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회화의 구원자’ 호크니

어수웅 논설위원 2026. 6. 1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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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의심된다며 어머니가 자가 격리에 들어간 2020년의 일이다. 접촉 금지로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아이패드로 그린 ‘노란 수선화’ 그림을 보내왔다. 검은 흙을 뚫고 피어난 눈부신 노랑이었다. 작가는 프랑스 노르망디 시골집에 격리 중이던 데이비드 호크니. 어머니와 동갑내기인 영국 노화가가 전 세계에 무료로 공개한 선물이었다. 호크니는 이렇게 적었다. “그래도 봄은 온다는 걸 잊지 마세요.” 생생한 봄의 온기가 안에 있었다. 일주일 뒤 어머니는 기운을 차렸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전을 기억한다. 관객 37만5000명. 생존 작가 개인전으로는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운 블록버스터 전시였다. 바로 전 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이 1000억원 넘는 액수로 팔리며 ‘몸값 가장 비싼 화가’가 된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매혹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생각한다. 호크니는 ‘실제 세계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은 ‘회화의 구원자’였다.

▶20세기 중후반 미술계는 추상과 미니멀리즘, 개념미술이 장악했다. 다들 “회화는 끝났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는 구상미술은 구시대 유물 취급을 받았다. 이 난해하고 메마른 유행 속에서 호크니는 ‘그리는 본능적 즐거움’을 외쳤다. 그는 빛과 물, 색채를 부리는 마술사였다. 미국 LA의 쨍쨍한 햇빛과 새파란 수영장을 캔버스에 가두었고, 고향 영국 요크셔의 겨울 숲을 보라와 주황, 에메랄드 초록으로 물들였다.

▶‘겨울은 우중충한 회색 아니냐’는 핀잔에 호크니는 말했다.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렇다. 진흙 속에도 수많은 갈색이 있고, 겨울 가지에도 빛의 스펙트럼이 있다. 나는 본 것을 그릴 뿐이다.” 살아서 온갖 영광을 누린 거장이지만 그에게도 그늘은 있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성 난청으로 40세부터 보청기를 꼈다. 고흐의 이명(耳鳴)이 내면의 소용돌이를 낳았다면, 호크니의 난청은 외면의 색채로 피어났다고 할까. “소리가 안 들리니 세상의 공간과 색이 훨씬 더 선명하게 보였다”고 그는 말했다.

▶“지나치게 예쁘고 장식적”이라는 비판도 전에는 있었다. 하지만 2020년대 이후 프랑스 퐁피두 센터, 영국 테이트 모던, 미국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최고의 미술관들은 대규모 회고전으로 그를 경배했다. 89세로 마친 삶. 예술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치유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노란 수선화를 다시 들여다보며 호크니의 명복을 빈다.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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