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방어가 생각나는 이유

안녕, 미식 에디터 이주연이다. 찬바람이 불면 괜스레 방어가 당긴다? 그렇다면 당신은 마케팅의 노예일지도 모른다. 다들 ‘봄 도다리, 가을 전어’ 등의 표현을 들어봤을 것. 제철 음식을 알리는 말이니 적어도 조선시대 즈음부터 유래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특정 시기에 많이 잡히다 보니 이걸 팔려면 꼭 그 시기에 먹어야 맛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표현이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 등은 판매자들이 열심히 홍보한 결과인 셈이다.

실제로 봄 도다리는 산란 후 다시 살을 찌우기 위해 가까운 바다로 나왔다가 잡혔기 때문에 살이 적고 맛이 없다. 많이 잡았으니 팔아야 해서 생각해 낸 자구책이 도다리쑥국이다. ‘어, 나는 봄 도다리 세꼬시도 먹어봤는데?’ 안타깝지만 당신이 먹은 건 도다리의 살이 아니었을 확률이 높다. 겨울철 방어도 마찬가지다.


방어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특정 해산물이 유행하는 과정을 관찰하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고급 어종은 대부분 일본에 수출했다.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고, 해산물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다. 19991년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하며 갑자기 해산물 수출량에도 거품이 빠졌다. 일본에 기대 살아가던 어업 종사자들의 살길이 막막했다.

죽으란 법은 없다고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는 올림픽을 개최하고 해외여행을 자유화했다. 무엇보다 먹고 살 만해졌다.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며 견문이 넓어졌고, 해외에서 경험한 낯선 식재료와 음식을 국내에서도 찾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고 어업 종사자들은 판로가 끊긴 고급 어종을 팔기 위해 내수 시장을 공략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키조개다. 전남 고흥에서 주로 잡히는 키조개는 1980년대까지 전량 일본에 수출했다. 이를 판매하는 어부조차 맛을 보지 못할 정도로 일본이 싹쓸이해 갔다. 그러다 일본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며 내수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홍어 삼합에서 힌트를 얻어 ‘장흥 삼합’이라고 소고기,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함께 먹는 문화도 만들어냈다.

방어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혜성처럼 등장한 어종 같지만, 사실 방어 축양이야말로 우리나라 어류 양식의 효시였다. 여기서 ‘축양’은 살아 있는 수산 생물을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행위를 뜻한다. 양식이 인공 종묘를 생산해 기르는 방식이라면, 축양은 종묘를 수입하거나 야생에서 치어, 성어의 상태로 채집해 해상 가두리에서 양식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방어를 축양하기 시작한 배경에도 일본이 있다. 일본 사람들이 예부터 좋아한 방어가 우리 해안에서 많이 출몰하자 60년대 두 나라가 합작하여 우리 해안에 방어 축양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광어, 넙치, 참돔 등의 양식이 본격화되기 한참 전의 일이다. 참고로 80년대 국내에서 축양한 방어 한 마리가 일본에 송아지 한 마리 값에 수출되기도 했다고.


방어가 특별해진 까닭

방어 축양 사업이 일찍이 발달한 데다 자연산 방어도 많이 잡히는데 판로가 줄어들자 방어 또한 내수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해산물이 한둘이 아니지만, 방어는 여러 측면에서 특수를 누리기 좋았다. 2000년대 중후반, 젊은 층 사이에서 제주 여행이 유행하며 사람들은 어쩐지 육지와 다른 제주를 향해 환상을 품기 시작했다. 제주를 향한 환상이 제주 모슬포항과 마라도 인근에서 주로 잡히는 방어를 향한 관심으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겨울에 제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생선이라 알려지며 제주 방어를 향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사실 제주 사람들은 방어보다 담백하고 쫄깃한 부시리를 더 선호했다 한다. 그럼에도 방어가 대세가 된 것은 그만큼 많이 키워 많이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말 특수도 더해졌다. 1년 내내 보지 않던 사람도 연말이면 송년회, 망년회 핑계로 만난다. 여럿이서 모이는 만큼 평소 머릿수가 부족해 제대로 즐기지 못한 메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여러 요리를 주문해 맛볼 수 있다는 면에서 중국집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국 음식은 특별한 느낌이 덜하고 사진을 찍는다고 상상했을 때 밋밋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때 사람들은 와우 포인트가 있는 방어를 떠올린다. 투뿔 한우처럼 허연 마블링이 낀 방어를 한입에 넣기도 힘들 정도로 두툼하게 썰어 산더미처럼 쌓은 특대 자의 회 접시 사진은 방어를 좋아하든 말든 시선을 사로잡는다. 연말에 SNS에 방어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입맛을 다시며 겨울 내내 방어를 찾는다.


고등어, 삼치 그리고 방어

나는 사실 방어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기름져 서너 점 이상 맛있게 먹기 어렵다. 연말에 사람들에 이끌려 연남동에 위치한 방어로 유명한 횟집을 찾은 적 있다. 지금처럼 줄이 길지 않을 때였다. 모든 테이블에 방어가 올라왔고,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압도적인 비주얼과 사과처럼 서걱서걱 씹히는 식감, 입안을 적시는 기름기에 열광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어느 순간이 되면 모든 테이블에 해물라면이 올라와 있었으며, 나갈 때쯤 테이블을 돌아보니 방어회가 남은 곳이 꽤 있었다. 처음의 도파민이 폭발하는 듯한 환호성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나라 회 문화에 방어는 다소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우리는 한 마리의 생선을 잡아 한자리에서 호방하게 먹잖아요. 곁들이는 반찬이나 찍어 먹는 소스도 비슷하고요. 단순한 맛이 반복되는데, 방어는 그중에서도 너무 기름져 처음부터 끝까지 맛있게 먹긴 어려운 생선이라 생각해요.”

스스로를 ‘음식 탐험가’라 소개하는 지속 가능한 미식 연구소 ‘아워플래닛’ 장민영 대표의 의견이다.

“무엇보다 3개월 내내 방어를 먹는 데 있어 아쉬움이 커요. 바다는 계절이 늦게 와요. 육지는 12월부터 춥지만, 수온이 기온처럼 떨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요. 바다가 추워져야 방어는 맛있어요. 12월 중순경인 지금도 개인적으로 방어를 먹기엔 이르다고 생각해요. 살이 더 오르고 기름이 더 차야 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12월부터 1월, 2월까지 3개월 내내 방어를 찾잖아요. 하나의 식재료에 인기가 몰리면 우리의 식탁은 빈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포도를 한번 보세요. 가뜩이나 국내에 포도 품종이 적은데, 몇 해 전부터 샤인머스캣이 유행하며 농부들이 기존의 품종을 버리고 샤인머스캣을 심는 바람에 이제는 캠벨, 머루조차 맛보기 어려워졌잖아요. 겨울에 맛이 오르는 생선은 많아요. 그런데 지금처럼 방어만 찾다 보면 식문화의 다양성이 깨지고, 방어도 전어처럼 씨가 마를지 몰라요.”

장 대표는 제철 음식 달력을 좀 더 세밀하게 그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가령 방어보다 고등어, 삼치가 더 빨리 살이 올라요. 찬바람 불면 고등어부터 즐기다가 삼치로 갈아타 또 다른 맛의 묘미를 즐기다가 2월쯤 방어를 먹기를 추천해요. 미식적 경험을 세분화할수록 우리 소비자가 즐겁고, 시장도 건강해져요. 저희 아워플래닛 같은 경우도 겨울 생선으로 방어가 아닌 삼치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연말이면 꼭 삼치회 행사를 해요. 도시 사람들에게 낯선 삼치회의 맛을 선보임으로써 식문화의 폭을 조금 더 넓히고 싶어요.”

아워플래닛 삼치회

아워플래닛 삼치회

아워플래닛은 지난 12월 15일, 16일 마켓을 통해 삼치회를 판매했다. 주로 남도에서 먹는 삼치회는 방어회와 맛의 스펙트럼에서 대척점에 있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 많이 표현하나 그보다 뭉그러지는 느낌에 더 가깝다. 또, 지방이 가장 많이 차올랐을 때라 하나 방어와 비교하면 기름이 턱없이 적으며 살코기 맛이 지배적이다. 평소 활어회를 즐겨 먹는 사람에겐 식감이 다소 어색할 수 있고, 지방이 적어 혀와 뇌를 압도하는 매력은 없으나 담백하여 먹고 돌아서면 또 생각나는 맛이다.


방어 조리에도 변주가 필요하다

“방어를 먹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해요. 국내에선 방어를 거의 횟감으로 쓰는데, 모든 부위가 회로 먹었을 때 최상의 맛이 나는 건 아니에요. 가령 뱃살과 턱살에 해당하는 가마살은 회로 먹기 적당해요. 이들 부위는 기름이 꽉 차 있어서 간장보다 소금, 와사비 조합이 더 잘 어울려요. 기름기가 덜한 등살은 겉만 살짝 익혀 맛에 변주를 주든지, 마늘 간장에 절여 먹으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어요. 섬유질이 많아 질긴 꼬릿살은 훈연하면 맛이 확 살아나요. 이런 식으로 부위별로 조리법을 달리해야 소비자들도 방어를 통해 더 즐거운 미식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일식 다이닝 ‘쇼쿠도합’ 변영수 셰프의 설명이다.

쇼쿠도합 삼치루이베

변 셰프는 방어를 들이는 날이면 기본 메뉴인 ‘사시미합’의 3종 생선 중 하나로 방어회를 내고, 남은 부위로는 짚불에 훈연해 마늘 간장에 찍어 먹는 ‘부리 와라야키’를 선보인다. 장민영 대표가 방어를 대체할 생선으로 추천한 삼치를 생의 상태로 얼려 미소 양념을 곁들여내는 ‘삼치루이베’라는 메뉴도 쇼쿠도합에서 즐길 수 있다. 부산 광안리에 위치한 이자카야 ‘조이풀조이풀’에서는 때때로 방어를 샤부샤부로 풀어낸 ‘부리샤브’ 메뉴를 선보이기도 한다.

‘나다움’이 화두다. 겨울이라고, SNS에 올라온다고 무턱대고 방어회를 찾지 말고, 마케팅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한 번쯤 고민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