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바꿔” 1993 PO ‘전자라이벌’ 삼성전 패배와 후폭풍

[이재국의 엘팬알백] ㉝1993년 PO 뼈아픈 패배와 선수단 체질개선 몸부림

1993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 앞서 삼성과 LG(금성)의 '별 전쟁'을 예고한 스포츠서울의 1면 보도. ⓒ스포츠서울
“정규시즌에서 10승8패로 다소 앞서 선수들이 삼성에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5경기 중 3경기를 잠실에서 치르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다.”-LG 트윈스 이광환 감독
“포스트시즌 경기 경험이 많은 고참들이 큰 경기에서 제몫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잠실에서 1승1패면 대구에서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삼성 라이온즈 우용득 감독

LG 트윈스는 1993년 가을, 연이어 라이벌을 상대해야 했다.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잠실 라이벌’ OB 베어스와 3경기 혈전을 치른 끝에 2승1패로 플레이오프(PO)에 진출했다. 그런데 PO에서 맞닥뜨린 상대는 ‘전자 라이벌’ 삼성 라이온즈.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요즘보다 라이벌 의식이 더 강했던 시절, 그래서 그해 가을은 ‘가을잔치’라기보다는 차라리 ‘가을전쟁’과 같았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33번째 주제는 1993년 5차전 혈전을 치른 플레이오프 이야기다. 삼성에 2승3패로 패퇴하면서 LG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맞이하게 된다.

1990년 한국시리즈 이후 3년 만에 맞이하는 가을잔치. 1993년 플레이오프에서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LG 팬들이 노란색 구단기와 흰색 메가폰을 들고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LG 트윈스

◆‘전자 라이벌’ 럭키금성과 삼성…두 번째 가을야구 격돌

LG의 당시 그룹명은 ‘럭키금성’이었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플레이오프 맞대결을 금성(金星)과 삼성(三星)의 ‘별 전쟁’으로 묘사했다.

그동안 전기와 전자업계에서 첨예한 경쟁을 펼쳐온 라이벌 기업답게 양 팀이 페넌트레이스 맞대결을 벌일 때도 그룹 임직원들이 동원돼 열띤 응원전을 전개했다. 그 정도로 프로야구단을 통해 뜨거운 자존심 싸움을 해온 재계 라이벌이었다.

1990년 LG 트윈스가 MBC 청룡을 인수한 뒤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그룹 차원의 라이벌 의식이 더욱 치열했던 시절이다.

양 팀 선수단도 이런 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에 따라 그룹의 대리전을 치르는 기분으로 긴장감 속에 플레이오프를 맞이했다.

1993년 시즌 MVP 김성래와 신인왕 양준혁, 천재타자 강기웅, ‘헐크’ 이만수 등을 앞세운 삼성은 그해 팀타율(0.271)과 팀홈런(133) 1위 등으로 LG(팀타율 0.256, 74홈런)에 우위를 점했다. 팀평균자책점에서도 삼성은 2.94(3위)로 LG의 3.05(4위)보다 앞서 있었다.

하지만 팀간 전적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LG가 삼성을 10승8패로 눌렀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있었다. 바로 LG의 홈인 잠실구장에서 먼저 플레이오프 1~2차전을 치른다는 사실이었다.

요즘 같으면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팀이 먼저 1~2차전을 홈경기로 소화하지만, 당시 KBO 대회요강엔 서울 본거지 구단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경우 상·하위팀에 관계없이 잠실구장에서 1~2차전을 실시하기로 돼 있었다. 그리고 5차전까지 이어질 경우 다시 중립구장 개념으로 잠실구장에서 최종전을 소화하도록 돼 있었다.

LG로서는 OB와 준플레이오프 혈전을 치른 뒤 휴식일이 하루밖에 없었기에 대구로 이동하지 않는 것만 해도 큰 이점이었다. 특히 그해 잠실 상대전적에서는 LG가 6승3패로 삼성을 압도했던 터라 체력적인 문제 외엔 여러모로 LG에겐 유리한 환경처럼 보였다.

반면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삼성은 9월 27일 정규시즌 종료 후 열흘을 쉬었기 때문에 체력이 충전돼 있는 상황이었다.

LG와 삼성은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사상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맞대결을 펼쳤는데 당시 LG가 4승무패로 압도하면서 창단 첫 우승에 성공한 바 있다.

LG는 그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삼성은 3년 전 가을악몽을 되돌려주기 위해 10월 9일(토요일) 한글날 잠실벌에서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LG 트윈스 간판투수 정삼흠. 1993년 삼성과 격돌한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선발 중책을 맡았다. ⓒLG트윈스

◆1차전…포스트시즌에서 삼성에 첫 패

기선제압을 위해 삼성은 김상엽, LG는 정삼흠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김상엽은 1993년 13승6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2.58의 호성적을 올렸다. 탈삼진 170개로 그해 신설된 탈삼진 타이틀 초대 수상자가 됐을 정도로 구위가 빼어난 파워피처였다.

정삼흠은 15승11패, 평균자책점 2.99를 기록했다. 15승은 그해 해태 조계현(17승)에 이어 리그 다승 2위에 해당하는 승수였다. 다양한 변화구와 제구, 템포투구를 펼치는 두뇌파 투수였다.

중반까지는 팽팽한 투수전. LG가 5회말 선취득점에 성공했다. 선두타자 이병훈이 좌전안타로 출루하자 김선진이 대주자로 나섰다. 박준태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여기서 김상엽의 2루 견제 악송구가 나왔다. 이어 중견수 동봉철이 3루로 달리는 김선진을 잡기 위해 던졌지만 또 악송구. 사실상 공짜로 1점을 먼저 뽑았다.

하지만 6회초에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1사 1루서 강기웅의 우전안타 때 이번엔 LG 우익수 박준태가 3루에 악송구를 범해 1-1 동점. 왼쪽 허벅지 종기 수술로 다리를 절며 타석에 들어선 양준혁이 우전 적시타를 날려 2-1로 전세가 역전됐다.

7회초에는 강기웅이 LG 신인 좌완투수 강봉수를 3점홈런으로 두들겨 스코어를 5-1로 벌렸다. 강기웅이 좌투수에 강해 LG 벤치에서 높은 공으로 유인하면서 걸려들지 않으면 거르도록 지시했지만, 어정쩡한 높이의 공을 던지는 바람에 결정적인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LG는 정삼흠 이후 차명석(1이닝)~민원기(0.1이닝)~이상훈(1이닝)이 등판해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타선이 침묵하면서 추격에 실패했다.

1993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안타 1실점 완투승을 올린 삼성 김상엽. ⓒ삼성라이온즈

LG는 이날 단 1안타만 뽑았다. 김상엽에게 완투패를 당했는데 노히트노런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LG로선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상대로 4승무패로 꺾고 우승했기에 이날의 패배는 가을야구 역사상 삼성에 당한 첫 패배로 기록됐다.

◆2차전…윤찬 본헤드 홈질주, 잠실 안방에서 2연패

2연패를 당하면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 LG는 9월에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고, 그 여세를 몰아 OB와 준플레이오프에서 2승을 올린 김태원 카드를 빼들었다. 삼성은 공은 느리지만 절묘한 제구와 타이밍 싸움을 하는 좌완 성준을 선발로 내세웠다.

이번에도 선취점은 LG의 몫이었다. 2회말 박준태의 좌중간 적시타로 1점을 뽑았다. 4회말에는 무사 만루서 이종열의 스퀴즈번트로 2-0으로 앞서나갔다.

그런데 5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김태원이 6회초 선두타자 강기웅에게 좌전안타를 맞았다.

LG 이광환 감독은 한 박자 빨리 투수를 교체했다. 특급 마무리투수 김용수를 조기에 투입하는 초강수를 둔 것. 하지만 여기서 계산이 어긋났다. 김용수가 삼성 이종두에게 좌월 2점홈런을 맞고 말았다. 2-2 동점.

LG는 곧바로 좌완 민원기를 호출했다. 후속 타자들을 잘 막아나가던 민원기는 8회 1사 후 김성래에게 중월 3루타를 허용했다.

이어 구원등판한 차명석은 벤치의 지시에 따라 연속 고의볼넷을 내주며 만루 작전을 수행했다.

이상훈이 불펜에서 몸을 풀 시간을 벌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타석에는 신인왕에 오른 좌타자 양준혁. LG는 여기서 1차전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좌투수 이상훈을 불렀다. 슈퍼루키들의 맞대결이었다.

LG의 의도대로 2루수 앞 땅볼이 나왔다. 더블플레이를 기대했다. 하지만 양준혁이 아픈 다리를 이끌고 전력질주해 1루에서 살았다. 3루주자가 홈을 밟으면서 삼성이 3-2로 역전. 다리가 아픈 양준혁이 제대로 달리지 못할 것으로 짐작하고 2루수 박종호가 평소보다 뒤로 물러나 수비를 한 것이 패착이었다.

1991년 LG 트윈스에 입단한 재미교포 내야수 윤찬. 1993년 PO 2차전에서 본헤드 플레이를 펼치는 바람에 질타를 받았다. ⓒ스포츠서울

LG는 9회말 마지막 찬스를 잡았지만 한국야구사를 장식하는 희대의 해프닝이 펼쳐져 땅을 쳤다.

사연은 이렇다. 선두타자 김영직이 우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발목이 좋지 않은 김영직을 빼고 재미교포 대주자 윤찬을 투입했다. 이때 대타 최훈재의 플라이 타구가 오른쪽으로 향했다. 잘 맞긴 했지만 우익수 정면이었기에 이종두가 살짝 뒤로 물러나면서 어렵지 않게 공을 잡았다.

응당 1~2루 사이에서 타구가 잡히는 걸 보고 귀루해야 할 1루주자 윤찬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라운드를 질주하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풀린 폭주기관차처럼 2루를 돌아 3루로 내달리자 이종도 3루코치가 팔을 휘저으며 “돌아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하지만 윤찬은 “계속 달려”라는 시그널인 줄 알고 3루마저 돌더니 홈으로 돌진했다.

그 사이 우익수 이종두의 송구가 1루로 향했고, 김양경 1루심이 아웃을 선언했다.

윤찬은 극적인 동점 득점을 올린 주자마냥 홀로 만세를 부르며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누구도 자신을 반겨주지 않는 싸늘한 분위기. 윤찬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1사 1루가 아니라 2사 주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더 안타까운 건 바로 다음 타자 송구홍의 중전안타가 터진 것. 결국 박종호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면서 LG는 2-3으로 패하고 말았다.

LG 타선은 4회부터 구원등판한 삼성 류명선(6이닝 무실점)의 호투에 꽁꽁 묶이면서 안방에서 통한의 2연패를 당했다. 페넌트레이스 잠실 상대전적(6승3패)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LG 신인투수 이상훈이 대구 적지에서 열린 PO 3차전에서 팀을 기사회생시키는 역투를 펼쳤다. ⓒ스포츠서울

◆3차전…벼랑 끝에서 역투한 루키 이상훈, LG 반격의 1승

"감독님, 저한테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3차전 선발로 나가겠습니다. "

3차전을 앞두고 정삼흠이 선발등판을 자청했다. 여기서 지면 끝이라는 생각, 1차전 패배를 스스로 만회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이광환 감독은 정삼흠의 투쟁심을 높게 샀다. 하지만 코칭스태프 회의 끝에 이틀만 쉬고 등판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결국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루키 이상훈을 3차전 선발투수로 발탁했다.

이상훈은 데뷔 첫해 9승9패, 평균자책점 3.76을 기록했다. 신인으로서는 준수한 성적. 하지만 역대 최고 몸값 2억 원(계약금 1억8800만 원, 연봉 1200만 원)을 받고 입단했기에 기대에는 못 미친 게 사실이었다. 당시엔 10승이 투수로서의 성공과 자존심의 기준점이었다.

특히 첫해엔 제구력이 다소 들쑥날쑥한 '야생마' 스타일이었고, 한 시즌을 던지다 보니 막판엔 구위가 떨어졌다. 그래서 이상훈은 OB와 격돌한 준플레이오프에는 한 차례도 등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훈은 플레이오프 1~2차전에 연속 구원등판해 안정감 있는 투구를 펼쳤다. ‘큰 무대’에 강한 체질임을 입증하면서 선발진 최후의 보루로 낙점됐다.

삼성 선발투수는 데뷔 첫해 14승을 수확하며 특급 잠수함의 출현을 알린 루키 박충식이었다.

한편 3차전을 앞두고 입장권을 구하려는 팬들이 대구구장 매표소로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과 팬들의 몸싸움까지 벌어지자 매표를 중단하고 대구구장 만원관중(1만3000명)에 55명이 부족한 상태로 경기가 진행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만큼 양 팀의 맞대결을 향한 팬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LG 타선의 핵으로 활약한 '검객' 노찬엽이 다부지게 타격하는 모습. 3차전 결승타를 기록했다. ⓒ스포츠서울

3차전에서도 선취점은 LG가 만들었다. 6회초 2사 만루에서 노찬엽이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때렸다. 스코어 2-0. 이것으로 이날 승부가 끝났다.

이상훈은 7.2이닝 동안 투혼의 120구를 던졌다. 4사구 7개를 내줬지만 1안타 10탈삼진의 괴력투. 삼성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8회말 수비에서 연속 볼넷으로 무사 1·2루 위기를 만났다. 최대 고비처럼 보였다. LG 벤치는 이상훈을 믿고 기다렸다. 여기서 강기웅의 잘 맞은 타구가 3루수 직선타. 귀루하지 못한 2루주자까지 한꺼번에 잡아내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LG 벤치는 여기서 움직였다. 이상훈을 구원등판한 김용수가 1.1이닝 동안 4타자를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세이브를 올렸다.

벼랑 끝에 몰렸던 LG는 이로써 적지에서 반격의 첫 승을 거두고 4차전을 정조준할 수 있게 됐다.

LG 트윈스 유격수 '로보캅' 송구홍(오른쪽)이 1993년 삼성과 플레이오프에 4차전 1회말 더블플레이를 완성하고 있다. 가운데 2루수는 박종호, 거칠게 슬라이딩을 하는 주자는 삼성 1번타자 동봉철. ⓒ스포츠서울

◆4차전…2연패 후 2연승! 승부는 원점으로

1차전 선발 맞대결을 펼쳤던 정삼흠과 김상엽의 리턴매치가 펼쳐졌다.

3차전 선발등판을 자청할 정도로 투지를 불태웠던 정삼흠은 이날 경기에서 모든 것을 쏟아냈다. 7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를 펼치며 팀에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다.

LG 타선 역시 5회까지 김상엽의 구위에 눌리며 무득점에 그쳤지만 6회초 찬스를 잡았다.

선두타자 이병훈이 볼넷으로 나가면서 득점의 실마리를 잡았다. 대주자 김선진이 2루 도루에 성공하더니 1사 후 3루까지 연거푸 훔치면서 상대 포수 김성현의 악송구를 유발해 선취점을 뽑았다. 계속된 2사 만루에서 김영직이 바뀐 투수 류명선을 상대로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 2-0 리드를 잡았다.

7회초 김동수의 좌중간 적시타로 3-0으로 앞서나간 뒤 9회초 이종열의 1타점 우중간 3루타, 박종호의 1타점 중전 적시타로 5-0으로 달아나며 값진 승리를 쟁취했다.

선발 정삼흠에 이어 8회에는 민원기, 9회에는 김용수가 무실점으로 이어 던졌다.

LG는 홈에서 1~2차전을 내주고 절망에 빠졌지만, 적지인 대구에서 3~4차전을 잡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2연패 후 대구로 내려올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최종 5차전을 치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구단버스 안에서는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왁자지껄 축제 분위기였다.

반면 안방에서 2경기 모두 영패를 당한 삼성은 오히려 벼랑 끝에 몰린 듯 초조한 기색이었다. 우용득 감독이 선수단을 향해 "져도 괜찮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충분히 잘 싸웠다"고 다독일 정도로 삼성 선수단엔 침묵이 흘렀다.

1993년 10월 16일자 스포츠서울 1면.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삼성이 LG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5차전…직선타 아웃만 5개, 통한의 1점차 패배

5차전은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렸지만, 2위팀 어드밴티지를 적용해 삼성 홈경기처럼 치러졌다. 대회요강에 따라 삼성이 1루 덕아웃을 사용하면서 흰색 유니폼을 입고 후공격을 하게 됐다. 삼성그룹은 계열사 직원들을 1루 관중석에 대거 동원해 단체 응원을 하며 홈경기 분위기를 연출하려 애썼다. 요즘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LG로서는 잠실 안방을 내준 격이었지만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요즘 팬들이 줄임말로 지칭하는 일명 '검니폼(검정색 유니폼)'을 입었을 땐(3~4차전) 모두 이겼기 때문이다. 검니폼이 행운을 불러올 것이라 믿었다.

LG는 예상대로 김태원을 선발카드로 내세웠다. 삼성 선발은 김태한. 시즌 14승6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83을 기록한 2년생 좌완투수였다. 훗날 은퇴할 때까지 통틀어서도 1993년 성적이 커리어 하이였다.

1회초 시작부터 LG는 뭔가 불길한 예감과 마주해야 했다.

선두타자 송구홍이 3루수 쪽 내야안타로 출루할 때만 해도 '검니폼의 행운'이 찾아온 듯했다. 박준태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이때 3번타자 노찬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별명처럼 '검객 타법'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다. 하지만 타구가 1루수 김성래 미트에 빨려들어가는 직선타. 선취점을 노리며 스타트를 끊은 2루주자 송구홍마저 귀루에 실패하면서 기선제압의 기회가 날아갔다.

2회초에는 1사 후 김동수가 좌전안타로 출루했지만 이병훈의 강한 땅볼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가면서 병살타가 되고 말았다.

결국 2회말 먼저 실점을 했다. 시즌 내내 팔꿈치 통증을 안고 던져오던 김태원이 피로감이 몰려왔는지 구위가 떨어지고 있었다. 이종두의 방망이가 이를 포착했다. 좌월 투런포가 터졌다. LG가 플레이오프에서 선취점을 내준 것은 이번 5차전이 처음이었다.

LG는 3회초 반격의 몸부림을 치면서 무사 만루 황금찬스를 잡았다. 여기서 송구홍의 밀어내기 사구(몸에 맞는 공), 박준태의 투수 쪽 스퀴즈번트로 2-2 동점을 만든 뒤 노찬엽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단숨에 3-2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3회말 삼성이 또 반격했다. 류중일의 안타와 도루로 무사 2루가 만들어졌다. 이어 강기웅의 중전 적시타가 터졌다. 3-3 동점.

그야말로 일진일퇴의 공방. 이닝이 교대될 때마다 밀물과 썰물처럼 전세가 교차됐다.

삼성 4번타자 양준혁 타석. 이광환 감독은 선발 김태원을 교체하는 결단을 내렸다. 구위가 눈에 띄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정신력으로 던지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불펜에서 몸을 풀던 이상훈을 호출했다.

등판하자마자 양준혁의 볼넷과 김성래의 희생번트가 이어졌다. 1사 2·3루.

타석에는 2회에 홈런을 때린 이종두가 들어섰다. 당연히 강공이 예상됐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3루수 쪽 기습 스퀴즈번트가 나왔다. 절묘한 코스의 내야안타가 됐고, 3루주자 강기웅이 홈을 밟으면서 3-4로 재역전이 되고 말았다.

하늘은 다시 LG를 향해 장난을 쳤다. 아니 약을 올리는 듯했다. 4회초 김동수와 이병훈의 연속 총알 타구가 3루수 직선타로 잡혔다. 5회초 2사 후에는 송구홍이 2루수 직선타로 물러났다. 불운의 연속이었다.

LG는 4회부터 구원등판한 삼성 잠수함 박충식을 좀처럼 뚫지 못했다. 박충식은 며칠 후 해태와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연장 15회까지 홀로 181구 완투를 펼치며 지금까지 회자되는 가을의 전설을 썼을 정도로 그해 구위가 절정이었다.

7회초 모처럼 LG에 기회가 왔다. 1사 후 대타로 나선 최훈재가 중전안타를 때렸다. 이종열의 3루수 쪽 기습번트 안타 때 3루수의 김용국의 1루 악송구가 겹치며 1사 2·3루의 황금찬스가 만들어졌다.

LG 트윈스 내야수 김선진. ⓒ스포츠서울

3루주자 최훈재를 빼고 대주자 김선진을 투입했다. 김선진은 이번 플레이오프 들어 대주자로 나간 3경기에서 모두 득점을 올린 행운의 사나이. LG 벤치는 또다시 머리에 득점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사달이 날 줄이야….

박종호의 1루수 쪽 느린 땅볼 때 3루주자 김선진이 스타트를 뒤늦게 하는 바람에 홈에서 아웃되고 만 것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볼카운트 1B-1S에서 삼성 3루수 김용국이 “견제온다”고 고함을 치면서 빈 글러브로 3루에 태그를 하는 페이크동작을 취하자 이에 속고 말았다.

김선진이 놀란 나머지 황급히 귀루하는 찰나, 박종호가 타격을 했다. 빗맞은 타구가 1루수 쪽으로 향하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김선진이 다시 방향을 바꿔 홈으로 달렸지만, 1루수 김성래의 송구를 받은 포수 김성현에게 태그아웃. 스타트만 정상적이었다면 동점 득점이 만들어질 상황이었다. 박종호의 재치 있는 컨택 플레이가 무위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대타 김영직의 볼넷으로 2사 만루가 됐지만, 송구홍이 유격수 앞 정면 땅볼로 물러나면서 허무하게 이닝이 종료됐다.

LG는 이상훈에 이어 7회말 2사 후 김용수를 투입하는 강수를 두며 뒤집기를 노렸다.

하지만 LG의 불운은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9회초 선두타자 김동수의 강한 타구가 3루수 김용국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경기에서만 5번째 직선타 아웃이었다.

이어 김선진의 3루수 땅볼과 이종열의 중견수 플라이로 결국 1점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3-4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삼성 우용득 감독은 승장 인터뷰에서 “지옥에 갔다 온 기분이다. 운도 따랐지만 어쨌든 힘든 경기였다”는 말부터 꺼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늘은 하늘도 우리를 외면했습니다. 잘 맞은 타구들이 여러 차례 라인드라이브로 삼성 야수들에게 잡히니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힘을 길러야겠습니다.”

LG 이광환 감독은 패장의 아픔을 곱씹으며 쓸쓸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LG 트윈스 이광환 감독. ⓒ스포츠서울

◆투혼의 '졌잘싸'?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왔다

LG는 잠실 라이벌 OB와 준플레오프 3차전 혈투를 펼친 뒤 플레이오프에서는 전자 라이벌 삼성과 5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렀다.

특히 플레이오프에서 2연패 후 2연승을 거두며 승부를 5차전까지 몰고가는 선전을 펼쳤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최종 5차전에서 직선타 아웃이 무려 5개나 나오는 불운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LG는 3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플레이오프 사상 최초로 2패 후 3연승의 기적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졌다. 그것도 전자업계 라이벌 삼성에 처음으로 가을야구에서 패한 터라 내상이 컸다.

1990년 삼성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지만, 다른 팀도 아닌 LG에 0승4패로 힘없이 물러나자 정동진 감독이 해임되는 사태까지 맞이하기도 했다.

당시 삼성과 럭키금성 그룹의 자존심 싸움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LG는 1993년 플레이오프 패배 이후 이광환 감독을 곧바로 교체하지는 않았다. 다만 11월부터 감독 빼고는 모든 게 바뀌는 거대한 후폭풍을 맞이하게 된다.

1993년 플레이오프 패배 후 이종도 수석코치가 팀을 떠났다. ⓒ스포츠서울

우선 이광환 감독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이종도 수석코치가 재계약에 실패하며 팀을 떠났다.

이종도는 MBC 청룡 시절이던 1982년 원년 개막전에서 끝내기 만루홈런을 날리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승리를 안긴 역사적 인물. 게다가 이광환 감독의 중앙고-고려대 직속 후배였다. 이 감독이 1992시즌을 앞두고 LG 지휘봉을 잡을 때 수석코치를 맡아 친정팀이나 다름없는 LG로 복귀했지만 2년 만에 옷을 벗었다.

5차전 8회초 3루주자 김선진이 상대 3루수 김용국의 페이크 플레이에 속아 홈에서 아웃된 부분이 뼈아팠다. 따지고 보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게 3루코치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지는 형태였다.

인품이 있고 외부의 스트레스를 혼자 짊어지는 외유내강형 스타일의 이종도 수석코치는 이렇게 LG와 작별을 하게 됐다. 이것이 MBC~LG로 이어진 마지막 인연이었다. 그 이후 다시는 LG로 돌아오지 못했다.

LG 트윈스 이광환 감독(가운데)과 MBC 청룡 원년 멤버에서 지도자로 변신한 김용달(왼쪽), 신언호 코치. ⓒ스포츠서울

여기에 프랜차이즈 스타에서 은퇴 후 곧바로 1군 타격코치를 맡아 온 이광은도 후반기 팀타격 하락의 책임을 지고 2군으로 물러나게 됐다.

이종도와 이광은을 대신해 최정우 주루코치와 김용달 타격코치가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왔다. 팬들에게 어필하는 지명도 면에서는 이종도와 이광은에 뒤졌지만 분위기 전환과 내실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김명성 투수코치가 새롭게 영입되면서 유종겸 투수코치의 위치도 어정쩡해졌다.

신사다운 풍모의 이광환 감독은 가을야구 이후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두 차례나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속이 문드러졌다. 그만큼 플레이오프 삼성전 패배는 뼈아픈 것이었다.

여기에 팀 전력의 핵심인 포수 김동수와 1993년 팀 내 유일한 3할 타자였던 내야수 송구홍이 플레이오프 직후 군입대를 하게 돼 선수단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LG는 더 큰 도약을 위해,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이 기회에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대대적인 방출의 삭풍이 불었다.

플레이오프 5차전 치명적인 홈 아웃을 당한 김선진도 당초 재계약 불가 선수로 분류됐다. 하지만 그해 겨울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살생부 명단에서 가까스로 살아났다. 더군다나 예비신부가 LG 프런트 여직원이었기에 LG로서도 예비신랑 김선진을 냉정하게 내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기사회생한 ‘개털’ 김선진이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연장 10회말 끝내기 홈런을 날리게 됐으니 이 무슨 운명의 조화인지…. 김선진의 별명이 ‘용털’로 바뀌었고, LG는 이 기세를 몰아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신바람을 일으킨다.)

LG의 선수단 개편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2월 초, 프로야구계에 초대형 충격파를 몰고오는 트레이드 소식을 발표한다.

‘미스터 LG’ 김상훈을 내보내고 해태에서 ‘해결사’ 한대화를 영입하는 블록버스터 트레이드였다.

[엘팬알백] ㉞편에서 계속

'미스터 LG'로 오랜 세월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김상훈(오른쪽)과 해태 '해결사' 한대화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둘은 1993년 12월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스포츠서울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