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이 여인으로 변신한 전설 속 마을, 이젠 휴양과 면세의 도시로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10. 3. 09:03
[종횡만리,성시인문(縱橫萬里-城市人文)] 중국 최남단의 하이난(海南) 섬, 싼야(三亞)시와 단저우(?州)시 (글 : 한재혁 전 주광저우 총영사)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리(萬里)'였다. 만리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중국의 약 700개에 달하는 도시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도시는 싼야(三亞)시이다. 겨울에도 따뜻한 아열대성 기후, 하얀 백사장과 야자수의 이국적 풍광으로 우리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싼야는 중국 국토 최남단의 섬, 하이난(海南)에서도 가장 남쪽의 바다와 맞닿은 위치로 인해 하늘과 바다의 끝이라는 뜻의 '톈야하이쟈오(天涯海角)'나 낭떠러지 언덕이라는 의미의 '야저우(崖州)'로 불린다.
또 다른 명칭으로는 사슴의 도시-'루청(鹿城)'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지역의 전설에 연관되는 것이다. 싼야에는 원주민으로 리족(黎族)이 많이 거주하는데, 리족에게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옛적 리족의 청년 궁수가 붉은 머리띠에 활을 들고 아흔아홉 개 산과 아흔아홉 개의 시내를 건너 사슴 한 마리를 쫓아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고, 결국 망망대해에 맞닿은 낭떠러지에 이르렀다. 사슴은 절벽가에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청년은 그 순간 사슴의 맑고 애처로운 눈빛에 감동하여 그만 활을 내려놓았고, 사슴은 아름다운 리족 아가씨로 변하였다. 둘은 서로 부부의 연을 맺고 그곳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장소가 '사슴이 뒤를 돌아보다'라는 뜻의 '루회이터우(鹿回頭)'로 불리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공원이 조성되고 사슴 농원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전설 속의 사슴은 하이난을 포함한 동남아 일대에 서식하며 중국어로는 '포루(坡鹿)'로 불리는 엘드 사슴으로 현재는 멸종위기종이다. 이 이야기는 중국어 성어인 첫눈에 반하다는 '이젠중칭(一見鐘情)'을 연상하게 하며, 광시 지역의 류싼제(劉三姐) 설화와 윈난의 아스마(阿詩瑪) 설화와 함께 중국 3대 소수민족 설화로 꼽힌다.
싼야에는 일찍이 당나라 승려가 표류하였다가 불교 경전을 전하기도 하였고, 당송 시기에는 7명의 재상과 관료들이 귀양을 오기도 했다. 귀양을 말하면 하이난섬 북서쪽 단저우(儋州)로 유배되었던 소동파(蘇東坡)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동파거사(東坡居士)로 불리는 소식(蘇軾)은 오대시안(烏臺詩案) 사건으로 58세의 고령에 편벽한 광둥 후이저우(惠州)로 귀양을 떠나게 되었고, 2년 8개월간 곤궁한 유배 생활 중 부인을 여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특유의 호방함과 유쾌함으로 왕성한 저작 활동을 하며 유유자적 지냈다. 그러던 중 소식을 모함한 어렸을 때의 친구 장돈(章惇)이 그가 지었다는 '봄바람 속에 낮잠을 즐기며, 뒷마당 쪽 사원의 종소리를 듣는다'는 내용의 글귀를 보고, 더 고생스러운 곳으로 귀양을 보내기로 결심했다고 린위탕(林語堂)은 전한다. 그곳은 척박한 하이난 중에서도 나름의 인기 유배지였던 싼야도 아닌, 아무도 유배된 적이 없던 단저우였다.
소식의 동생 소철(蘇轍)도 귀양 보내졌는데, 자(字)가 자유(子由)였던 동생은 유(由)자와 비슷한 한자 지명을 가진 광둥의 레이저우(雷州)로, 자가 자첨(子瞻)인 소식은 첨(瞻)자와 한자가 유사한 하이난의 단저우(儋州)로 간 것이다.
61세의 소식은 그때 현지 상황을 "먹을 고기도 없고(食無肉), 병이 나면 약도 없으며(病無藥), 거처할 방도 없고(居無室), 만날 친구도 없으며(出無友), 겨울엔 땔 석탄도 없고(冬無炭), 여름엔 마실 우물물도 없다(夏無泉)"고 적었다. 소식은 뭍에서 검은콩을 가져다 약으로 빚어 주민들의 학질을 치료하기도 하고, 우물을 파서 사람들을 돕기도 했다. 또한, 학문을 지역사회에 보급하게 되는데 소식이 단저우를 떠난 지 3년 후부터 진사 급제자가 나오기 시작하여, 청나라 시기 과거가 폐지되기까지 근 800년간 하이난에서 767명의 거인(擧人)과 97명의 진사(進士)가 배출되었으며 '진사 1등도, 꼴찌도 단저우 사람(進士首儋尾亦儋)'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대다수가 단저우 출신이었다고 한다.
소식의 단저우 귀양은 '소식에게는 불행, 하이난에게는 행운(東坡不幸海南幸)'이었다는 말로 회자된다. 지금의 단저우는 시로 승격되어 GDP 규모로는 싼야시(三亞市)를 능가하는 인구 100만의 도시로 변모하였으며, 동파서원(東坡書院) 등 소식의 발자취가 유적으로 복원되어 전해진다.
싼야는 일찍이 관광업 개발과 리조트 건설 붐에 따라 해안을 따라 곳곳에 최고급 호텔과 레저 시설이 즐비하며, 호화 요트 계류장, 쇼핑몰과 면세점들이 건설되어 있다. 일제 침략 시기 현지인들에 대한 만인갱(萬人坑), 조선인에 대한 천인갱(千人坑)이라는 만행으로 인한 아픈 역사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이난성은 인구 1천만 명 규모로, 1988년 광둥성으로부터 단독의 성(省)으로 분리되었다. 성도(省都)는 북쪽에 위치한 제1의 도시 하이커우(海口)이다. 하이난은 코코넛과 코코넛 음료의 오래된 생산지로 유명하며, 최근 들어 싱롱(興隆) 브랜드 커피 산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원창(文昌)은 우주발사체 발사기지로, 보아오(博鰲)는 국제포럼 개최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정부는 싼야를 비롯한 하이난성 전체를 관광 레저와 함께 면세사업 지역으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2011년 중국 재정부는 하이난 이도(離島) 면세 쇼핑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2020년에는 개인당 1년간 구매 한도를 10만 위안(약 한화 1,880만 원)으로 상향하였다. 구매 횟수에 제한이 없으며 해당 품목도 전자제품 등 38종에서 45종으로 확대하였다. 내국인들도 하이난에 관광 왔다가 곳곳의 대형 면세 쇼핑몰에서 각종 주류와 화장품 외에 일반 생활용품, 전자제품, 가구 등을 구매해 택배로 배송받기도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리(萬里)'였다. 만리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중국의 약 700개에 달하는 도시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도시는 싼야(三亞)시이다. 겨울에도 따뜻한 아열대성 기후, 하얀 백사장과 야자수의 이국적 풍광으로 우리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싼야는 중국 국토 최남단의 섬, 하이난(海南)에서도 가장 남쪽의 바다와 맞닿은 위치로 인해 하늘과 바다의 끝이라는 뜻의 '톈야하이쟈오(天涯海角)'나 낭떠러지 언덕이라는 의미의 '야저우(崖州)'로 불린다.
또 다른 명칭으로는 사슴의 도시-'루청(鹿城)'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지역의 전설에 연관되는 것이다. 싼야에는 원주민으로 리족(黎族)이 많이 거주하는데, 리족에게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옛적 리족의 청년 궁수가 붉은 머리띠에 활을 들고 아흔아홉 개 산과 아흔아홉 개의 시내를 건너 사슴 한 마리를 쫓아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고, 결국 망망대해에 맞닿은 낭떠러지에 이르렀다. 사슴은 절벽가에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청년은 그 순간 사슴의 맑고 애처로운 눈빛에 감동하여 그만 활을 내려놓았고, 사슴은 아름다운 리족 아가씨로 변하였다. 둘은 서로 부부의 연을 맺고 그곳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장소가 '사슴이 뒤를 돌아보다'라는 뜻의 '루회이터우(鹿回頭)'로 불리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공원이 조성되고 사슴 농원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전설 속의 사슴은 하이난을 포함한 동남아 일대에 서식하며 중국어로는 '포루(坡鹿)'로 불리는 엘드 사슴으로 현재는 멸종위기종이다. 이 이야기는 중국어 성어인 첫눈에 반하다는 '이젠중칭(一見鐘情)'을 연상하게 하며, 광시 지역의 류싼제(劉三姐) 설화와 윈난의 아스마(阿詩瑪) 설화와 함께 중국 3대 소수민족 설화로 꼽힌다.
싼야에는 일찍이 당나라 승려가 표류하였다가 불교 경전을 전하기도 하였고, 당송 시기에는 7명의 재상과 관료들이 귀양을 오기도 했다. 귀양을 말하면 하이난섬 북서쪽 단저우(儋州)로 유배되었던 소동파(蘇東坡)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동파거사(東坡居士)로 불리는 소식(蘇軾)은 오대시안(烏臺詩案) 사건으로 58세의 고령에 편벽한 광둥 후이저우(惠州)로 귀양을 떠나게 되었고, 2년 8개월간 곤궁한 유배 생활 중 부인을 여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특유의 호방함과 유쾌함으로 왕성한 저작 활동을 하며 유유자적 지냈다. 그러던 중 소식을 모함한 어렸을 때의 친구 장돈(章惇)이 그가 지었다는 '봄바람 속에 낮잠을 즐기며, 뒷마당 쪽 사원의 종소리를 듣는다'는 내용의 글귀를 보고, 더 고생스러운 곳으로 귀양을 보내기로 결심했다고 린위탕(林語堂)은 전한다. 그곳은 척박한 하이난 중에서도 나름의 인기 유배지였던 싼야도 아닌, 아무도 유배된 적이 없던 단저우였다.
소식의 동생 소철(蘇轍)도 귀양 보내졌는데, 자(字)가 자유(子由)였던 동생은 유(由)자와 비슷한 한자 지명을 가진 광둥의 레이저우(雷州)로, 자가 자첨(子瞻)인 소식은 첨(瞻)자와 한자가 유사한 하이난의 단저우(儋州)로 간 것이다.
61세의 소식은 그때 현지 상황을 "먹을 고기도 없고(食無肉), 병이 나면 약도 없으며(病無藥), 거처할 방도 없고(居無室), 만날 친구도 없으며(出無友), 겨울엔 땔 석탄도 없고(冬無炭), 여름엔 마실 우물물도 없다(夏無泉)"고 적었다. 소식은 뭍에서 검은콩을 가져다 약으로 빚어 주민들의 학질을 치료하기도 하고, 우물을 파서 사람들을 돕기도 했다. 또한, 학문을 지역사회에 보급하게 되는데 소식이 단저우를 떠난 지 3년 후부터 진사 급제자가 나오기 시작하여, 청나라 시기 과거가 폐지되기까지 근 800년간 하이난에서 767명의 거인(擧人)과 97명의 진사(進士)가 배출되었으며 '진사 1등도, 꼴찌도 단저우 사람(進士首儋尾亦儋)'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대다수가 단저우 출신이었다고 한다.
소식의 단저우 귀양은 '소식에게는 불행, 하이난에게는 행운(東坡不幸海南幸)'이었다는 말로 회자된다. 지금의 단저우는 시로 승격되어 GDP 규모로는 싼야시(三亞市)를 능가하는 인구 100만의 도시로 변모하였으며, 동파서원(東坡書院) 등 소식의 발자취가 유적으로 복원되어 전해진다.
싼야는 일찍이 관광업 개발과 리조트 건설 붐에 따라 해안을 따라 곳곳에 최고급 호텔과 레저 시설이 즐비하며, 호화 요트 계류장, 쇼핑몰과 면세점들이 건설되어 있다. 일제 침략 시기 현지인들에 대한 만인갱(萬人坑), 조선인에 대한 천인갱(千人坑)이라는 만행으로 인한 아픈 역사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이난성은 인구 1천만 명 규모로, 1988년 광둥성으로부터 단독의 성(省)으로 분리되었다. 성도(省都)는 북쪽에 위치한 제1의 도시 하이커우(海口)이다. 하이난은 코코넛과 코코넛 음료의 오래된 생산지로 유명하며, 최근 들어 싱롱(興隆) 브랜드 커피 산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원창(文昌)은 우주발사체 발사기지로, 보아오(博鰲)는 국제포럼 개최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정부는 싼야를 비롯한 하이난성 전체를 관광 레저와 함께 면세사업 지역으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2011년 중국 재정부는 하이난 이도(離島) 면세 쇼핑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2020년에는 개인당 1년간 구매 한도를 10만 위안(약 한화 1,880만 원)으로 상향하였다. 구매 횟수에 제한이 없으며 해당 품목도 전자제품 등 38종에서 45종으로 확대하였다. 내국인들도 하이난에 관광 왔다가 곳곳의 대형 면세 쇼핑몰에서 각종 주류와 화장품 외에 일반 생활용품, 전자제품, 가구 등을 구매해 택배로 배송받기도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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