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친은요, 미식축구부 주장말고 '페미니스트'로 할게요..영화 '걸스 오브 막시'[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하이틴 영화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10대들의 학창생활와 사랑 이야기를 담은 하이틴 영화는 제게 여러모로 죄책감을 주는 ‘길티 플레저’입니다. 머리를 식힌다는 이유로 보기 시작했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달아 몇 작품씩 보곤 합니다.
하이틴 영화를 즐기는 건 저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 <프린세스 다이어리>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열 가지 이유> 등의 계보를 잇는 <키싱 부스> <내가 사랑하는 모든 남자들에게> 같은 하이틴 영화가 연이어 속편을 제작한 걸 보면요.
하이틴 영화에서 채워지지 못하는 즐거움은 많지만, 최근 가장 아쉬운 건 남자 주인공들이 더이상 멋있지 않다는 게 아닐까 합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던 주인공이 그만의 솔직한 매력으로 학교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자와 맺어지는 것이 하이틴의 공식인데, 이제는 학교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남자(주로 미식축구부 주장이나 농구부 주장)에게 환상을 느끼는 여성 관객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성 주인공이 연인과 맺어지면 만사형통이라는 결말에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고요.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걸스 오브 막시>도 학교에서 가장 힘이 세고 주목받는 남성 미식축구부 주장을 더이상 멋있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미식축구부 주장 미첼(패트릭 슈왈츠제네거)은 몇 년동안 두어 번 밖에 경기에서 이긴 적이 없으면서도 학내 체육 장학금을 독차지하고, 페미니스트 전학생을 위협하고 괴롭힙니다. 남자주인공이기는커녕 악역입니다.
주인공 비비언(해들리 로빈슨)은 내성적인 학생입니다. 친구 클라우디아(로렌 차이)와도 내성적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친해졌습니다. 둘은 학교에서 종종 폭력을 마주하지만 조용히 학교를 다니려고 합니다. 미첼이 전학생 루시(알리샤 파스쿠알 페냐)를 괴롭힐 때도 비비언은 루시에게 “무시해. 고개를 숙이면 다른 애를 귀찮게 굴 거야”라고 조언하죠. 루시는 “왜 내가 걔를 무시해야해? 걔가 행동을 똑바로 하면 되지”라고 맞받습니다.

그 즈음 학교에 있는 모든 여학생들을 성적 대상화해 순위를 매긴 ‘리스트’가 돕니다. 이 학교 남학생들은 주기적으로 여학생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듭니다. ‘최고의 엉덩이’ ‘최고의 가슴’ ‘제일 자고 싶은 여자’…이 중 비비언은 ‘제일 순종적인 여자’에 이름을 올립니다. 미첼에게 미움 받는 루시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무엇”으로 뽑혔습니다. 씩씩대며 집에 온 비비언은 ‘막시(용기를 뜻하는 오래된 비속어·영화에서는 ‘깡다구’로 표현됨)라는 이름의 전단지를 만들어 몰래 학교 화장실에 가져다 놓습니다. 여학생들은 리스트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뭉치기 시작합니다. 여학생들은 ‘막시’의 이름으로 미첼 대신 여성 축구부장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하고, 여학생에게만 탱크톱을 입고 등교하지 못하게 한 학교 규정에 저항하는 등 학내 페미니즘 운동을 전개해 갑니다. 내성적이었던 비비언은 점차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법을 알게되고요.
‘페미니스트로 거듭난 당당한 비비언’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큰 흐름이지만, 영화는 보다 세밀한 맥락을 비춥니다. 아시아계 이민자인 클라우디아는 비비언이나 루시처럼 학교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운동을 하지 못합니다. 클라우디아는 막시 모임이 학교 공식 클럽으로 등록하지 않아 문제에 부딪히자 절차적인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 운동에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여성이 비비언이 전개하는 페미니즘 운동의 친구인 것도, 모든 남성이 적인 것도 아닙니다. 미첼이 학교에서 날뛰는 것을 허용하는 가장 큰 권력은 여성인 교장선생님입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여학생들의 의견을 묵살합니다. 비비언과 남자친구 세스(니코 하라가)와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세스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막시를 만든 사람이 비비언인 것을 몰랐을 때부터 막시를 지지한다고 말하고, 비비언을 “그냥 귀여운 여자애가 아니라 진짜 멋진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합니다. 어느날 학교 문제로 화가 난 비비언이 세스와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대뜸 화를 내자 세스는 “날 샌드백으로 취급하면 안 돼”라는 말을 남기고 비비언을 떠납니다. 비비언은 그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합니다.
영화는 하이틴 영화답게 다소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결말을 보여줍니다. 그래도 평면적인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지 않고, 학교에서의 성별 권력을 당연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새로웠습니다.
‘타임 워프’ 지수 ★★★★ / 러닝타임 110분이 훌쩍. 하이틴 영화의 본분에 충실.
‘사이다’지수 ★★★★ /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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