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의 고수] 퇴직연금 환승시대 열린다… 돈 불리는 투자전략은

김유진 기자 2024. 10. 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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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부터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 시행
동일 유형의 퇴직연금 제도끼리만 이동
“투자 성향 고려한 연금 이전 전략 필요”
“다양한 투자 수단 확보한 금융사 유리해”
일러스트=챗GPT
김혜미(가명·36세)씨는 이직을 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A은행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받았다. IRP 계좌에서 정기예금과 펀드로 퇴직 적립금을 굴리던 혜미씨는 B증권사로 퇴직연금 계좌를 옮기라는 친구의 조언을 들었다. 친구의 퇴직연금 계좌 수익률을 본 뒤 솔깃해진 혜미씨는 증권사로 퇴직연금 계좌를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퇴직연금을 이전하려고 하니 현재 IRP계좌에서 운용 중이던 상품을 모두 팔아 현금으로 만들어야 했다. 퇴직연금 계좌를 옮길 때 운용 중인 상품을 실물 형태로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혜미씨는 아직 상품의 만기가 돌아오지 않았고 중도 해지하면 수수료까지 붙는 터라 당장 퇴직연금 계좌를 증권사로 옮기는 것을 보류했다.

앞으로 혜미씨처럼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금융사로 이동하고 싶다면 자산을 현금화하지 않아도 계좌를 이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정부가 오는 15일부터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회사로 이전할 때 현재 상품을 실물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는 말 그대로 현재 퇴직연금 계좌에서 굴리는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현재 상태 그대로 타사 계좌로 옮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는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내는 금융사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현재 확정기여(DC)형 또는 IRP 계좌를 타사로 옮기려면 계좌 안에서 투자하던 상품을 모두 팔고 현금화해야 이전이 가능했다. 이때 만기가 안 된 예금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중도해지에 따른 이자 손실을 투자자가 떠안아야 했다. 펀드의 경우라면 매도 후 다시 매수하는 기간 자산 가치 상승의 기회를 버리고 퇴직연금 계좌를 옮겨야 했다. 새로운 퇴직연금 계좌로 옮기더라도 다시 투자할 상품을 골라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는 불편함도 가입자가 감수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수익률이 낮더라도 한 번 선택한 퇴직연금 사업자를 바꾸는 가입자는 적었다.

퇴직연금 실물 이전을 한다면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할까. 먼저 동일 유형의 퇴직연금 제도끼리만 실물 이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DC형은 DC형으로, IRP는 IRP로 실물 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은행에서 DC형에 가입하고 있는 사람이 증권사의 IRP 계좌로 퇴직연금을 실물 이전하려고 한다면 곧바로 계좌를 갈아타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DC형 퇴직연금 계좌를 동일 은행의 IRP 계좌로 갈아탄 뒤 증권사의 IRP 계좌에 가입하는 방법 또는 증권사의 DC형 퇴직연금으로 먼저 이전한 후에 IRP 계좌를 개설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그래픽=정서희

퇴직연금에서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모두 실물 이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예금,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은 이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식, 리츠, 파생결합증권처럼 이전이 불가능한 상품도 있다. 디폴트옵션의 경우에도 실물 이전이 되지 않는다.

실물 이전이 가능한 상품이더라도 퇴직연금을 옮기려는 해당 금융사가 동일한 상품을 취급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실물 이전을 희망하는 가입자는 이관 회사 또는 수관 회사에서 본인 보유 상품 중 실물 이전 가능한 상품이 무엇인지를 미리 조회할 수 있다.

만약 금융사에 공통으로 취급하는 상품이 아니라면 가입자가 해당 상품을 스스로 현금화한 뒤 이전 신청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퇴직연금 계좌에서 C은행의 정기예금과 국채를 가입했는데, 실물 이전을 하려는 금융사에서 국채는 취급하지만 C은행의 정기예금 상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는 국채는 그대로 실물 형태로 옮길 수 있지만, C은행의 정기예금 상품의 경우 동일한 상품이 없어 실물 이전이 되지 않는다. 결국 가입자는 C은행의 정기예금 상품을 현금화해야 퇴직연금 계좌를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계좌를 타금융사로 옮기기는 쉬워진 만큼 퇴직연금 가입자가 투자 성향을 고려해 이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류연서 KB골든라이프 평촌범계연금센터 센터장은 “퇴직연금을 다른 기관으로 이전할 때 상품을 중도 해지해야 하는 경우라면 수수료나 원금 손실 가능성을 모두 고려한 뒤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라며 “퇴직연금이라는 것은 노후 자금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어느 금융사의 상품이 수익률이 높다는 주변의 말에 휩쓸려 퇴직연금 계좌를 이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류 센터장은 “퇴직연금은 장기적으로 원금 손해를 보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을 내야 하므로 본인만의 투자 기준을 확고히 세우고 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센터장은 “연금의 취지가 장기 자산을 축적하려고 하는 것인 만큼 보다 적극적인 글로벌 자산 배분을 해야 한다”라며 “특히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헤지(Hedge·손실 위험 방지)할 수 있어야 하는 부분도 있는 만큼 다양한 투자 수단을 확보하고 있는 금융사가 퇴직연금 가입자들에게 더 편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연금 백만장자가 나오고 있는 미국의 경우 연금 투자 비중이 인덱스, 펀드 등에 집중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연금자산에서 투자 비중이 너무 낮다”라면서 “이제는 우리나라도 자본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된 만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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