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에 <심판 은퇴에 환호? 앙헬 에르난데스가 누구길래>라는 글을 썼다. 악명 높은 에르난데스 심판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특정 심판을 다룬 글은 처음이었다.
에르난데스는 떠났지만, 여전히 메이저리그엔 또 다른 에르난데스들이 남아있다. 올해도 경기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판정들이 나온다. 특히 승부처에서 주심의 오판으로 경기가 얼룩지면, 이긴 팀과 진 팀 모두 찝찝함이 남는다.

KBO리그가 ABS 시스템을 도입한 반면,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사람의 눈'에 의존한다. 이해관계가 깊게 얽혀있기 때문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만 무분별한 판정들로 피로감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기술의 발전을 잘 활용하는 곳이 메이저리그인데, 경기 판정은 유독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제2의 앙헬
판정 논란은 시즌 초반부터 불거졌다. 4월19일 피츠버그와 클리블랜드의 경기를 주관한 크리스 콘로이 주심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볼판정을 집계하는 기관에 따르면 그 경기에서 콘로이 주심은 '24번의 오심'을 범했다. '한눈을 팔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메이저리그는 주심들의 판정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매 경기 제공되는 '스코어카드'는 스트라이크 존을 기준으로 판정의 정확성, 또 치명적인 오심 등을 알 수 있다. 이 날 콘로이 주심은 스트라이크 판정과 볼 판정의 정확성이 모두 평균보다 떨어졌다.

SNS도 뜨거웠다. 주심 판정을 관리, 감시하는 <Umpire Auditor> 계정에서는 "4월19일 해당 주간에만 잘못된 볼판정이 '1,014회'가 나왔다"고 전했다.
이 게시물을 본 팬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다. 스포츠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있는데, 왜 사무국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에 관한 비판이 많았다. "100% 정확성이 어렵다면, 100%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의견은 아래였다.
"앙헬 에르난데스, CB 버크너, 그리고 조 웨스트가 자랑스러워 할 것(Angel Hernandez, CB Buckner, and Joe West would be proud)"
앙헬이 어떤 심판인지는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웨스트는 1976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43년간 메이저리그 심판직을 수행했다.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에 해당하는 5,460경기를 출장했다. 심판으로 기여한 업적만 보면 모두의 존중을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웨스트의 평판이다. 웨스트는 심판 권위를 스스로 지키려고 했다. 이에 감독, 선수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판정에 의문을 제기하면, 심판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이미지가 나빴다. 매체에서 진행하는 최악의 심판 투표에서도 항상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심판 역사에 족적을 세웠지만 명예의 전당 입성이 좌절된 건 웨스트가 환영받지 못한 사람임을 알려준다.
버크너는 셋 중 유일한 현역이다. 1996년부터 메이저리그 심판을 맡고 있는 베테랑이다. 그리고 웨스트와 앙헬이 없는 현재, 감독과 선수들에게 가장 요주의 심판이다.
버크너가 주심을 보면 경기가 어수선해진다. 볼판정이 경기 내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투수, 타자 할 것 없이 혼란에 빠진다.
버크너 역시 웨스트와 마찬가지로 이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세인트루이스 올리버 마몰 감독이 "그는 품격이 없다(He has zero class)"고 공개 비난했다. 익명의 선수는 "앙헬과 웨스트를 합친 인물이 버크너"라고 했다.
2025 심판 볼판정 정확률
96.48% - 에드윈 히메네스
95.92% - 데릭 토마스
95.68% - 앨런 포터
92.69% - CB 버크너
92.40% - 앤디 플레처
90.99% - 롭 드레이크
올해 버크너는 볼판정 정확률이 크게 떨어지는 주심 중 한 명이다. 지난해도 볼판정 정확률은 92.16%에 그쳤다. 래리 밴오버(92.11%)만이 버크너보다 수치가 떨어졌다. 2년 전 볼판정 정확률도 93.46%로, 10경기 이상 주관한 심판 중 두 번째로 안 좋았다. 그 해 버크너에게 미치지 못했던 유일한 주심이 바로 앙헬 에르난데스였다(92.04%).
오심이 없다면 그의 심판 인생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각변동
이번 달 심판계는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다. 2016년부터 마이너리그 심판을 맡았던 진 파월(Jen Pawol)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여성 심판이었다.

파월의 인생은 스포츠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면서 아버지와 관계가 유독 돈독했다. 부녀지간의 공감대는 스포츠였고, 실제로 파월은 고교 시절 소프트볼과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포수를 봤던 소프트볼은 대학 장학금을 받으면서, 2001년에는 국가대표팀까지 승선했다. 소프트볼에선 성공적인 커리어를 장식한 선수였다.
비인기 종목은 특성상 안정된 생활이 힘들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또 다른 직업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파월도 미술 교사를 병행했다. 이중 생활을 하면서도 스포츠를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갈증이 더 심해졌다"고 회고했다.
파월은 힘든 환경에서도 스포츠를 탐구하고 싶어했다. 그 열정을 눈치챈 소프트볼 팀 동료가 파월에게 심판을 제안했다. 파월은 2015년 1월 심판 캠프에 참가하면서 또 다른 길에 도전했다. 그 곳에서 테드 바렛의 눈에 띄었다. 전직 메이저리그 심판이자, 심판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바렛은 파월이 심판으로서의 능력을 고루 갖췄다고 생각했다.
파월은 바렛의 안목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메이저리그 심판 아카데미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연수원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둔 파월은 마이너리그 경기에 배정됐다.
여성 심판이 마이너리그를 누빈 적은 있었다. 1988년 팜 포스테마는 트리플A 경기에 이어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경기도 이끌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정식 경기를 주도한 여성 심판은 나오지 않았다. 참고로, NBA는 28년 전에 첫 여성 심판을 배출했다. NFL도 2015년에 여성 심판을 기용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여성 심판의 벽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파월은 지난 애틀랜타와 마이애미 시리즈 심판조에 합류했다. 마이너리그에서 1,200경기 넘게 경력을 쌓은 뒤 이룬 업적이었다.
심판들을 향한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 파월의 등장은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디애슬레틱> 브리타니 지롤리는 "여성 심판은 야구계 마지막 장벽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야구에는 여성 심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심판이 필요하다(A female umpire was one of baseball’s final barriers. But the sport didn’t just need a woman; it needed the right one)"고 총평했다.
경력만을 앞세워 안일함에 빠진 심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글이었다.
ABS
볼판정 불만을 없애는 해결책은 나와있다. ABS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ABS 스트라이크존은 홈플레이트 좌우 17인치 넓이, 지면으로부터 신장의 27%에서 53.5%까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정해진 존에 들어오면 스트라이크, 벗어나면 볼이다. 간단하다.

메이저리그도 ABS 시스템을 외면하진 않는다. 2021년부터 마이너리그에서 시험해보고 있다. 마이너리그 최고 레벨인 트리플A도 4년째 ABS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트리플A에서 ABS 시스템은 제한 적용됐다. 작년 중반까지 한 주에 3경기는 전면 판정, 다른 3경기는 부분 판정이었다. 부분 판정은 메이저리그 비디오 판독처럼 챌린지 제도다. 볼판정에 어필한 경우만 확인이 가능하다. 그에 따라 판정이 유지되거나 번복된다.
이 두 가지 체제를 운영한 결과, 부분 판정의 선호도가 절대적으로 높았다. 트리플A 선수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챌린지를 통한 부분 판정이 61% 지지를 받았다. 전면 판정은 11%, 나머지 28%는 사람이 볼판정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반응은 트리플A 관중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후 메이저리그는 ABS 시스템을 하되, 챌린지를 바탕으로 한 부분 판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올해 스프링캠프에서도 팀당 두 번의 챌린지 권한을 부여했다. 성공하면 횟수가 차감되지 않는 식이었다.
스프링캠프에서 ABS는 큰 화제였다. 경기 당 평균 4.1번의 챌린지, 판정을 번복한 확률은 52.2%였다. 지난해 마이너리그에서 번복된 확률 50.6%보다 살짝 높았다. 특히 직접 공을 받은 포수들의 챌린지 성공률이 56%를 기록했다(More specifically, catchers led the way with a 56 percent overturn rate). 칼 랄리는 9번의 챌린지를 모두 성공시켰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올해 올스타전에도 ABS 시스템을 선보였다. 선수들과 현장 관계자뿐만 아니라 팬들과의 거리감도 좁히겠다는 의도였다. 다행히 여론은 굉장히 좋았다.
메이저리그가 내년 시즌 당장 ABS 시스템을 운영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부분적이라곤 하지만, 결국 전면 판정으로 가는 과정이다. ABS가 볼판정을 완전히 지배할 경우, 서두에 언급했던 이해관계 때문에 충돌이 불가피하다. 포수 프레이밍이 무용지물이 되면 몸값이 하락하는 선수측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내년 시즌이 끝나면 노사협약(CBA)을 갱신해야 되는데, 민감한 사안을 무작정 더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시대의 요구를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일부 몰지각한 심판들 때문에 이 요구는 더 강력해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오심 논란에, 반대 이유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