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가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론스타 사태 이후 잊힌 듯했던 주홍글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제는 해외자본을 넘어 토종 사모펀드까지 손가락질의 대상이다. 그러나 지나친 감정은 이성을 흐리게 한다. 맹목적인 비난이 난무하면서 사모펀드 본연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졌다. 사모펀드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따져본다. <편집자 주>

2005년 설립된 MBK파트너스는 20년 만에 국내 대표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넘어 동북아 최대 규모로 도약했다. MBK가 급속도로 성장한 배경에는 결국 성공적인 투자금 회수가 있다. 다양한 기업가치 제고 전략으로 기업을 키운 후 투자금 대비 높은 가격에 매각하면서 출자자(LP)들에 높은 수익을 안겨줬다.
이 가운데는 대기업 사업부 수준이었던 기업을 인수해 글로벌 톱3로 키워내고, 해외 보험사를 국내 금융그룹에 넘기며 알짜 자회사로 만든 사례도 있다. 특히 제조업 기술을 지키고 자본유출을 막는 등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에도 기여하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두산공작기계, 글로벌 톱3로 도약
2016년 MBK는 1조1800억원에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사업부를 인수해 '두산공작기계'를 출범시켰다. 공작기계는 크게 절삭가공과 성형가공 부분으로 나뉘며 자동차, 항공, 정보기술(IT), 에너지 등 다양한 수요산업의 기반이 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두산공작기계는 MBK가 주인으로 있는 동안 북미 지역 딜러망 구축 등 해외 판매채널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유럽과 중국 시장 개척에도 성공해 글로벌 6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2017년까지만 해도 두산공작기계의 매출은 1조4493억원이었지만 2018년 1조778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1938억원에서 2639억원으로 높아졌다.
매각을 타진하던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19와 미중 무역갈등 등의 악재로 2020년 매출이 1조2211억원으로 떨어졌지만, 2021년 체질개선에 성공하면서 매출은 1조9133억원으로 올랐다. MBK는 실적회복세를 보이던 두산공작기계를 DN오토모비트에 2조40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특히 두산공작기계의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의 설계 및 제조기술'이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된 가운데 회사를 국내 기업에 매각하면서 국가 핵심기술을 지키는 한편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
DN오토모티브로 주인이 바뀐 두산공작기계는 DN솔루션즈로 사명을 바꾸고 2023년과 지난해 연속으로 매출 2조원을 넘겼다. MBK가 해외 판매채널을 확장한 효과가 이어진 덕분이다. DN솔루션즈는 현재 상장을 앞두고 있으며, 공모가 최상단 기준 기업가치는 5조6634억원이다.
신한금융 알짜 된 ING생명
현재 신한금융지주에 속한 ING생명도 있다. 2013년 MBK는 네덜란드 ING그룹으로부터 ING생명을 1조8400억원에 인수했다. MBK는 ING생명을 사들이면서 ING그룹으로부터 ING생명 회사명을 5년간 사용할 수 있도록 계약했다.
MBK가 ING생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은 사모펀드의 보험사 인수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고객 신뢰와 건전성이 중요한 보험사를 사모펀드가 사들이는 것 자체가 독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고배당을 유지하면서 양호한 지급여력비율을 지켰고, 보험 업계에 '저해지·환급형'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이는 2014년 ING생명 신임 대표로 선임된 정문국 사장의 역할이 컸다. 정 사장은 2015년 저해지환급형 종신보험 '용감한 오렌지 종신보험'을 출시했다.
출시 이후 이 상품은 생명보험협회 신상품심의위원회에서 3개월간의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했으며 금융감독원의 '2015년 우수 금융신상품 최우수상', 금융소비자연맹의 '2016년 금융상품서비스 소비자품질인증'을 획득했다.
저해지·환급형 상품은 해지환급금이 적은 대신 동일한 보장을 받을 수 있어 보험료 부담을 최대 25%까지 줄일 수 있다. ING생명의 '용감한 오렌지 종신보험상품'은 1년 만에 6만2000여건의 판매량을 달성하며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2017년에는 사상 최대 순이익을 내며 코스피시장에도 상장됐다.
ING생명은 2018년 오렌지라이프로 사명을 바꿨다. 당시 신한금융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었다. 신한금융 측은 보장성보험 중심의 신한생명과 변액보험·종신보험에 강했던 ING생명이 합쳐질 경우 생보사 업계에서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MBK가 해외 생보사를 인수해 국내 금융그룹에 매각한 케이스로 눈길을 끌었다. 국부를 유출시키지 않음과 동시에 국내 PE 업계의 엑시트 신화를 쓴 일석이조의 성과 덕이었다. 신한금융으로서도 ING생명 인수는 비은행 부문 강화와 함께 계열사 간 시너지 극대화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신한금융은 2021년 오렌지라이프를 통합해 신한라이프생명을 출범시킨 뒤 2022년 순이익 4494억원, 2023년 4724억원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해외 기업 성공 사례도…기업가지 제고 전략 '묘수'
해외 기업 성공 사례도 있다. MBK는 2015~2018년 세 차례에 걸쳐 중국 물류기업인 에이펙스로지스틱스에 투자해 지분 62%를 확보했다. MBK는 에이펙스로지스틱스의 기업가치 제고 전략으로 애드온을 이용했다. 애드온은 동종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이다.
MBK는 에이펙스로지스틱스를 매각하기 전까지 6년간 꾸준히 애드온 전략을 펴며 신규 비즈니스 거점 확보에 집중했다. 화물 운송 물류 및 솔루션 등 5개 기업을 인수해 에이펙스로지스틱스와의 시너지 및 매출 증대 효과를 일으켰으며, 동남아 및 미국·유럽에 8개 이상의 지사를 설립해 영역을 확장했다.
MBK는 2021년 글로벌 운송물류 기업 퀴네앤드나겔그룹에 에이펙스로지스틱스를 매각했다. 총거래 규모는 1조6000억원대로 알려졌다. 내부수익률(IRR) 37%를 기록하며 MBK 입장에서는 중국 현지의 우수한 트랙레코드를 쌓았고, 출자자들은 높은 수익률을 챙겼다.
MBK가 엑시트로 과도한 보수를 챙긴다는 인식도 편향된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는 국민연금의 출자로 투자한 6곳을 엑시트해 투자금 대비 2배로 돌려줬다. 국민연금 고갈이 화두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MBK가 높은 수익률로 투자금을 돌려주면서 국민 노후자금 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MBK가 최근 국민들의 정서와 맞지 않는 전략을 사용하면서 뭇매를 맞고 있지만 이는 글로벌 톱티어 IB도 쓰는 전략"이라며 "MBK가 급진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우리나라 사모펀드 시장이 아직 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유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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