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회 키네마준보 일본영화 BEST10 1위 작품, <오키쿠와 세계>의 국내 개봉을 기념하며 내한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지난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봉준호 감독, 유지태 배우 등과 함께 한국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오키쿠와 세계>는 19세기 에도 시대,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쿠로키 하루)와 인분을 사고파는 분뇨업자 '야스케'(이카메츠 소스케)와 '츄지'(칸이치로), 반짝이는 세 남녀의 사랑과 청춘을 경쾌하게 담은 시대극인데요.

먼저, 2월 24일 오후 2시 에무시네마에서 처음 한국 관객들을 만난 사카모토 준지 감독과 하라다 미츠오 프로듀서 및 미술감독은 "젊은 분들이 굉장히 많아서 놀랐다.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라 감사하고 기쁘다"라고 처음 인사를 건넨 이후, 오후 4시 아트나인에서는 "해외 여러 곳에서 상영했을 때, 이 소리를 견딜 수 있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스릴러'라는 감상을 들은 적이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영화 보셨을지 궁금하다"며 19세기 에도 시대 분뇨업자를 배경으로 설정한 낯선 일본 흑백 영화를 방금 막 스크린으로 접한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궁금해했죠.

이후 19세기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하게 된 이유, 흑백 영화로 찍게 된 계기, 캐스팅 비하인드, 영화의 주제가 되는 '순환 경제'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 등이 오가는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똥' 제작 비하인드가 밝혀지며 현장에서는 웃음꽃이 폈는데요.
"먹을 수 없는 똥과 먹을 수 있는 똥이 있다. (웃음) 공동주택에서 나르거나 배에 싣는 똥은 박스를 찢어 물에 담가 기름을 부어 발효시킨, 거기에 거품을 내는 약재를 써서 만든 먹을 수 없는 버전의 똥이다. 배우에게 튀어 입에 들어갈 수도 있는 장면에서는 글루텐 밀가루를 활용해 만든 먹을 수 있는 똥을 만들어 썼다."

여기에 진행을 맡은 김세윤 작가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존재들이 주인공이 되는 게 영화라면, 저는 마땅히 언젠가는 '똥'이 주인공이 돼야 했을 운명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 '똥'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눈부신 '청춘'의 이야기까지 나아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각별히 좀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2월 25일 오후 2시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에서는 '봉테일'이라는 별명답게, 영화 곳곳에 숨겨진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섬세한 연출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죠.
이를테면, 영화의 리듬감을 생성하는 컬러 장면을 기습적으로 삽입한 연출 의도가 무엇인지, 3년간 서장과 종장을 포함하여 총 9장의 이야기를 나눠 찍으면서 새로운 챕터를 써 내려갈 때 어떤 리듬으로 이어갈지 고민했던 시간을 되짚어보거나 영화 전체의 묘한 운율을 형성하는 듯한 아름다운 인서트 샷들을 어느 위치에 어떻게 넣고 어떤 박자로 조절했는지 등과 같은 선배 감독에게 엿들을 수 있는 '작업 비밀'들을 물어보았는데요.

또한, 쿠로키 하루가 연기한 '오키쿠'를 "특유의 생명력이 있는데, 여자로서의 부끄러움이나 수줍어하는 면모도 있고,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딸로서 이미 상처를 갖고 있는 소심한 측면과 주민들 앞에서는 똑 부러지게 얘기하는 강단 같은 것도 있다. 여태껏 어디서도 본 적 없었던 캐릭터"라며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 설경 씬에 대해서는 "'츄지'가 눈이 오면 온 사방이 고요해지는 게 좋다고 했는데 그 장면에 음악이 없다. 주인공에 대한 감독님의 섬세한 배려였을까요?"라며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캐릭터의 마음마저 배려하는 섬세한 시선에 대한 사려 깊은 질문을 던졌고, "본인의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눈이 내리면 사방이 고요해져서 좋다던 '츄지'의 마음을 생각하고 헤아린다면, 그 장면에서는 음악을 넣고 싶어도 넣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음악을 넣지 않았다"라는 답변을 끌어내 관객들에게 좀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영화적 해설을 전했죠.
봉준호 감독과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2000년 <얼굴>, <플란다스의 개>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처음 만났고, <KT>(2002년), <살인의 추억>(2003년) 같이 서로의 영화가 촬영 중이거나 개봉할 때 서울 혹은 도쿄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특별한 우정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끝으로 2월 26일 오후 7시 30분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유지태 배우와의 만남은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좋았다. 감독님이 오랜 세월 쌓아온 시야로 삶을 관통하는 공유적인 표현들이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 시적으로 표현된 것 같았다. 보통은 영화가 관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온갖 기술들을 사용하고 자극적으로 완성해 가는데, 이 영화는 그런 구석 없이 순수하게 완성된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웠다"라는 유지태 배우의 열렬한 감상으로 시작됐는데요.

이후 장성란 영화 저널리스트의 안정적인 진행 아래 상영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열띤 질문들이 이어졌는데, "똥의 직접적인 묘사로 인한 그로테스크함을 피하고자 흑백 영화를 찍었냐고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오히려 순서는 그 반대다. 언젠가 흑백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하라다 미츠오 프로듀서의 자본으로 만든 독립 영화의 형식이었기에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흑백 영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에 미술팀이 만든 똥을 실제로 보게 되었는데, 질감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흑백 영화로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흑백 영화로 만들어 안심하게 되었다는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사연이 밝혀져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이외에도 제목에 담긴 에피소드, 유지태 배우가 배우로서 욕심났던 캐릭터, 컬러 장면에 대한 연출의도 등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며 다채로운 이야기가 이어졌는데요.
한편, '츄지'에게 뜬금없는 순간 '세계'에 대한,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던지는 '오키쿠'의 아버지 '겐베이'(사토 코이치)처럼 멀찍이 서서 청춘을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는 장성란 영화 저널리스트의 감상에,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촬영 당시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가 어수선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세계'라는 단어에 주목할 수 있었고, 보통은 절망적인 결말을 선호하는 편인데 왠지 이 영화는 산뜻하게 끝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하고 무시를 당할지라도 자유를 갈망하는 결말을 내고 싶었다. 누군가 그랬다. '내일 세계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고 싶다.' 그 말을 떠올리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답하며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끌어냈습니다.
- 감독
- 사카모토 준지
- 출연
- 쿠로키 하루, 칸이치로, 이케마츠 소스케, 마키 쿠로우도, 사토 코이치, 이시바시 렌지, 하라다 미츠오, 사카모토 준지, 오노데라 아키히로, 카사마츠 노리미치, 스기모토 다카시, 야스카와 고로, 츠지마 겐이치, 시마 준이치, 하야노 료, 하라다 미츠오
- 평점
-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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