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반도체 시장…삼성전자의 봄은 언제 올까
‘턴키 전략’ 고수하는 삼성전자, 시장 호응 여부 변수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과거의 인텔이 돌아왔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전 세계 수요에 부응하겠다."
2021년 종합반도체업체(IDM) 인텔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팻 겔싱어가 그해 3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하며 밝힌 포부다. 2025년 1000억 달러(133조원) 규모로 성장할 파운드리 시장을 겨냥한 승부수였다. 그는 삼성전자를 뛰어넘고, TSMC에 이어 업계 2위에 오르겠다고도 천명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불과 3년 만에 좌초 위기에 내몰렸다. 인텔은 최근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ntel Foundry Service)'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사하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공장 건설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최악의 실적 부진으로 인한 고강도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1위 대만의 TSMC를 추격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경쟁자의 뒷걸음질이 나쁘진 않다. 투자와 기술 개발 등에서 인텔의 지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땐 유불리를 따지기 쉽지 않다. 미국 정부가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인텔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어서다. 아울러 인텔 파운드리가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 경우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역시 분사 압박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업계 2위' 자리 탈환을 노렸던 인텔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물론 삼성전자에 마냥 호재는 아니다. 우선 파운드리 재진출 이후에도 인텔은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추정한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지난해 매출은 133억 달러다. 같은 기간 인텔 파운드리는 189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매출의 95%가 내부 물량에서 발생했다. 외부 수주로 인한 매출은 9억 달러뿐이었다. 트렌드포스가 분기별 시장점유율 자료에 인텔을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텔이 삼성전자의 점유율을 잠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인텔의 몰락은 종합반도체업체의 쇠락 징후?
그렇다고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이 나아진 건 아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인텔이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2021년 1분기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7.4%였다. 3년이 지난 올 2분기 점유율은 11.5%를 기록했다. 도리어 후퇴한 셈이다. 업계 1위 TSMC의 점유율은 62.3%다. 삼성전자와의 격차는 50.8%포인트에 달한다.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입해 설계와 파운드리 등을 종합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에 오르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달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올해 전망 역시 어둡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올 상반기에 1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한다. 연간으로 따지면 지난해 적자 규모(2조원)를 웃도는 수준의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가 인텔의 몰락을 더욱 주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인텔 파운드리 분사가 이뤄지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팹리스)와 제조를 모두 담당하는 유일한 IDM이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속성은 파운드리 시장에선 약점이다. 설계 기술에 대한 보안 유지나 내부 유출에 대해 고객사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제조사 애플이 삼성전자에, AI 칩 선두주자 엔비디아가 인텔에 일감을 주지 않는 이유다.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를 발표하며 겔싱어 CEO가 밝힌 내용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두 사업부 간 분리를 확대하면 제조(파운드리) 부문이 독립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독립성에 대한 고객 우려를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계와 제조를 따로 운영할 테니 믿고 생산을 맡기라는 의미다.
인텔이 재기에 성공한다면 삼성전자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440억 달러(53조6000억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미국 현지 팹리스 고객사를 공략하기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공장 가동 시점이 미뤄지며 불안감을 안기고 있다. 당초 테일러 공장 가동은 2024년 말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테일러 공장의 첫 양산 시점은 2026년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현지 고객사들의 수주가 여의치 않아서 공장 가동을 늦춘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인텔의 부활을 위해 미국 팹리스 업체들에 '일감 몰아주기' 압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텔이 최근 발표한 아마존 웹서비스(AWS)의 AI 칩 수주에도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국 반도체 기업을 살리기 위한 미국 정부의 지원사격으로 현지 팹리스 업체 물량이 인텔로 쏠릴 경우 삼성전자의 대규모 미국 투자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TSMC의 애리조나 공장은 2024년 조기 가동 가능성이 제기되며 1위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삼성 "전 세계 유일 통합 솔루션"…그 결말은
더 나아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분사 압박도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독립성을 갖춘 인텔 파운드리의 재기는 IDM의 경쟁력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분사는 주기적으로 제기되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당장 물적분할을 진행할 경우 주주들의 반발에 더해 당국의 감독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물적분할의 벽을 넘더라도 대규모 투자 유치를 위해선 기업공개가 필요한데 '자회사 재상장'이란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해 미국 나스닥 상장도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한국 주식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삼성전자의 자회사가 미국에 상장한다는 국내 비판 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삼성전자는 메모리,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일괄 제공하는 통합 AI 솔루션, 즉 '턴키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통합 AI 솔루션을 통해 칩 개발부터 생산까지 20%가량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은 7월 삼성 파운드리 포럼에서 "고성능·저전력 AI 솔루션을 완전히 통합해 제공하는 기업은 전 세계에 하나뿐이며, 삼성 파운드리의 확실한 경쟁력"이라며 "최대한 효율적이며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빠른 제품 납품도 중요하지만 팹리스 고객사 입장에선 보안 유지와 높은 수율이 더 관건"이라며 "인텔의 재기 여부에 따라 삼성전자의 턴키 전략도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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