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패션 사진계의 '창의적인 괴짜', 윌리엄 클라인

최근 열린 뉴욕에서의 회고전을 통해 그의 획기적인 경력을 되짚어보자.

본래 예술가란 여러 분야는 고사하고, 한 분야에서조차 위대한 업적을 달성해내는 경우가 드물다. 이 부분이 바로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이 창의적인 괴짜일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그는 회화, 사진, 영화,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대담한 혁신을 일으켜 왔다.

약 70년에 걸친 그의 작업을 총망라한 뉴욕 국제 사진 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 ‘YES: Photographs, Paintings, Films, 1948–2013’는 오늘날 94세를 맞이한 예술가에게는 일종의 "귀향”과도 같은 전시이다. 그는 파리에서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의 지도하에 그림을 배우다가, 다시 빅 애플(Big Apple, 뉴욕을 지칭하는 단어)로 돌아와 그의 대작 ‘Life is Good and Good for you in New York: Trance Witness Revels (1956)’을 완성했다. 고속 필름, 고대비, 그레인 블러, 광각 렌즈, 혁신적인 프레임을 통해 클라인은 우연과 추상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는 “아이들, 흙, 광기처럼 뉴욕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적인 요소를 포착해내기 적합한 사진 스타일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내 사진들은 마치 데일리 뉴스(New York Daily News)처럼 시궁창에 널브러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곤 한다.”

로마, 모스크바, 도쿄에서 쓰인 책들은 각각 다른 방식을 통해 사진이 지닌 역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만약 클라인의 본성이 다다(Dada)였다면, 아마 그는 타이포그래피, 도시의 쓰레기, 터무니없는 팝 아트에 이끌렸을 것이다.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에 걸쳐 그는 보그(Vogue)와 함께 상업적인 작업을 진행했다. 화려한 아트 디렉터 알렉산더 리버맨(Alexander Liberman)의 디렉팅 아래에서, 클라인은 잡지에 "삶의 투지"를 불어넣었다. 모델들은 거리로 나와 날렵하게 포즈를 취했다. "좋은 취향"의 규칙과 관련한 클라인의 전복적인 입장은 패션 사진계에 만연해 있던 엘리트주의적인 요소를 뒤엎으며,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클라인은 1966년 보그를 떠났고, 패션계는 그의 맹렬한 풍자의 시선이 담긴 ‘Who Are You, Polly Maggoo? (1966)’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가 만든 영화 또한 그의 사진만큼이나 획기적이다. ‘브로드웨이 바이 라이트(Broadway By Light, 1958)’는 아마도 최초의 팝 아트 영화로 꼽힐 것이다. 한편 ‘Muhammad Ali’, ‘May 68’, ‘Black Panthers’, ‘Little Richard’, ‘Handel’s Messiah (1741)’에 관한 그의 색다른 다큐멘터리에서는 즉흥적인 장면과 범주를 넘나드는 그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클라인의 작품은 예술이 어떤 매체에서든 제품이 아닌 비전으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듯하다.

아래에서 ‘Large David Campany’의 ICP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클라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끊임없이 장르를 뛰어넘으며 창의성을 보여준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클라인은 1948년 파리로 어떻게 넘어가게 되었나.
클라인은 1928년 할렘 변두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뉴욕의 온갖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현대 미술과 사랑에 빠지곤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2년 동안 미군과 함께 독일에 있었지만, 파리로 향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이후 파리에서 예술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페르낭 레제로부터 미술을 배웠다. 클라인은 처음에는 회화적인 작품을 선보였지만, 이후에는 추상적인 화가로 거듭났다. 그러나 레제는 클라인에게 갤러리를 넘어 건축이나 새로운 미디어에 끊임없이 도전해 보라는 조언을 건넸다. 클라인은 그래픽 디자인을 접목해 아파트에 쓰일 회전 패널로 만든 칸막이를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동안 그는 패널을 돌려보았고, 장노출에서 물체가 흐려지는 장면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이를 암실로 가져가 종이 위에 빛을 비춘 뒤, 수백 점의 추상적인 사진 작품을 제작해냈다. 당시 그들은 흥미로운 발견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가 파리에서 보그의 아트 디렉터인 알렉산더 리버만이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고, 1954년에 그는 클라인에게 뉴욕에서 다시 잡지 업무에 합류할 것을 권했다. 이후 그는 위대한 패션 사진 작가이자, 가장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거리 사진 작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클라인은 첫 보그 촬영에서 스트레치 스타킹을 사진에 담았다. 거리부터 스튜디오까지, 그는 어떻게 다채로운 장소에서 모델과 함께 실험을 거치기 시작했나?
사진에 있어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 창의적인 문제 해결이 아닐까. 클라인은 애매한 주제에서도 인상적인 이미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이는 그의 초기 패션 정물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50년대를 주름잡던 전설적인 패션 사진 작가는 어빙 펜(Irving Penn)과 리처드 애버던이었지만, 클라인은 참을성이 없었다. 모델들과 작업하자마자 그는 규칙을 어기고 바로 거리로 나가 그들과 함께 즉흥적으로 촬영하며, 하이 글래머 스타일을 조롱하는 듯한 포즈를 발명해냈다. 60년대 초반까지 그의 사진에서는 발칙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창의성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의 성격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쉽게 지루해하고, 굳건한 규칙 같은 것에 대해 늘 의심을 품곤 했다.

클라인이 함께 작업한 모델 중 한 명인 도로시 맥고완(Dorothy McGowan)은 브루클린 거리에서 만난 인연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맥고완과 클라인은 훌륭한 협력 관계에 있었다. 맥고완은 서민이었지만, ‘패션의 얼굴’이 되기 위해 모델로 뽑혔다. 그래서 그는 클라인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1962년에 맥고완이 추상적인 조명에 둘러싸여 진행했던 보그 피처 촬영이 있다. 당시 사진은 장노출로 촬영됐었고,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조수가 움직이는 조명 뒤에 서 있었다. 그순간, 갑자기 섬광이 조수의 옷과 얼굴을 비췄다. 3년 후, 패션 사진 작가로서 클라인의 능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첫 장편 영화인 ‘폴리 마구, 당신은 누군가요?’를 제작했고, 맥고완은 영화에서 ‘마구(Maggoo)’ 역할을 맡았다. ‘폴리 마구, 당신은 누군가요?’는 패션계를 신랄하게 풍자한 영화이다. 패션계는 물론 우아하고 흥미로우며, 카리스마적이고 아름답다. 그러나 클라인은 이 세계에 작은 구멍을 뚫어, 그 속에 숨은 작은 모순과 약점을 지적해냈다. 이 영화를 통해 패션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무리가 있지만, 폴리 마구(Polly Maggoo)라는 캐릭터를 굉장히 잘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예전으로 조금 되돌아가 보자. 1954년, 보그에서 일하면서 클라인은 거친 뉴욕의 거리에서 정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보그는 이 사진들을 저속한 것으로 간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클라인은 패션 작업을 통해 돈을 벌었지만 다른 일, 그중에서도 특히 규칙을 깨는 거리 사진 작업을 하고 싶어 했다. 피사체를 카메라의 광각 렌즈 가까이에서 포착해, 그레인과 흐릿한 기법으로 표현했다. 그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돈에 집착하는 암울한 도시인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그는 평등과 성공과 관련해서 자기 기만적인 입장을 취하는 인물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도시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관해서도 솔직한 입장을 취했지만, 정작 그의 사진은 흑인의 삶을 축복하는 사진들이다. 1950년대에 수많은 사회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피해의식에 빠져 살지 않았다. 클라인은 수백 장의 사진을 편집하고 레이아웃, 캡션, 표지 제작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책을 펴냈다. 이렇게 완성된 그의 책은 사진 예술의 정수를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미국의 출판사는 이에 관심이 없었지만 파리, 밀라노, 런던에는 그의 책이 깔렸으며, 이후 그는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많은 사진 작가들에게도 이는 전환점과 같은 순간이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는 무엇인가?
책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에너지 탓에 숨이 막힐 정도이다. 그의 책에서는 단조로운 사진이나 레이아웃을 단 한 장도 찾아볼 수 없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반전과 놀라움의 연속이다. 약간의 다다, 약간의 팝아트, 약간의 파파라치, 약간의 냉소 다음으로는 대상을 향한 그의 깊은 애정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사진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그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클라인의 의견이나 관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그의 책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만화경과도 같다.

클라인은 사진과 어울리는 멋진 캡션을 더하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캡션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광고는 그로테스크하다. 광고주와 대중 사이의 음모가 점점 발전하여 하나의 유머가 된다. 대중은 이에 감사함을 느끼고 이와 관련해 수다를 떨며 광고를 뒤쫓는다.” 비록 1956년에 쓰인 문장이지만, 마치 2022년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후 발간된 책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뉴욕에 관한 책 이후 로마에 관한 책이 한 권 나왔는데, 나는 그 책을 학창 시절 한 중고품 가게의 선반에서 발견했다. 그 책은 마치 펠리니(Fellini) 영화를 책으로 만든 것과 같았다. 사실 펠리니는 클라인을 로마로 초청해, 그의 차기작을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매춘부의 사진을 촬영할 것을 부탁했다. 클라인은 촬영이 늦어지게 되자, 시내 곳곳을 카메라에 담으며 돌아다녔다. 로마의 모습을 표현한 이 책은 도시의 폐허와 현대적인 거리가 이루는 미묘한 조화를 그려냈다. 이후에는 모스크바와 도쿄 시리즈가 나왔는데, 클라인은 자신을 돌보는 관리인들로부터 빠져나와 홀로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곤 했다. 이 네 권의 책은 사진 및 출판 분야에서 손에 꼽히는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이를 모방할 수는 있어도 결코 같아질 수는 없는 이 책들은 수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삶을 향한 헌사이자 끊임없는 시각적 영감의 샘이다. 이는 단순히 사진을 감상주의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본주의적인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책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책은?
‘도쿄(Tokyo, 1964)’가 가장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클라인은 도쿄를 두고 처음에는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문화로 가득 차 있었다고 솔직하게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예술가, 공연하는 사람, ​​정치인, 노동자 등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했고, 그 결과 진정한 기쁨과 경이로움이 담긴 사진이 탄생했다. 클라인은 늘 객관성이라는 개념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왔지만, 진정성만은 늘 강조해왔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것은 결국 만남이고, 이미지는 그 만남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 순간의 즉흥적인 느낌과 사람 간의 상호 작용 그리고 극적인 감각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법이다. 이는 카메라를 든 클라인이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추는 일종의 춤과도 같다.

히지카타 타츠미(Tatsumi Hijikata), 오노 카즈오(Kazuo Ohno), 오노 요시토(Yoshito Ohno)의 사진은 도쿄 거리에서 단 하루(1961년 6월 27일) 만에 찍은 사진으로, 초기 부토(Butoh) 운동과 관련한 굉장히 훌륭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클라인은 이들의 어떤 점에 이끌렸는가?
클라인은 이들의 공연을 단순히 인간 존재의 일부로 이해했다. 우리 모두는 낯선 사람, 친구,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공연을 펼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사회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측면에서의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클라인은 거리의 아이들, 추방자, 도발하는 사람들처럼 이 모든 것을 깨부수는 이들에게 이끌렸다. 아방가르드한 부토 집단은 실제로 일본 사회에서 용인되는 것의 한계를 깨부수고, 젠더 역할을 확장하며 기존의 춤이 지닌 관습을 뒤엎었다. 클라인은 리허설 스튜디오에 머물던 이들을 데리고 거친 도시의 거리에 모여든 군중 앞에서 공연을 펼치도록 만들었다. ‘도쿄’가 출판된 1964년에 클라인은 젊은 카시우스 클레이(Cassius Clay, 이후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로 개명함)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클라인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비순응 주의자였던 클레이는 미국 백인 사회를 향한 노골적인 비평가로 여겨졌지만, 그는 재치 있고 빨랐다. 클라인은 그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타고난 연기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패션 업계에서 오랜 공백기를 보낸 클라인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와 장 폴 고티에(Jean-Paul Gaultier)처럼 떠오르는 이들의 작업을 맡으며 ‘패션 인 프랑스(Fashion in France, 1986)’로 돌아왔다. 그동안 어떤 것이 바뀌었나.
그가 패션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던 몇 년 동안, 많은 이들은 클라인이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 깨달았다. 사람들이 그의 비전의 폭과 작업의 범위를 완전히 인식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이는 한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는 다재다능한 예술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패션계로 복귀하는 것은 그에게 꽤 쉬운 일이었고, 클라인의 아이러니와 발칙한 매력은 패션계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2007년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에서 그는 라거펠트가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촬영했다. "천재 디자이너”를 향한 숭배라는 주제를 초현실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유머였지만, 라거펠트는 클라인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았기에 그를 믿고 촬영에 임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소감은 어떤가?
40년대 후반의 그의 초기 작품부터 2013년 브루클린 사진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품들을 구성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웠다. 클라인은 전시를 기획하는 일에도 재능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선보이는 그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었다. 우선 그의 사진은 작은 "빈티지" 인쇄물에 집착하지 않아 모두 큼직한 편이다. 벽에는 작품이 가득 차 있어서, 거의 벽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또한 그는 책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화까지 시노그래피와 결합하고자 했다. 우리는 관람객들이 책의 모든 페이지를 볼 수 있도록 책을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었다. 물론 영화 스틸컷부터 포스터, 스토리보드, 잡지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르와 미디어가 혼합된 작업물로 오늘날 이토록 찬사를 받고 있는 클라인의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다.

오늘날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클라인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주관적이지만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는 클라인만의 이미지 제작 방식은 복잡한 통로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젊은 사진 작가와 영화 제작자에게 굉장히 큰 영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클라인은 단순히 존재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찾았고, 살면서 깨닫게 된 자신의 위치와 그가 만난 사람들의 위치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일에 수용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이런 면들은 현대의 사진 작가나 영화 제작자에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치 있는 삶이라는 선물을 안겨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좋은 영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진 제공 뉴욕 국제 사진 센터
에디터 Alex Merola
번역 Park Ji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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