46세의 나이로 대표자리에 올랐다.

요약
원래 재벌 2세 였는데 진로를 고민하던 중 '매형될 사람'이 의대에 다니는 것을 보고 자극 받아 의사의 길을 결심한뒤 서울대 의대에 진학해 산부인과 의사, 서울대 교수를 하다가 암 선고를 받고 경영권 승계 문제를 고민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제자리로 돌아감

- 1996년 , 43살에 입사해서
- 1999년 , 46살에 대표 자리에 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