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산 와인이 있어야 할 셀러에는 과자가, 치즈 전용 냉장 코너에는 플라스틱 반찬통이 들어차 있었다. 홈플러스 본사가 위치한 메가푸드마켓 강서점의 현주소다. 자산 유동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핵심 점포들마저 상품 공급 차질과 상품기획(MD) 경쟁력 저하가 가시화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홈플러스의 유통 플랫폼 가치보다 부동산 자산 가치만 부각돼 향후 인수합병(M&A) 협상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8일 홈플러스에 따르면 회사는 오는 10일부터 7월 3일까지 전국 104개 대형마트 가운데 37개 점포의 영업을 잠정 중단한다. 수익성이 낮은 점포 운영을 멈추고 67개 핵심 점포에 상품과 인력을 집중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휴업 대상 직원들은 평균임금의 70% 수준의 휴업수당을 받거나 인근 점포로 전환 배치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영업 중단 대상은 현재 최종 확인 중이며 기존에 종료 계획이 공유된 점포들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만으로는 정상화 재원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홈플러스는 NS쇼핑과의 매각 계약으로 1206억원을 확보했지만 시장 기대치(약 3000억원)에 크게 못 미쳤다. 실제 현금 유입까지 약 두 달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운영자금 부담도 커지는 상황이다. 회사는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에 DIP 금융 지원을 요청했으나 아직 회신을 받지 못했다.
와인 셀러엔 과자, 치즈 코너엔 반찬통
그러나 본사가 위치한 메가푸드마켓 강서점 현장은 '핵심 점포'라는 상징성이 무색할 만큼 상품 공급망 차질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매장 곳곳에서는 빈 매대를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식 진열이 반복됐다. 특히 객단가가 높거나 신선도 유지가 중요한 카테고리일수록 상품 공백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우선 소비자 유입이 많은 계산대 인근과 메인 통로 등 핵심 구역은 홈플러스 자체브랜드(PB) ‘심플러스(Simplus)’ 제품이 사실상 장악한 상태였다. 냉장 음료 코너에서는 PB 비중이 70%를 웃돈 반면 주요 제조사 브랜드(NB) 제품은 전면에 일부만 진열된 채 상당수가 품절 상태였다.


PB 중심의 진열 방식도 이례적이었다. 프리미엄 주류가 들어서야 할 ‘프랑스 와인 셀러’ 매대에는 와인병 대신 스낵 제품이 놓여 있었고, 치즈 전용 냉장 코너 역시 플라스틱 반찬통으로 채워져 있었다. 상품 카테고리와 무관한 제품으로 빈 매대를 메우는 임시방편식 운영이 본사 소재 핵심 점포에서조차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장기화된 회생 절차 속에 제조사들의 납품 축소와 거래 조건 강화가 이어지며 상품 수급 체계가 한계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현장의 한 직원은 “빈 매대를 PB 제품으로 메우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라며 “영업은 이어가고 있지만 과거 같은 매장 활기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카테고리와 무관한 상품으로 매대를 채우는 현상이 MD 역량과 바잉 파워 약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통 플랫폼’ 증명해야 하는 홈플러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향후 M&A 협상 과정에서 기업가치 할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는 수정 회생계획안에 잔존 사업부문 매각 방안을 담을 예정이지만, 유통망 경쟁력과 브랜드 매력도는 지난해 3월 이후 빠르게 약화돼 왔다. 시장에서는 홈플러스가 유통 플랫폼보다 부동산 자산 중심으로 평가받을 경우 기대 수준의 기업가치를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홈플러스가 영업을 이어가는 배경에는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회생 절차상 필요가 자리하고 있다. 상품 수급 문제로 점포 폐점이 확대될 경우 영업망 붕괴로 평가받을 수 있는 만큼, 상품 구성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매장 운영을 이어가며 사업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전략이다. 동시에 전국 단위 유통 네트워크가 여전히 유효한 자산이라는 점을 잠재적 인수 후보자들에게 부각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홈플러스 측은 현재 위기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핵심 거점 매장을 중심으로 반등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부 매장에서 상품 부족으로 고객 이탈이 심화되며 매출이 전년 대비 50% 이상 감소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공급 가능한 물량을 핵심 매장에 우선 배치해 매출 감소와 고객 이탈을 최소화하고 영업력을 조기에 회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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