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국이 어떤가"..축구 국가대표 강상우는 왜 중국으로 갔나
K리그1 베스트11 수비수..공격수로 맹활약
"중국이 어떤가, 외국서 꼭 뛰어보고 싶었다"
"중국서 난 용병..돈값하는 선수 되겠다"

중국 남자 프로축구팀 베이징 궈안(Beijing Guoan FC) 소속 강상우는 8월 17일 우한창장과의 원정 경기에서 중국수퍼리그(CSL) 첫 골을 터뜨렸다. 13경기 만에 중국 프로축구 데뷔골을 넣었다. 그를 발탁한 셰펑(谢峰) 감독이 3연패 후 경질되고 나서 첫 게임이었다. 아버지 기일이기도 했다. 그는 이날 베이징 궈안 입단 후 처음으로 공격수 자리로 갔다. 수비수인 그를 공격수로 세웠다는 건 골을 보여 달란 의미였다. “‘오늘 경기는 이겨야 한다, 용병으로서 보여 줘라’라는 암묵적 메시지였다.”
강상우는 1대 0으로 앞서던 후반 17분, 중국 국가대표 공격수 장위닝의 패스를 받아 팀의 두 번째 골을 기록했다. 오른발잡이인 그는 페널티 박스 왼쪽 부근에서 왼발로 슈팅을 해 상대 골대 오른쪽 그물을 흔들었다. 카메라를 향해 특유의 ‘보여주잖아’ 세리머니도 선보였다. 왼손 엄지와 검지를 펼쳐 눈 밑에 대고 오른팔을 앞으로 뻗어 엄지와 검지로 누운 브이자를 만드는 동작이다. 5분 뒤엔 장위닝에게 크로스를 올려 헤딩골을 도왔다. 이날 베이징궈안은 4대 1 승리를 거뒀다. “오늘 꼭 좋은 모습을 보여서 아빠한테 기쁨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진짜 골이 터졌다. 하늘에서 아빠가 도와주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축구 선수가 골을 넣으면 터닝 포인트(전환점)가 된다.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강상우는 올해 4월 중국 프로축구 1부 리그(CSL) 클럽인 베이징 궈안 유니폼을 새로 입었다. 2014년 한국 프로축구 K리그 데뷔 때부터 8년간(2019년 1월~2020년 8월 상주 상무 군복무 포함) 몸담은 포항 스틸러스를 떠나 처음으로 해외 리그를 밟았다. 2020·2021 2년 연속 K리그1 베스트 11 수비수로 선정되며 주가가 가장 높을 때 중국행을 택했다. 베이징 궈안에선 등번호 17번을 달고 뛴다. 주 포지션은 왼쪽 수비수다. 베이징 궈안은 강상우 영입을 발표하며 “측면 선수인 강상우는 공수를 겸비하고 있으며, 빠른 속도와 돌격력을 갖췄고, 크로스도 위협적”이라고 했다. 어느 자리에서든 잘해달라는 얘기다.
그는 현재 베이징 서남부 다싱구의 훈련장 근처 호텔에 묵고 있다. 구단의 만류로 아직 집을 구하지 않았다. 베이징 궈안은 중국축구협회(CFA)의 코로나 방역 정책에 따라 시즌이 시작된 6월부터 두 달 넘게 중국 남부 광둥성 메이저우시에서만 경기를 했다. ‘베이징에 오지도 못하는데 집을 구해 놓으면 월세가 아깝지 않냐’란 구단 말을 듣고 당분간 호텔 생활을 하기로 했다. 지난달 31일 이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올해 29세인 그는 포항 선수 시절보다 더 앳된 얼굴로 나타났다. 양볼은 조금 울긋불긋했다. 그는 “요새 팀 상황이 조금 어려워서 스트레스를 받아 여드름이 났다”고 했다. 베이징 궈안은 6월 5일 시즌 첫 경기를 시작으로 8월 26일까지 15경기 동안 6승4무 5패로, 18개 팀 중 9위에 올라 있다. 강상우는 15경기에서 공격 포인트 5개(1골, 4도움)를 기록 중이다.

◇해외 리그 첫 도전, 늦은 때란 없다
-중국 입국 후 격리 생활은 어땠나.
“3월 21일 푸젠성 샤먼을 통해 입국했다. 호텔에서 3주간 격리를 했다. 딱 침대 하나 들어가는 방이었다. 운동도 못했다. 첨엔 ‘언제 또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쉴 수 있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매일 누워만 있으니까 슬슬 ‘내가 축구 할 수 있으려나’ 그런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3주 격리가 끝난 후엔 방역 조치 때문에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표와 기차표가 계속 취소가 돼서 3일 정도 더 샤먼에 있었다. 구단도 더는 내버려둘 수 없다 생각했는지, 기차표를 겨우 구해줬다. 11시간 동안 기차 타고 베이징에 왔다. 격리하는 동안 움직임 없이 한국서 싸온 라면, 컵밥이랑 배달 음식을 매일 먹었더니 살이 많이 쪘다. 감독님이 날 처음 보고는 “영상에서 봤던 애가 아닌데”라고 했다.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강상우는 2013년 FIFA(국제축구연맹) U-20(20세 이하)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후, 이듬해 대학(경희대)을 관두고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프로 활동 초반엔 잘 풀리지 않았다. 한 해 출전 횟수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발목 수술도 하면서 선수로서 힘든 시기를 겪었다. 2016년 황선홍 감독에 이어 최진철 감독이 포항을 맡은 후, 그는 자청해서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시즌 중반부터 최 감독은 그를 수비수로 경기에 투입했다. 윙어(측면 공격수)에서 윙백(측면 수비수)으로의 변신은 꽤 성공적이었다. 경기를 훨씬 많이 뛰었다. 2019년 상무 군복무 때는 다시 공격수로 뛰었는데, 이때 활약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역 후 포항에 복귀해 수비수로 돌아갔지만, 공격까지 겸하면서 오히려 멀티 플레이어로 빛났다. 2020·2021 2년 연속 K리그1 베스트11 수비수로 선정됐다. 2020년엔 K리그1 도움왕(12도움, 8골)에 올랐다. 지난해 6월엔 파울루 벤투 감독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들어가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올해1월엔 터키 전지훈련 중 아이슬란드와의 국가대표 친선 경기에 후반 교체 출전했다.
-전북 현대와도 이적 협상을 하다가 결국 베이징 궈안으로 결정했다.
“전북과는 작년 12월부터 얘기를 했다. 전북 구단 자체 문제로 (계약이) 미뤄졌다. 전북 쪽에선 계속 ‘조금만 뒤에 하자’고 했다. 올해 1월 국가대표팀에 소집돼 터키에 있을 때 베이징 궈안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전북과는 얘기가 잘 안되고 서로 오해가 쌓였다. 베이징 쪽은 나를 영입하려는 의지가 확고했다.”
강상우는 올 초 전북 현대로 갈 거란 전망이 많았다. 포항과 전북 구단끼린 이미 1월 초 이적 합의를 마쳤다. 그러나 개인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다. 강상우는 포항 잔류를 선택했다. 전북은 올해 2월 15일 “선수 측과 기본급과 수당 등 연봉 조건에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며 영입 계획 철회를 발표했다. 당시 전북은 강상우가 해외 구단과 이중 협상을 진행하고 돌연 협상 종료를 통보해 신뢰 관계 유지가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강상우는 2월 20일 등번호 10번을 달고 포항 소속으로 K리그 시즌 개막 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김기동 포항 스틸러스 감독은 전북과의 이적 갈등과 관련,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보여진다. 상우가 잘못한 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며 강 선수를 감쌌다. 강 선수는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동 받았다”고 했다.

-왜 중국 리그에 가기로 결정했나. 코로나 상황도 있고 중국 리그 자금 사정도 많이 나빠졌는데.
“난 행복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외국에서 축구를 해보고 싶었다. 저 나라는 어떤 축구를 할까, 가르치는 거, 생각하는 거, 말하는 거, 한국과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싶었다. 그전까진 확실한 기회가 없었는데, 베이징 궈안은 워낙 확고하게 ‘우린 너를 원한다’고 말했다. 영입 의향을 밝히고 일주일도 안 돼 계약서를 보내왔다. 계약서를 받고 처음엔 안 간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끝까지 기다리겠다, 마음이 바뀌면 알려 달라’고 하더라.”
-베이징 궈안이 왜 그렇게까지 데려가려 한 걸까.
“중국 국가대표이기도 한 리레이가 스위스로 이적하면서 왼쪽 수비수 자리가 비었다. 지난해 11월 포항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에 나갔을 때 이 선수와 같은 포지션이었던 내 플레이를 보고 좋았다고 한다. 그 자리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자리로 가도 좋은 모습을 보이니까 ‘이 선수는 용병으로서 어느 자리든 도움이 되겠다’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베이징 궈안은 1992년 12월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출범한 중국 프로축구 클럽으로, 중국 리그에서 역사가 가장 길다. 부동산 개발·투자 기업인 중허그룹(Sinobo Group)이 모회사다. 중허그룹은 2017년 1월 자회사 중허즈디(Sinobo Land)를 통해 중국중신그룹(Citic Group)으로부터 베이징궈안 지분 64%를 35억 위안(약 6800억 원)에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이어 2021년 6월 지분율을 100%로 늘렸다. 강상우는 “선수들이 항상 ‘우리는 베이징이다. 베이징답게 하자’고 한다. 자부심이 굉장히 높다”고 했다.
-왜 하필 중국이냐는 얘기들도 한다.
“선수마다 목표하는 게 다르다. 중국 리그에 가는 것에 대해 일부 팬분이 우려한 것도 안다. 하지만 꼭 한 번은 해외에서 뛰고 싶었다. 2년 전쯤부터 다양한 나라를 경험하고, 외국에서 축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마침 베이징 구단이 적극적으로 큰 관심을 보여 줘서 감사하다. 용병으로서 외국에 오래 있는다는 건 인정 받는다는 뜻이다. 외국에서도 인정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해외 도전 꿈이 있다면 언제라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대체 얼마를 받는지 궁금해들 한다. ‘중국 가서 돈 벌어서 포항으로 돌아와’라고 하는 팬들도 있다.
“구단끼리 주고받는 이적료는 130만~140만 달러(약 17억~19억 원)로 들었다. 정확히는 모른다. 연봉은 포항 시절 연봉의 두 배 이상이다. 구체적 금액은 공개하기 어렵다. 중국이나 중동 리그엔 돈을 보고 간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한국보다 많이 주고 대우가 더 좋은 건 사실이다.”

◇꺾여버린 中 축구 굴기…”위축됐을 뿐, 실력 좋다”
중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집권한 후 본격적으로 축구 굴기(우뚝 일어서다)를 추진했다. 축구광인 그는 부주석이던 2012년 2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공을 차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2014년 신년사를 하던 집무실에 두기도 했다. 2015년 영국 국빈 방문 땐 맨체스터시티 구장을 방문해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 세르히오 아구에로,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와 셀카를 찍기도 했다. 시 주석은 부주석 시절이던 2011년 박지성 사인볼을 선물로 받고 중국의 월드컵 진출, 개최, 우승이란 원대한 ‘월드컵몽(월드컵 드림)’을 내놨다. 중국은 2002 한·일 월드컵 때 본선에 나간 후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못 나갔다. 2014년엔 축구를 초·중 교육과정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외국 선수들을 아예 귀화시켜 중국 국가대표로 뛰게 했다.
중국 부동산·유통 재벌들은 정부 방침에 호응해 외국 유명 선수와 감독 영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상하이 SIPG는 2016년 브라질 선수 두 명을 각 6000만 달러(약 800억 원) 이상에 모셔오며 아시아 축구 이적료 기록을 깼다. 장쑤 쑤닝은 2015년 여름~2016년 겨울 이적 시장에서 1억110만 유로(약 1500억 원)를 썼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의 광저우 FC도 같은 기간 약 1000억 원을 들여 외국 선수들을 데려왔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사태로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지자, 중국 축구는 무너져 내렸다. 2020년 중국수퍼리그(CSL) 정상에 선 장쑤 쑤닝은 모기업 쑤닝이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이듬해 2월 해체됐다. 부채에 허덕이던 헝다는 큰돈 들여 데려왔던 외국인 선수와 지도자들을 줄줄이 내보냈다. 선수와 코치진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는 클럽이 속출했다. 중국이 올해 2월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베트남에 패해 본선 진출에 또 실패하자, 중국인의 축구 열기는 더 식었다. 축구대표팀을 당장 해체시키라는 분노가 들끓었다.
“중국 선수들과 뛰어보니 실력이 좋고 잘한다. 부담감 때문에 심리적으로 조금 위축돼 있는 것 같다. 경기를 치러보면, ‘어떤 팀도 만만하게 못 보겠구나’ 싶다. 첫 골을 넣은 경기에서 우리팀이 4대 1로 이겼는데, 경기 결과만 봤을 땐 쉽게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뛸 땐 너무 힘들게 이겼다. 어떤 한 팀도 쉽게 이길 수 없다. 12번 연속으로 진 팀과 경기를 앞두곤 마음속으로 ‘그냥 이기겠지’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 경기도 1 대 0으로 겨우 이겼다.”

CFA는 거품을 빼겠다며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제(샐러리 캡)를 도입했다. 구단 전체 운영비, 개인별 연봉 한도, 외국인 선수 연봉 합계 상한 등 여러 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2021년부터 CSL 외국인 선수의 세전 연간 소득은 300만 유로(약 40억 원)를 넘으면 안 된다. 중국 국내 선수 연봉 상한(세전)은 500만 위안(약 9억 8000만 원)이다. 구단별로 외국인 선수 연봉 총액은 1000만 유로(약 135억 원)로 제한됐다. 연봉을 포함한 구단 전체 운영비는 6억 위안(약 1180억 원)이 최대다. 2018년엔 CSL 클럽 평균 지출이 11억 위안(약 2100억 원)에 달했다. 천쉬위안 CFA 회장은 지난해 3월 “중국수퍼리그 구단 지출은 한국 K리그의 10배, 일본 J리그의 3배인데도, 중국 국가대표팀 수준은 훨씬 떨어진다”며 “샐러리 캡을 도입해 파국만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이 이제 유럽 리그만큼 많은 돈을 줄 수 없어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좋은 한국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얘기도 있다.
“민재(김민재)가 베이징 궈안에서 좋은 활약을 했고 준호 형(손준호)도 작년에 엄청 잘했다. 중국에 왔던 한국 선수들이 다 좋은 모습을 보였다. 중국에서 한국 선수에 대한 인식이 좋다. 여기서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 리그엔 지난해 전북에서 이적해 맹활약한 손준호(산둥 타이산)를 비롯해, 올해 중국 필드에 발을 디딘 강상우(베이징 궈안)·김민우(청두 룽청)·임채민(선전 FC)까지 4명의 한국인 선수가 뛰고 있다. 김민재 선수는 베이징 궈안(2019년 1월~2021년 8월)과 튀르키예(터키) 페네르바체를 거쳐, 올해 7월부터 이탈리아 SSC 나폴리에서 뛰고 있다. 손준호 선수는 지난 시즌 산둥 타이산의 정규 리그·FA컵 동반 우승을 이끌었다. “민재가 베이징 궈안 생활에 만족했고 좋은 경험이었다는 얘기를 해줬고, 준호 형도 중국에 오면 감수해야 할 부분 등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줬다.” 서정원 전 수원 삼성 감독은 지난해 2부 리그에 있던 청두 룽청 사령탑을 맡아 첫 시즌 만에 팀을 1부 리그(중국수퍼리그)로 승격시켜놨다. 이장수 감독은 올해 2월 선전 FC 지휘봉을 잡았으나, 최근 5연패 끝에 이달 초 물러났다. 김종부 감독은 지난해부터 허베이 FC를 이끌고 있다.

◇”중국서 난 용병…용병다움 보여 줘야”
-외국 리그 생활은 처음인데,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나.
“한국에선 그냥 선수였는데 여기선 용병이다. 용병 생활이 처음이라 조금 부담이 됐다. 용병은 무조건 성과를 내서 보여 줘야 한다. 이 선수가 중국 선수들보다 낫다는 것을 항상 매 경기 보여 줘야 한다. 골을 넣든 도움해 주든 이런 공격 포인트에 대해서 달라야 한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 줘야 한다. 그런데 이런 걸 초반 5~6 경기까진 못 느꼈다. 팀 성적이 괜찮으니까 그냥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헛발질을 해서 골을 먹은 적이 있다. 당시 셰펑 감독님이 ‘기죽지 마라, 실수일 뿐이다’라고 말하면서도 한마디를 더하셨는데, 그 말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
-무슨 말을 들었길래.
“구단이 용병으로서 나에게 원하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분명하게 얘기를 해줬다. 그땐 공격수보단 수비수로 주로 뛸 때였다. 그런데 감독님이 ‘공격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 줘서 영입을 했는데, 그런 모습을 못 보여 주는 것 같다. 경기를 너무 안전하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용병은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된다는 걸 좋게 돌려서 말씀하셨다. 그때 확실하게 알았다. 난 이곳에 용병으로 온 거고 평가가 안 좋으면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위치란 걸. 포항 구단에 있을 때 용병들이 했던 행동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당시엔 용병들이 좋은 것만 하려고 하고 욕심을 낸다고 생각했는데, 용병이란 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선수들이다. 용병은 2인분은 해줘야 하는 위치다. 중국 선수와 똑같이 하면 굳이 돈을 많이 주면서 용병을 영입할 이유가 없다. 그때부터 플레이할 때 ‘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셰펑 감독은 지난달 12일 사임했다. 사실상의 경질이다. 베이징 궈안은 지난달 12일 우한싼전과의 경기에서 5대 1로 패해 3연패를 기록했다. 셰펑 감독은 우한싼전 경기 후 “감독을 맡았던 팀 중 세 번 연속 진 건 처음”이라고 말한 후, 바로 구단 측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강상우는 셰펑 감독이 떠난 후 바로 다음 경기에서 중국 리그 첫 골을 넣었다.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강 선수를 중국으로 데려온 셰펑 감독이 갑자기 관뒀다.
“감독님이 그만둔다는 소식을 경기 끝나고 다음 날 새벽에 들었다. 나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뽑아주셨는데 큰 활약이 없었으니까. 그날 아침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감독님 방에 찾아갔는데 문을 열고 감독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많이 울었다. 중국에서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인식이 좋은데, 난 좋은 모습이 안 나오는 것 같으니까 좀 답답했다.”

-스스로 ‘아무도 모르는 축구 선수’라고 했었는데, 국가대표까지 됐다.
“지금은 이렇게 밝아도 우울증 같은 게 있었다. 2016년, 2017년 때다. 그땐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축구에 미쳐 있던 때다.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경기에 나갈 기회도 많아졌다. 그런데 시합에서 잘해도 불안했고 못해도 불안했다. 쉬는 날도 실력적으로 밀리는 기분이 들어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신앙적으로 힘든 일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행복하지가 않았다. 공허함이 컸다. 내가 바라왔던, 꿈꿔왔던 순간들이 왔을 때 기대했던 만큼의 큰 기쁨은 아니란 걸 느끼고 ‘아, 축구적인 건 정말 일부분이구나’ 생각했다.
내가 행복한 게 뭘까 생각하다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봤다. 너무 좋았다. 축구에서 느낀 어려움을 여행으로 풀면서 밸런스(균형)를 찾았다. 축구를 할 땐 정말 열심히 하고, 여기에 너무 얽매이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먹고 나서 신기하게도 축구가 더 잘됐다. 전엔 경기도 뛰다 안 뛰다 하고, 알아주지도 않는 선수였는데, 그때부터 오히려 잘 풀렸다. 상무에 가면서 성격 자체도 바꿨다. 조금 되바라지고 밝아졌다. 바닥을 겪고 나서 더 겸손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잘돼도 잘난 체하지 말고, 못해도 자신감 잃지 말고,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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