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北 감싸고 두둔… UN 안보리 또 빈 손 종료
“미 군사훈련 중단해야” 주장도
한·미·일 “안보리 외 독자 조치 검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1일(현지 시각) 열렸지만 성과 없이 종료됐다. 상임이사국인 중국·러시아가 “북한의 ICBM 발사가 미국의 ‘적대’와 한미연합훈련에서 비롯됐다”고 본말(本末)이 전도된 주장을 하며 북한을 두둔했기 때문이다. 한·미·일은 장외 공동성명을 발표해 북한의 도발을 규탄했고 “안보리 외 독자 제재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안보리 회의는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올해 들어서만 10번째 열리는 공개회의였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 이사국들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규탄하며 추가 도발 자제와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한국과 일본도 이사국은 아니지만 사안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국’으로 참석해 발언했다.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 증강을 위해 안보리의 무대응과 분열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서만 각종 탄도미사일을 63차례 발사하며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지만 안보리가 매번 ‘빈 손’으로 끝난 점을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이날도 ICBM 발사에 대한 규탄 없이 북한을 감싸며 사실상의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다. 장쥔 중국 대사는 “미국을 비롯한 당사국들이 군사 훈련을 중단하고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등 실용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책임을 미국 정부에 돌렸다. 약 5분 동안 발언하면서 북한에 자제를 촉구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당부하고, 안보리 개최 직전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에게 “국제사회가 엄중한 책임을 물어달라”고 했지만 우리측 우려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장쥔 대사는 “북한의 정당한 우려(legitimate concern)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 차석대사도 “미국의 적대적 활동을 중단하라는 북한의 거듭된 요구를 일관되게 무시해 온 서방 국가들에 대해 깊이 유감스럽다”며 “지금 일어나는 일은 제재, 무력 강요를 통해 북한을 무장 해제시키려는 미국의 열망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핵·미사일 개발이 한미에 맞선 ‘자위적 조치’라는 북한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결국 회의는 아무런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약 1시간 30분 만에 종료됐다. 현 안보리 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 한국, 일본 등 14국이 회의장 밖에서 장외 규탄 성명을 내는데 그쳤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미 대사는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가 북한을 더 대담하게 만들고 두 나라의 노골적인 방해가 동북아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했다. 미측이 “의장 성명을 제안할 것”이라 했지만 구속력이 없고 이마저도 중·러가 반대할 가능성이 커 채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미 테리 미 우드로윌슨센터 국장은 “유엔의 거듭된 실패는 모든 지정학적 환경이 북한에 우호적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김정은이 7차 핵실험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한·미·일 외교 차관은 안보리 종료 후 통화를 갖고 “안보리와 별도로 개별적 추가 조치를 검토·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중·러로 인해 안보리가 사실상 식물화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한·미·일이 독자 제재를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연쇄 도발의 자금원으로 지목된 암호화폐 탈취를 차단할 제재들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7차 핵실험 등 중대한 도발을 감행할 경우 전례 없이 강력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 하에 사이버 활동 관여 인사에 대한 제재 대상 지정, 사이버 분야 제재 조치 부과 등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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