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제네시스 GV80의 뒤를 이은 두 번째 SUV로 등장한 GV70이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했다. 이번 부분 변경을 통해 라인업에서 직렬 4기통 디젤 2.2ℓ 파워트레인을 덜어냈다. 이제 직렬 4기통 2.5ℓ 가솔린 터보와 V6 3.5ℓ 가솔린 터보 모델뿐이다.
친환경 프리미엄 브랜드란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어차피 승용 디젤 엔진은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테니 말이다. 상반기 국내 신차 등록 데이터를 보더라도 디젤 엔진 차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무려 54.8% 줄어든 7만 5985대에 그쳤다.
올 상반기에 판매된 제네시스 브랜드의 차들은 전체 6만 9367대였다. 그중에서 제네시스 GV70은 1만 400대였다. 디자인과 일부 상품성을 개선한 부분 변경 모델이 출시되었으니, 판매량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 GV70은 볼수록 매력이 있다. 도로 위에서 경쟁 모델인 메르세데스-벤츠 GLC나 BMW X3와 나란히 서있어도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이다.
제네시스 GV70은 부분 변경 하면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친환경 고성능 브랜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미세 조정에 들어갔다.
광택이 없는 짙은 그레이 컬러의 정장을 빼입은 GV70은 단단한 체구에 어느 한 곳 군살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견고한 몸매의 말끔한 모습이었다.
GV70은 부분 변경하면서 제네시스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인 두 줄의 헤드램프를 작은 LED 램프를 가지런히 일렬로 나열한 MLA 타입으로 교체했다. 보닛 위에 달린 새로운 엠블렘과 새로운 MLA 헤드램프는 제네시스의 새로운 패밀리룩 디자인이다.
사승 차는 스포츠 패키지였다. 스포츠 패키지는 전용 디자인으로 차별화한 디자인 요소들이 몇 군데 있다. 먼저 라디에이터 그릴이다. 안쪽 매시는 블랙으로 바깥쪽 그물망 모양은 로즈 골드 컬러로 도색해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모습이다.
범퍼 디자인도 차별화했다. 앞 범퍼는 커다란 인테이크 홀을 뚫었고 리어범퍼에 듀얼 싱글 머플러 팁과 다크 크롬 디퓨저를 장착해 스포츠 성능을 과시하는 듯하다. 일반 모델은 머플러 팁을 리어범퍼 안으로 숨긴 히든 타입이다.

5 스포크 21인치 전용 휠과 레드 컬러의 브레이크 캘리퍼 역시 역동적인 인상을 주기 위한 스포츠 패키지만의 디자인 요소다. 자세히 보니 부분 변경하면서 리어 스포일러의 디자인도 변화를 주었다.
GV70은 디지털 키로 도어 잠금을 해제할 때 보여주는 다이내믹 웰컴 라이트 쇼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분 변경하면서 모든 도어핸들에 스마트키 터치 센서를 장착했다. 대부분 브랜드가 은근슬쩍 코스트 다운하며 앞 문 도어핸들에만 스마트키 터치 센서를 달고 있는데 GV70은 오히려 뒷문까지 추가했다. 이게 뒷문에 없으면 은근히 불편한데 모든 도어에 추가한 건 칭찬할 일이다.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실내 공간도 스포츠 패키지 전용 컬러와 소재들로 채워졌다. 고급스러운 나파 가죽 소재로 시트와 도어트림, 대시보드를 감쌌다. 정열의 색상 빨간색 가죽과 레드 컬러 스티치, 가니쉬로 포인트 장식했다. 통합 컨트롤러와 전자식 변속 다이얼, 컵홀더가 놓인 은빛의 센터 터널이 멋지다. 블랙과 레드, 실버 컬러의 조화는 젊고 역동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준다.
어느 순간부터 제네시스의 고급스러운 감성에 감탄하게 되었다. 어지간한 수입차들 인테리어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내장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어링 휠도 스포티한 디자인의 플랫 바텀 스타일이다. 운전대 바닥을 평평하게 디자인해 D컷 스티어링 휠이라고도 한다. 운전대를 잡은 손의 촉감이 만족스럽다.
운전석에 앉으니, 엉덩이와 등, 옆구리를 잡아주는 볼스터가 몸을 감싸 안는 듯 편안하게 잡아준다. 등받이의 퀼팅 패턴도 멋스럽다. 메탈로 제작한 제동과 가속 페달도 스포티하다. 도어트림 상단과 중간에 앰비언트 램프를 장착해 분위기를 더했다.
디지털 센터 룸미러는 카메라로 촬영한 후방을 보여준다. 뒷차의 운전자와 동승자의 표정이 고스란히 보일 정도로 선명한 화질이다.
악천후나 트렁크에 큰 짐을 실어서 뒤편이 안 보일 때 편리하다. 다만 실내에 27인치 OLED 통합형 디스플레이와 디지털 센터 룸미러까지 모니터가 많아서 눈이 아주 피로하다. 평상시에 작동을 끄는 게 좋겠다.

2열 공간도 크게 불편함이 없다. 루프 라인때문에 머리 공간이 다소 낮은 느낌이지만, 시트 등받이를 뒤로 눕힐 수 있어 불편하지 않다. SUV라면 2열 시트는 리클라이너 기능을 넣어야 하는 시대다. 옵션으로 추가된 뒷좌석 전용 공조 장치와 3단계로 조절되는 통풍 시트까지 제품개발 담당자에게 애정을 느낄 정도다. 무릎 공간도 비좁지 않다. 다만 후륜구동이라서 센터 터널이 높게 올라온 게 다소 아쉽다.

시승할 차는 배기량 3470cc V6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결합한 파워트레인을 품 안에 감추었다. 멋진 정장을 입었지만, 노타이 차림에 셔츠 깃과 옷소매로 언뜻 보이는 목과 손목의 굵은 힘줄이 사내다운 매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제네시스의 정체성을 보여주듯 두 줄을 그은 21인치 휠과 그 사이로 보이는 붉은색 브레이크 캘리퍼 컬러만 보아도 매서운 성능을 감추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GV70의 앞바퀴 브레이크 장치는 4P 모노 블록 브레이크 캘리퍼를 장착했다.
시동을 켜자 잠에서 깨어난 6개의 실린더가 그르렁거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것 봐라'라는 생각과 동시에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크리스털 재질의 8각형 전자식 변속 다이얼을 돌려 D 레인지로 두고 천천히 출발했다. 개인적으로 칼럼형 기어노브를 앞·뒤로 돌리는 타입보다 로터리 타입이 맘에 든다.
걸걸한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출발한다. 런치 필링은 아주 부드럽다.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고 서서히 속도를 올려본다. 가속 페달의 반응이 빠르다.

시속 60km에서 시속 120km까지 추월 가속 성능도 빼어나다. 계기반의 바늘이 최고 시속을 향하면서 속도가 빠르게 오르자, 하체가 조금 무르다는 판단이 들어 감속하게 된다.
역시 배기량이 깡패란 우스갯소리는 사실이다. 가속 성능은 나무랄 데 없다. 그렇지만 GV70은 스포츠카처럼 박진감 넘친다기보다 민첩하고 매끄럽게 움직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코너링 능력도 출중하다. 스포츠 패키지에 추가되는 전자식 차동 제한 장치(e-LSD)의 안정적인 코너링 성능은 꽁무니가 흔들리며 미끄러지는 상황을 겪지 않도록 해준다.
스포츠 패키지에 운전자 모드에 스포츠 플러스 모드가 추가되었다. 차체 자세 제어 기능을 끄고 더 위험천만하고 아찔한 운전 경험을 원하는 자만 선택하길 바란다.
배기량 3470cc V6 가솔린 터보 엔진은 최고 출력 380마력, 최대 토크 54.0kg·m을 낸다. AWD 시스템은 기존 스노, 머드, 샌드 모드에 AI 기반의 오토 터레인 모드를 추가했다.

파워트레인의 변화는 없다. 출력이나 성능의 변화는 없지만, 대신 전반적으로 승차감을 향상했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한번 사용해보면 헤어나지 못하는 늪에 빠진 듯 다른 차에 올라타기 싫어질 정도다. 앞쪽의 노면 상태를 카메라로 미리 인지해 서스펜션 댐퍼의 감쇠력을 조절하며 안락한 승차감을 유지한다.
이번 부분 변경에서 고속도로에서 ADAS를 켜고 주행하면 앞차의 거리에 따라 가속과 제동을 하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차체의 불필요한 피칭이나 노즈 다이브 현상을 줄여주는 HBC(Highway Body motion Control) 장치를 추가했다. 또한, 하체 전체에 일반 고무 부싱이 아닌 값나가는 하이드로 부싱을 장착하는 등 승차감을 높이는데 힘을 기울였다.
고속 주행하는 동안 의아한 부분이 생겼다. 6기통 엔진의 우렁찬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지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흡음재로 격벽 사이의 틈을 잘 메꾸었는지 실내 정숙성이 놀라운 정도였다. 겉모습과 다르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다. 윈드노이즈도 그렇고 노면 소음도 그렇고 창틈과 바닥의 견고한 방음 소재를 뚫지 못했다. 잡소리가 안 들리니 뱅앤울룹슨 오디오 시스템의 청아한 음색을 즐기기 편하다.

제네시스 GV70은 페이스리프트하면서 스티어링 휠을 운전자가 잡고 있는지 감지하는 센서를 정전압 터치 방식으로 바꿨다.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빌트인 캠 2, 콘솔 박스 자외선 살균, 전방 충돌 방지 보조 2,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2 등 안전 및 편의 장비들도 업그레이드하고 상품성을 높였다.
현대차그룹이 제네시스 브랜드를 몇 년 더 빨리 출시하고 고성능 럭셔리 브랜드로 입지를 다졌다면 어땠을까? 가끔 요즘 수입차들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아마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차의 배지가 독일 브랜드가 아니라 제네시스였을 테다. 차를 바꾸라고? 주머니 사정에 비해 요즘 찻값이 너무 비싸다. 제네시스 GV70도 페이스리프트하면서 340만원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