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 질문은 안 받았다... ‘압색 영장 사전 심문’ 의견 수렴장 촌극

허욱 기자 2023. 6. 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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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서도 법원·검찰 신경전

영장 전담 판사의 ‘압수 수색 영장 사전 심문제’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대법원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신경전이 학술대회에서도 계속됐다. 학술 대회 현장에서 검사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진행자가 추가 질문을 막는 촌극도 벌어졌다.

대법원 형사법연구회·한국형사법학회가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개최한 공동학술대회에서 '압수 수색 영장 실무의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법원 형사법연구회·한국형사법학회는 2일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압수 수색 영장 실무의 현황과 개선 방안’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애초 압수 수색 영장 사전심리 제도 도입에 대한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과 변호사 업계의 반발이 이어지자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취지로 열렸다.

법원 측은 압수 수색 영장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학술대회에서도 유지했다. 토론에 참여한 장재원 부장판사는 “전자정보 압수 수색으로 인한 시민의 사생활 침해 위험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문제의식이 크다”며 “현행 제도 아래서 영장 청구와 관련해 의문이 있거나 모호한 부분이 있더라도 판사는 영장을 발부하거나 청구를 기각하는 선택지밖에 없다”고 했다.

발제자였던 조기영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19세기 말 지하 창고에 숨겨 놓은 밀주를 압수수색하는 것을 염두에 둔 규정으로는 21세기 광범위하고 민감한 전자정보의 압수수색을 법치국가적으로 대응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했다. 또한 “영장 발부를 결정해야하는 판사가 수사기관에 비해 사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검사의 논리에 수긍하는 ‘동조효과’나 ‘연대효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1년 10만8992건이던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 건수는 지난해 39만6671건으로 11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었고, 이 기간 동안 발부율도 87.3%에서 91.1%까지 증가했다는 통계를 제시하기도 했다.

검찰은 즉각 반박했다. 검찰 측 토론자로 나선 한문혁 부장검사는 “사전심문 제도가 사생활 비밀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인지 수사 실무자 입장에서 의구심이 든다”며 “별다른 실익 없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이념의 근본만 흔드는 것이 아닐지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수색을 하기 전에는 어떤 압수물에 어떤 범죄의 증거가 남겨져 있을지 알 수 없고, 사전 심문을 한다고 압수 대상을 더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도 없어 이 제도의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 부장검사는 압수 수색 영장 청구 건수가 급증했다거나 발부율이 증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실질이 반영되지 않은 통계이고, 근거 없는 우려”라며 반박했다. 최근 수년간 급증한 인터넷 물품사기나 보이스피싱 등 범죄가 명확한 사건에서 피의자를 특정하기 위한 압수 수색 영장 청구 사례가 전체의 약 80%에 달한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이 같은 사례는 법원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00% 가까이 영장을 발부하고 있는데, 나머지 유형은 압수 수색 영장 발부율이 약 55%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100% 발부하는 압수 수색 영장 사례가 증가하면서 지난해 법원 전체의 압수 수색 영장 발부율이 91.1%로 나타날 뿐이라는 것이다.

박경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사전심문제는 득보다 실이 많고 무엇보다도 범죄 피해자 보호에 반한다”며 “피의자를 수사하기 바라는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 제도 도입으로 인해 법원의 수사기관화와 중립성 침해 우려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압수수색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문제에 관해 명확한 사후구제 절차를 신설해 해결하면 된다”는 의견을 냈다.

학술대회 현장을 참관한 A 검사는 토론 중간 질문 기회를 얻어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임의 수사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 압수 수색 영장을 청구해 강제 수사를 하려는 것이고, 법원에서 기각될 것을 영장 청구하는 사례 자체가 없다”며 수사 현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A 검사는 “사전 심문을 하면 검사와 대면한 법관의 ‘동조 효과’로 인해 영장 발부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며 “높은 발부율로 인해 사전 심문제를 추진한다는 것과 모순되는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검사 여러 명이 추가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들자, 진행자는 ‘검사가 아닌 다른 참석자의 질문을 받겠다’며 서둘러 진화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법관이 임의로 사건 관계인을 대면 심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형사소송규칙은 형사소송법 하위규칙으로 대법원이 개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검찰·경찰은 신속한 범죄 대응에 심각한 장애가 생기고 범죄 혐의자가 증거인멸을 할 수 있다며 규칙 개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공수처와 대한변호사협회도 이 제도 시행에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각계의 추가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치고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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