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대로 ''3천조 이상을 빼돌리고'' 돌연히 사라져버린 이 '사람'

바레인 왕실 자산관리자 행세한 ‘가짜 큰손’

러셀 킹은 자신을 바레인 왕실의 막대한 자산을 관리하는 재무 고문이라고 소개하며, 중동 왕실의 돈을 유럽 금융시장에 투자해주겠다는 제안을 들고 다녔다. 실제로 그는 런던의 투자은행 ‘퍼스트 런던(First London)’에 접근해 “바레인 왕실 자금을 수십억 달러 규모로 운용 중”이라고 주장했고, 이 말에 속은 은행 측은 회사 지분 49%를 러셀 킹 측에 넘겨줄 정도로 깊게 말려들었다. 그러나 바레인 정부는 BBC 보도 이후 “킹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즉시 선을 그었고, 그가 내세운 모든 왕실 커넥션이 허구였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북한 지하자원 2조 달러 권리’라는 허황된 떡밥

킹의 사기극 핵심은 ‘북한 광산 개발권’이었다. 그는 스위스에 ‘스위스 커머디티 홀딩(Swiss Commodity Holding, SCH)’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이 회사가 북한의 금·석탄·철광석 등 모든 지하자원 채굴권을 독점 보유하고 있어 자산 규모가 2조 달러(약 2,200조~3,000조 원)에 달한다고 떠벌렸다. 이 허구의 설정을 바탕으로 투자자들에게 “북한 광산 개발 수익을 상장시켜 막대한 수익을 돌려주겠다”고 속였고, 서방 금융기관과 스포츠 구단까지 여기에 끌어들였다. 실제 가치는 제재와 현실적 채굴·수송 여건을 고려하면 거의 제로에 가까웠지만, ‘북한+지하자원+왕실 자금’이라는 조합이 주는 환상은 치명적이었다.

유명 축구감독·영국 축구클럽까지 이용한 정교한 연출

킹은 영국 축구클럽 노츠 카운티(Notts County) 인수 과정에서도 같은 사기를 반복했다. 그는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출신 스벤 고란 에릭손을 영입해 “중동 자금이 곧 들어올 것이니 월드 클래스 클럽으로 키우겠다”고 설득했고, 이를 ‘북한 광산 딜’과 연결해 신뢰도를 끌어올렸다.

2009년에는 에릭손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북한 고위 인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주식을 북한 측에 넘겨주는 ‘쇼’를 연출했다. 조선중앙통신에도 이 만남이 보도되면서, 마치 북한과 초대형 자원 개발 계약을 성사시킨 글로벌 투자자로 포장되는 효과를 거뒀다. 이 장면은 이후 서방 투자자들과 금융권을 속이는 데 쓰인 최고의 홍보 자료가 됐다.

‘북한도 내 손바닥 안’이라고 떠들던 사기극의 실체

BBC, YTN, 중앙일보 등 다수 매체에 따르면, 러셀 킹은 “북한 광산에 대한 독점 개발권 덕분에 내 회사 자산이 2조 달러가 넘는다”고 반복 강조하며 투자자와 파트너들을 안심시켰다. 북한 정부, 고위 관료와 함께 찍은 사진, 평양 방문 이력, 조선중앙통신 보도 등은 그의 말에 그럴듯한 외피를 씌웠다. 그러나 정작 북한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돈 한 푼도 받지 못했고, 국제 제재로 인해 실제 자원 수출·투자도 불가능해 사실상 ‘종이 위의 딜’에 불과했다.

북한이 직접 거액을 뜯긴 정황은 없고,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사기꾼에게 이름을 빌려준 나라’ 수준으로 체면만 구긴 셈이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하지만 러셀 킹은 “북한도 내 손바닥 안에 있다”는 식의 허세로 또 다른 투자자들을 속였고, 그 과정에서 금융사·축구클럽·개인 투자자들이 실제적인 금전 피해를 입었다.

‘3천조 사기극’이 가능했던 배경, 욕망과 무지의 합작품

킹의 사기극이 통했던 배경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북한 지하자원에 대한 과장된 기대였다. 국제 제재, 채굴 인프라 부족, 법적 불확실성을 무시하고 ‘지하자원=곧 현금’이라는 단순 논리에 빠진 투자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둘째, 왕실·정부·북한 고위층과의 인맥을 강조하는 ‘권위 마케팅’이었다. 실제로 전직 영국 정보기관 고위 인사, 국회의원, 은행 경영진까지 속아 넘어가 그의 신뢰도에 힘을 실어줬다. 셋째, 언론 노출과 축구클럽·유명 감독을 활용한 이미지 세탁이었다. 평양 방문 사진과 “조만간 수십억 달러가 들어올 것”이라는 기사·발표는 의심을 잠재우는 데 충분했다.

러셀 킹의 말로와 ‘트릴리언 달러 콘맨’의 교훈

사기극은 영원하지 않았다. 그가 관리한다던 바레인 왕실 자금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약속했던 투자금이 계속 미뤄지면서 의심이 커졌다. 우유 대금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생활고가 외부에 포착되면서 “이 정도 부자라면 일상 생활이 이렇게 쪼들릴 리 없다”는 의문이 터져 나온 것이다. 결국 영국 중대범죄청과 국제 수사기관들이 나서 그의 행각을 추적했고, 바레인과 저지섬(Jersey) 등지에서 사기와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