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경조사, 남자의 눈물

코로나 시절 온 국민이 힘들었을 겁니다.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요..

저는 특히 세 번째 부분에서

매우 힘들었습니다.

남동생의 결혼이라는 경사도 있었지요.

하지만 집안에 두 건의 조사가 있었습니다.

한 분은 작은아버지

다른 한 분은 외할머니 입니다.

이상하게 당시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어요.

제가 이렇게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었나

스스로가 굉장히 이상하다 느꼈습니다.

수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제 오후에 전 직장 사수를 만났는데요.

이제는 직장도 달라서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전 회사 근처로 찾아가

점심을 먹던 중 이었습니다.

예전 이야기를 하다가

불현 듯 두 분이 생각났습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군요.

말도 하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식사를 멈추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간신히 진정하고 2차로 커피를 마시는데요.

다시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당시에 억눌렸던 감정이 뒤늦게 터졌나 봅니다.

스스로도 가누기 힘들었기에

슬픔도 크게 느끼지 못 했던 같습니다.

다시 형님에게 못난 모습을 보입니다.

한 마디 하시더군요.

너는 영업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기업 영업을 했었습니다.

팀내 아니 회사 내 최고 실적을 내는 분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는 행운이 있었죠.

월급으로 4천5백만원 받는 모습도 지켜 봤고요.

제가 계약을 따는데도 큰 도움을 주셨었습니다.

행복은 그렇지 않지만

고통은 겹으로 다가 온다고 했던가요?

교통사고 처럼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럽게요.

실제로 교통사고까지 났습니다.

사고 유발자는 도주했고요.

후방 추돌하여 제가 100% 과실입니다.

공교롭게도 블랙박스 도착 하루 전이었네요.

며칠 못탄 차는 폐차했고요.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경제적 정신적으로 상처가 있었지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저도 아버지도 장남인데요.

20여년 전 남동생을 잃고 막내 동생까지 잃으셔서

결국 혼자 남으셨어요.

세 분의 고모들은 건강하십니다.

아버지의 아픔이 너무 안타깝더군요.

아마 저보다 훨씬 힘드셨을 거에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맺힙니다.

저는 유약한 인간일까요?

다만 영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차 깨달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첫 직장 역시 영업직이었고요.

당시에도 실적과는 별개로

정신적으로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