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모두의 대통령’ 이재명의 ‘윤집궐중(允執厥中)'

통합이 국정 원동력…더 낮은 곳으로 가야 성공

28년 총선까지 성과 못 내면 여소야대 각오해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처럼 미국에 수모당할 수도

무너진 나라 세우는 ‘짐궁유죄(朕躬有罪)' 정신을

유가(儒家)에서 ‘요순(堯舜) 시대’는 이상적인 성인 정치의 상징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 전후로 추정되지만, 고고학적으로 확실한 증거가 없어 요와 순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전설 속 인물로 보는 것이 상식입니다. 유가에서는 요임금·순임금으로 시작해 우임금-탕임금-문왕-무왕-주공-공자로 이어지는 성현의 계보를 갖습니다.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말을 기록한 것이지만, 마지막 장인 '요왈(堯曰)' 편에서는 예외적으로 요·순·우 3대가 임금 자리를 전수하는 장면과 당부의 말이 나옵니다.

요임금은 자신이 늙자 몇십년 동안 여러 시험을 거쳐 낙점한 순임금에게 자리를 물려줍니다. 그날의 양위식은 종교의식처럼 엄숙하고 장엄했습니다. 태산에 불을 피우고 전국의 백성들 앞에서 의식을 거행합니다. 요임금은 먼저 무대에 올라 아래에 서 있는 순임금에게 말합니다. “여보게 순, 올라오시게. 내가 그대에게 말하노니, 하늘의 뜻이 그대에게 이른 것이니 어서 올라와 이 짐을 져야 하네.” 이때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당부합니다. “공평의 원칙인 중도를 굳게 지켜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온 세상이 곤궁해지고 하늘이 그대에게 준 봉록과 벼슬도 영원히 끊어질 것이네.”

여기서 핵심은 ‘윤집궐중(允執厥中)’입니다. 해석하면, 오로지 마음을 정성스럽고 한결같이 하여 중도를 신실하게 잡으라는 뜻입니다. 중도를 잡는 것은 곧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공평의 원칙을 지키고 균형을 잡으며, 사적인 일에 치우치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윤집궐중’은 논어의 마지막 장에 인용됐다는 점에서, 논어의 마무리이자 유가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어원은 ‘서경(상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요임금이 자리를 물려주며 당부한 말

‘서경’의 ‘대우모’ 편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인심유위(人心惟危)하고 도심유미(道心惟微)하니, 유정유일(惟精惟一)하고 윤집궐중(允執厥中)하리라.'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미묘하니 오로지 마음을 정성스럽고 한결같이 하여 그 중도를 신실하게 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수시로 요동치며 위태롭기까지 합니다. 이에 반해 중용의 도는 너무나 미미하고 미묘해 붙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서경'에서는 이렇게 당부합니다. '근거 없는 말을 듣지 말고, 백성들에게 묻지 않은 계책은 쓰지 말라.'

숱한 역경을 딛고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 후보는 역대 최다 득표 기록으로 압승을 거뒀습니다. 이달 4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대단히 간소하게 열린 취임 행사에 참석한 이 대통령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다짐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이 대통령은 “통합은 유능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의 결과이기 때문에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국민통합 없이는 민생도 챙길 수 없다며 통합이 국정운영의 기본 원동력임을 천명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삶을 바꿀 실력도, 의지도 없는 정치세력만이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을 편 가르고 혐오를 조장한다”고 지적하며 “낡은 이념은 이제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특히 이 대통령은 통합에 실용의 가치를 접목시키며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3년 전 취임사에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주범으로 ‘반지성주의’를 지목해 공격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모두를 적으로 규정했던 것과 정반대입니다.

대통령 취임식 날 가장 빛난 장면은

이 대통령은 취임식 이후 행사에서도 통합의 의지를 구체화했습니다. 야당을 적으로 돌리고 범죄자로 취급했던 윤 전 대통령과 달리 취임 이후 첫 오찬을 여야 원내대표들과 함께 비빔밥을 먹으며 진행했습니다.

국민통합과 ‘국민 모두의 대통령’임을 강조한 취임사와 야당 대표들과의 비빔밥 오찬도 인상적이었지만, 취임 당일 가장 빛났던 장면은 국회 청소노동자들과 방호직원들을 만나 감사를 표하고, 특히 대통령 내외가 이들과 함께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는 모습이었습니다. 진정한 통합은 단지 야당과 만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국민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전임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엘리트주의입니다. 엘리트주의는 필연적으로 정책 결정의 폐쇄성을 초래하며 국민과의 소통부족으로 이어집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국민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는 유가의 옛 성현들이 그토록 강조한 ‘윤집궐중’의 정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평의 원칙을 지키고, 균형을 잡으며, 사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음으로써 중도의 정신을 굳게 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고 수시로 변하며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이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우리 국민 사이의 분열과 증오는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중도와 통합의 달성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객관적인 상황은 더 어렵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 지명자의 말처럼 지금은 IMF 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8년 전 IMF 위기 당시에는 큰 경제적 추세가 상승 국면이었지만 지금은 하강과 침체 국면이며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등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 정치경제 환경은 몇 배나 더 복잡합니다. 각국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워, 성공 장담 못해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이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 이후 가장 험난한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서민적인 대통령의 어깨 위에는 국민을 통합하고 민생을 살리는 과제뿐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국제질서를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짐이 놓여 있습니다.

이 대통령을 둘러싼 국내외 상황은 이처럼 어려우나 그가 윤 전 대통령처럼 극단적 유튜버들의 근거 없는 말에 귀 기울이거나 국민에게 묻지 않은 계책, 가령 비상계엄이나 친위 쿠데타 등을 감행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윤 전 대통령처럼 옛 성현들이 경고한 대로 온 세상이 곤궁해지고, 하늘이 대통령에게 준 봉록과 벼슬도 영원히 끊어질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은 대한민국이 비상하느냐 추락하느냐의 갈림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 상황을 감안하면 성공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제와 안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너무나 엄혹합니다. 선거에서 역대 최다 득표했다는 사실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국민통합 자체가 어렵고 설령 통합을 이루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이재명 정부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앞으로 채 3년이 남지 않은 2028년 4월 총선 전까지 경제와 민생 분야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차기 총선에서 야당인 국민의힘이 의회 권력을 장악하는 여소야대의 상황이 올 것입니다. 더욱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경제·안보 분야에서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나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처럼 세계인들 앞에서 큰 수모를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이 대통령이 직면한 냉엄한 현실입니다.

무너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윤집궐중’을 강조한 데 비해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양위할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천제(天帝)의 신하인 제가 더 이상 천하를 다스릴 수 없어 후계자를 골랐는데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 제 몸에 죄가 있다면 그 죄는 만방의 백성들과는 관계가 없지만 만방의 백성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제 탓입니다.”

여기서 저 유명한 ‘짐궁유죄(朕躬有罪) 무이만방(無以萬方)’이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모든 죄는 임금인 내게 책임이 있고 처벌도 본인이 받아야 하며, 부하나 백성들과는 관계가 없고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뜻입니다. 전임 윤 대통령은 내란을 시도하고도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며 모든 책임을 참모와 부하, 야당에 떠넘겼습니다.

이 대통령이 처한 객관적 상황이 매우 어렵고 그의 정부가 성공할 가능성도 매우 낮지만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양위하며 전한 말들처럼만 한다면 무너진 나라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떠나고 분열하고 증오했던 국민들의 마음도 돌아올 것입니다.

옛 성현들이 임금 자리를 물려주며 강조했던 '윤집궐중'과 '짐궁유죄', 바로 이것이 이 대통령이 가야 할 길입니다.

박종면 발행인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