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절규 작품에 숨겨진 비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회
뉴진스가 방문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전시회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바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입니다. 전시회 개막 후 53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그 인기를 보여주었는데요. 올여름 꼭 봐야 하는 전시회로 손꼽히며 장마철 궂은 날씨에도 많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길래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요?
10만 명 방문, 에드바르 뭉크 전시회
전시기간 : 5/22 ~ 9/19
전시장소 : 예술의잔당 한가람미술관 1층
삶과 죽음, 사랑, 불안과 고독 등 당시의 화풍을 뒤바꾼 표현주의의 대가 에드바르 뭉크 전시회에서는 23곳의 소장처에서 온 작품 140여 점이 전시되며, 뭉크 작품의 최고 권위를 가진 뭉크미술관의 소장품이면서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개인 소장자의 미공개 컬렉션까지 대거 공개됩니다.
왜 사람들은 '절규' 열광하는가
어느 날 뉴욕 경매장에 모네, 피카소의 작품 경매가를 제치고 1,368억 원으로 당시 미술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작품이 바로 뭉크의 '절규'입니다. 뭉크는 어린 시절 비극적이었는데요. 5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연이어 믿고 따르던 누나의 죽음, 광신도가 된 아버지의 공포스러운 행동 등이 그를 공포와 불안 속에 살도록 하였죠.
그러던 중 집안에서 권유했던 직업이 아닌 예술가를 선택하면서 크리스타니아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게 됩니다. 그때 또래 친구들과 아틀리에를 임대하여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의 작품은 '절규'와는 완전히 다른 밝은 색감과 분위기의 작품들을 그렸는데요.
이러한 그의 스타일도 아버지의 죽음 이후 우울, 불안, 등 내면 감정이 온전히 담긴 작품들로 그의 예술성을 나타내기 시작하죠. 한 때는 그의 화풍이 정신질환자의 작품이라고 폄하당할 정도로 평이 좋지 못하였으며, 개인전을 하던 베를린에서는 1주일 만에 전시회를 중단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간의 평가에도 그는 자신만의 '표현주의' 예술관을 멈추지 않았고, 1893년 생의 프리즈 연작 즉, 사랑의 시작부터 소명, 생의 불안과 죽음 총 4개의 주제로 구성된 시리즈를 발표하며, 세기의 걸작 '절규'가 탄생합니다.
저마다의 해석이 있겠지만, 그의 절규는 당시의 화풍과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느꼈던 무한한 자연의 절규를 본인의 공포와 불안스러운 감정과 얽혀 자신만의 표현주의 예술로 승화하였다는 점에 있으며, 이는 곧 20세기 초 모더니즘과 표현주의의 발전에 발돋움을 했다고 현재에는 평가받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은 솔직한 화풍으로 그의 작품을 본 관람객들의 시선과 사유를 깊게 작품에 묶어두었기에 지금에 와서도 '절규'가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렇게 유명한 절규 작품은 그 속에 다양한 사실이 숨어있는데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회 관람 전 한 번 보고 가시면 어떨까요?
절규는 실제 장소이다?
뭉크의 절규는 노르웨이의 실제 장소와 연관이 있는데요. 바로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에케베르크 언덕입니다. 사실 뭉크는 에케베르크 언덕을 배경으로 절규 뿐만 아니라 절망, 불안이라는 작품도 만들었었는데요. 그는 왜 이 언덕에서 이러한 공포스러운 감정들을 느꼈던 걸까요? 이는 그의 가족사와 연관있는데요. 어머니, 누나, 아버지의 장례식이 차례로 치루어 지던 곳이고, 여동생 라우라가 정신질환으로 입원했던 병원도 언덕 근처이기 때문이죠. 그의 이러한 성장 배경을 이해한다면, 왜 그가 에케베르크 언덕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얻었던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나요?
절규 작품에는 낙서가 있다?
뭉크의 절규에는 왼쪽 상단 구성에 "Kan kun være malet af en gal Mand!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다!) "라는 낙서가 발견되었었는데요.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감정 결과 해당 문구는 뭉크가 직접 쓴 내용이라고 밝혀져서 관람객에게 또 한 번 놀라움을 주었죠. 당시 국립미술관 큐레이터 마이브리트 굴렌은 '의심할 여지없이 뭉크의 낙서이며, 현미경으로 보면 연필선이 물리적으로 페인팅이 완전히 완료된 뒤 적혔음을 알 수 있다'라고 밝혔어요.
또한, 미술관 측은 '절규'는 1893년 작품이지만 이 낙서는 작품이 처음 전시된 1895년에 적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죠. 바로 '절규'가 처음 공개됐을 때, 작품이 예술계와 의학계 양쪽에 날카로운 비난을 받았을 때인데요. 당시 노르웨이 장식 예술 및 디자인 박물관 책임자 헨릭 그로쉬는 그의 작품 '절규'를 보면서 '뭉크는 정상적인 두뇌를 가진 진지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피력할 정도였죠. 당시 정신질환을 앓던 뭉크에게는 그러한 비판들이 상처였을 것이고, 메모와 일기장에 그와 같은 언급을 여러 번 할 정도이기에 국립미술관은 이 과정에서 뭉크가 해당 문구를 그림에 추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에드바르 뭉크의 생애와 예술관을 넘어서 그의 대표작 '뭉크'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보았는데요. 여러분들의 의견이 있다면 같이 댓글로 공유해요. 그리고 그가 표현주의를 이끈 첫 주자인 것과 같이 현대에서도 자신만의 예술을 펼치고 있는 분들의 작품도 같이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