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이 집값 상승 원인 아냐”라면서…실수요자 울리는 국토부
‘오락가락’ 정책 혼선에 실수요자 피해 예상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정책 대출은 집값 상승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난 9월 대출 규제가 본격화할 무렵 정책 대출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당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놓은 답변이다. 디딤돌‧버팀목‧신생아 대출 등 정책 대출이 집값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아 규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 달 뒤 기조는 180도 달라졌다. 대출 규제로 주춤해진 은행권 대출과 다르게 정책 대출 규모는 계속 확대되자, 돌연 한도 축소 카드를 들고 나선 것이다. 실수요자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데도, 당국은 정책 대출 관련 보완책을 마련해 '조만간'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가계대출 폭증 주범' 된 정책 대출
24일 업계 반응을 종합하면, 당국의 정책 대출 손보기는 기정사실화했다. 전날 국토부는 참고자료를 통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도입 취지를 벗어나는 과도한 대출 관행이나 주택도시기금 건전성에 무리가 될 수 있는 대출을 자제하는 것은 최소한의 조치"라며 정책 대출 한도 축소 필요성을 밝혔다. 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게 골자로, 지역이나 대상자, 주택유형별로 세분화한 규제 보완책을 빠른 시일 내에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주택 구입을 위한 정책 대출으로는 크게 디딤돌 대출, 신생아 특례대출이 운영되고 있다. 정책명대로, 서민이 정책 대출을 디딤돌 삼아 내 집 마련을 하게 돕고, 출산 가정에는 특례를 부여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조건은 소득기준이다. 디딤돌은 부부 합산 소득 6000만원 이하(생애최초·2자녀 이상 가구 7000만원, 신혼부부 8500만원), 신생아 특례대출은 1억3000만원 이하이다. 시중은행 대비 낮은 금리와 더불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나 LTV 등 규제 문턱이 낮은 게 특징이다.
전제는 무주택자다. 유주택자는 애초에 정책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집값 한도도 명확하다. 디딤돌은 5억원(신혼부부 6억원), 신생아 특례대출은 9억원 이하 집을 계약할 때만 대출이 가능하다. 정책 대출이 실수요 중심이란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또 이 같은 가격 기준은 서울 아파트 평균 거래 가격(12억4854만원)보다 한참 낮기 때문에, 정책 대출이 최근 집값 상승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볼 순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는 국토부도 인정한 대목이다. 지난 9월9일 박상우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정책 대출이 늘어나긴 했지만, 정책 대출로 살 수 있는 집과 현재 인기 지역의 주택 가격대를 보면 집값 상승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라며 "정책 대출 금리를 조정할 순 있으나 약속된 대상을 줄이거나 정책 대출의 목표를 건드리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락가락 메시지에 실수요자 '날벼락'
그러나 최근 들어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정책 대출이 꼽히면서 기조가 뒤바뀌었다. 시중은행의 금리 인상과 유주택자 대출 중지 등 규제책으로 인해, 금융권 가계대출은 지난 9월 5조2000억원 늘어 전달 대비 증가폭이 절반으로 줄었다. 반면 정책 대출 규모는 지난 8월 3조9000억원 증가한 데 이어 9월에도 3조8000억원 늘었다. 전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정책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70%를 상회하고 있다.
여기에 정책 대출이 가계대출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금융권 가계대출의 DSR 적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은행권 신규 가계대출(187조원) 가운데 DSR을 적용받지 않은 정책 대출 등의 가계대출 규모는 118조원으로 63%를 차지했다.
다만 이를 알고서도 묵인했던 게 정부였다는 점에서, '뒷북 규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다. 업계 이야기를 종합하면, 국토부 내부적으로 정책 대출이 가계 대출의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됐으나, 주거 사다리 지원, 출산율 제고 등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규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 사이 실수요자의 불안감은 확산하고 있다. 이번처럼 별다른 예고 없이 정책 대출 한도 축소 카드가 발표될 경우, 잔금 마련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이미 계약한 집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정부 구상대로 LTV 비율을 10% 축소하고 소액 임차보증금 제도를 예외 없이 적용하도록 바뀌면, 디딤돌 대출 한도는 최대 1억원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국토부는 "충분한 안내 기간을 가지겠다"고 공언했다. 박상우 장관은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 규제와 관련해 "국민에게 혼선과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매우 송구하다"며 "현재 대출이 신청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 조치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고 추후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 시행할 때도 국민들의 혼선과 불편이 없도록 사전에 충분히 안내하고 유효기간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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