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출판 막힌 한강 ‘소년이 온다’…5·18이 천안문 연상시켜서?
노벨문학상 받았던 모옌의 묘한 표정
‘말 대신 글로 하겠다’ 필명처럼 침묵 중
2024년 10월10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막 저녁을 먹고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 나가던 중이었다. 주머니 속에 있던 스마트폰 진동음이 여러 차례 울렸다. 중국 내 언론사에서 타전해온 ‘긴급 속보’가 줄줄이 올라오는 소리였다. 이게 웬일인가. 한국 작가 한강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가짜 뉴스’라고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몇 차례 더 요란한 문자 알림음이 들려왔다. 퇴근길에 ‘한잔하던 중’ 나처럼 스마트폰으로 이 놀라운 뉴스를 접한 한국 친구가 제일 먼저 문자를 보냈다. 다른 부연 설명도 없이 딱 일곱 글자였다. “한강 노벨문학상.” 나도 바로 답장을 보냈다. “중국 뉴스 속보 보고 알았음.” 그리고 다시 한 줄 첨언했다. “난리 났다.” 친구도 이어서 바로 두 글자 답장을 보내왔다. “멋짐.”
한강 작가 책 추천해달라는 중국 친구들
톈진과 상하이에 사는 중국 친구들의 문자도 도착했다. “너 소식 들었어? 너희 나라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래! 그 작가 책 읽어봤어? 암튼 대단하다!” 둘 다 ‘최고’를 뜻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친한 중국인 지인들이 모여 있는 단체채팅방에서도 난리가 났다. 한국 작가, 그것도 여성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했다. 누군들 예상했겠는가. 그중 한 명이 물어왔다. “한강 작가 책은 한 권도 읽어본 적 없는데 네가 추천해줄 수 있니? 꼭 읽어봤으면 하는 작품….”
며칠 뒤, 베이징 시내 서점 나들이를 갔다.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 베이징 서점가 분위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책은 현재 중국에서 총 6권이 번역, 출판돼 있다. ‘소년이 온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주요 저작들은 이미 예전부터 번역서로 출간된 상태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누적 판매 수 총 8만~9만 권 정도 팔린 것 외에 다른 책들은 판매가 저조한 상태였다.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이른바 ‘케이(K) 문화’라고 불리는 다양한 한국 문화가 인기를 끈 덕분에 중국에서 한국 문학 작품도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가는 추세지만 서점가에서는 여전히 변방의 비주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 문학 작품이 비치된 서가의 중심 자리에는 항상 영미권 작품이 압도적인 주류를 차지하고 그다음으로 일본 문학 작품이 주요 위치를 점하고 있다. 중국 내 주요 대형 서점에는 거의 예외 없이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따로 단독 서가를 이루고 있을 정도다. 그동안 중국 출판계와 서점가에서는 아시아권 문학으로는 일본 작가들의 책이 가장 ‘돈이 되는’ 작품으로 간주돼왔다.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한국 문화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국에서도 한국 문학 작품에 대한 관심과 독자층이 늘어났고 매년 꾸준히 번역출판물이 증가하고 있다. 2022년에는 총 24권의 한국 문학 작품이 중국에서 번역 출판됐고 2023년에는 41권으로 증가했다. 중국 대륙보다 출판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홍콩과 대만에서는 더 많은 작품이 번역 출간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출판시장에서 한국 문학 작품은 한 해 평균 총 10권 내외로 출판되던 소수 시장이었지만 해가 갈수록 그 양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 와중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중국 내 외국서적 번역·출판계와 서점가에 한국 문학 붐을 몰고 올 가능성이 커졌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발표된 뒤 베이징 주요 서점가에도 한강 작가의 책이 중앙 자리에 비치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애란, 최은영, 공지영 작가 등 이미 중국에 번역 출판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구석진 변방에서 중심으로 자리를 옮겨 빛을 보고 있다. 중국 내 주요 언론에서도 한강 작가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국제적 인지도를 높여가는 한국 문학에 대해 비중 있는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다. 한국 문학 작품이 중국에서 이렇게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것은 아마도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한강 작가의 책들이 진열돼 있는 베이징 서점가에서 이런저런 ‘국뽕이 차오름’을 느끼던 중,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강 작가의 주요 작품 중 유일하게 ‘소년이 온다’만 없었기 때문이다. ‘소년이 온다’는 한강 작가의 대표 작품 중 유일하게 중국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18년 중화권 최초로 대만에서 번역 출판됐지만 중국 대륙에서는 아직 출판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 판권은 이미 팔렸지만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항쟁과 학살에 대해 다룬 책이라 1989년 천안문(톈안먼)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정치적 이유’로 아직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년이 온다’ 중국에서 출판되지 못한 이유
수상 소식이 전해진 날, 중국인 지인이 “한강 작가의 작품 중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년이 온다’를 추천했다. 그리고 인터넷에 소개돼 있는 관련 내용을 복사해 보냈다. 얼마 뒤 다시 답장이 왔다. “이 책은 대륙에서 나오긴 힘들겠어. 그렇지? 옌롄커 같은 국내 유명 작가 책들도 금서가 됐는데 노벨상 받은 외국 작가 책이라고 허락하겠어? 좀 비싸긴 해도 대만에서 나온 걸 보든지 영문판을 사서 봐야겠어. 근데 대만에서 나온 책은 삭제 안 당하고 제대로 번역됐겠지?”
한강이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 중국 작가 모옌은 2012년 중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중국인으로서는 두 번째 노벨상 수상이었다. 2010년 인권운동가 류샤오보가 중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당시 중국 정부와 언론에서는 단 한마디의 축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류샤오보의 수상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 스웨덴과의 외교적 관계도 악화됐다. 2년 뒤 모옌이 아무도 예상치 못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모옌은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아주 묘한 표정을 지으며 어리둥절해했지만, 중국 정부는 반색하며 “전세계 각국 친구 여러분이 중국 문화를 이해하고 우수한 중국 문학의 매력을 느껴보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 ‘우수한 중국 문학의 매력’을 전세계에 소개하고 알린 모옌과 다른 많은 훌륭한 중국 작가들은 지금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애국주의자들은 ‘붉은 수수밭’ 쓴 모옌을 비난했다
모옌은 현재 중국에서 푸대접 아닌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는 중국작가협회 부주석까지 역임하고 공식 석상에서도 중국 정부나 체제에 대한 그 어떤 비판적 견해도 발표한 적이 없을 정도로 비교적 중국 정부에 순응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내 극우 애국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그를 공개적으로 ‘저격’하거나 심지어 고소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2021년 6월22일, 중국의 대표적인 관방매체인 광명일보에 중국작가협회 서기 우이친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며 쓴 글이 화제가 됐다. ‘백년 중국 문학의 홍색 유전자’(百年中国文学的红色基因)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지난 100년 동안 중국 사회주의 우월성과 혁명정신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한 훌륭한 ‘붉은 유전자’를 가진 작가와 문학작품 들을 소개하고 열거했다. 온갖 작가와 작품이 시대순으로 줄줄이 열거됐지만 모옌의 이름과 작품은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이 글이 발표된 뒤 중국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글과 관련한 ‘정치적’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추측과 말이 분분했다. 대부분은 모옌이 ‘축출당했다’고 해석했다.
이 글이 발표된 뒤 ‘유토피아’(乌有之乡), ‘홍가회’(红歌会)등 중국 내 극좌파 단체 및 인터넷 매체와 극렬 인터넷 애국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모옌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 잇따랐다. 그들은 모옌의 대표작 ‘붉은 수수밭’과 ‘풍유비둔’ 등의 작품이 중국의 어두운 면을 집중 부각하고 마오쩌둥 시기 중국 체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어떻게 해서든 중국을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서구인들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에’ 수상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2023년 초에는 애국주의자를 자칭하는 인터넷 인플루언서 ‘마오싱훠’(소셜미디어 계정 아이디 说真话的毛星火)가 모옌이 작품을 통해 “영웅 열사들을 모욕했다”며 법원에 그와 그의 작품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제출해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때는 지나치게 체제 순응적인 어용 작가라는 비판을 받았던 모옌이 지금은 ‘숭양미외’(崇洋媚外·외국과 외국인을 숭배하고 미화하는 행위), 심지어는 ‘반모반공’(反毛反共. 마오쩌둥과 공산당을 반대하는 행위) 작가라고 비난받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말 대신 글로 말하겠다’는 뜻으로 필명을 모옌(莫言·말하지 않다)으로 지었던 모옌은 지금 깊은 ‘침묵 중’이다.
떠나는 중국 작가들
모옌이 이런저런 치욕을 당하는 사이 한 무리의 작가들은 아예 중국을 떠나 미국과 타이, 일본 등 타국에서 새로운 ‘문학 영토’를 개척하고 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수많은 지식인과 작가, 예술가가 국외로 망명길에 올랐던 것처럼, 시진핑 체제가 시작된 뒤 수많은 문인이 다시 ‘자유를 찾아’ 중국을 떠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가족사를 다룬 ‘지주의 죽음’(地主的殇)과 ‘강 위의 모친’(江上的母亲) 등의 작품으로 중국 문단에 큰 충격을 줬던 예푸, 2002년 ‘청두여, 오늘 밤은 나를 잊어줘’(成都,今夜请将我遗忘)라는 작품을 발표해 일약 스타 작가가 됐던 무룽쉐춘 등과 같은 유명 작가들이 팬데믹을 전후해 모두 미국과 타이 등으로 망명했다. 이들은 최근 각종 국외 매체와 한 인터뷰 등을 통해 중국을 떠난 이유를 ‘자유를 찾기 위해’라고 말했다.
자신이 썼던 대부분의 작품이 중국 내에서 출판을 금지당했던 예푸의 경우 윈난성 다리에서 거의 은둔하다시피 살았음에도 갈수록 심해지는 당국의 감시와 통제를 도무지 ‘견뎌낼 재간이 없다’고 판단해 결국 타이 치앙마이로 떠났다. 치앙마이에 정착한 예푸는 지금 ‘자유롭게’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고 있다. 현재 치앙마이에는 예푸처럼 중국을 떠나온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가 모여 새로운 중국인 ‘디아스포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일본 도쿄에도 이와 비슷한 중국인 디아스포라 문화촌이 형성되고 있다. 2023년 한 해 동안에만 도쿄에는 4개의 중국 서점이 생겼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인 ‘단샹쿵젠’(单向空间)도 도쿄 긴자에 간판을 내걸고 일본 내 중국인들의 문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한때 상하이인들의 정신적 고향이라고 불렸던 지펑서원은 당국에 의해 강제 폐업을 당한 뒤 최근 미국 워싱턴에 새로운 터를 잡고 미국 내 화교들의 정신적 거처가 되고 있다.
“나는 말할 수 없지만, 작품은 말할 수 있다”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작가 하진은 가장 대표적인 성공한 망명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천안문 사건 소식을 접한 뒤 그가 썼던 작품 제목처럼 ‘자유로운 삶’을 찾아 ‘자유롭지 않은’ 중국으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로 결심하고 모국어 대신 영어로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처럼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위대한 작가와 문학작품이 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창작의 자유 대신 무한한 검열의 자유만 보장된 중국에서도 옌롄커나 위화 등과 같은 ‘위대한’ 작가와 작품은 나오고 있다. 수많은 작품이 금서로 지정된 옌롄커는 한 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작가 개인으로서의 나는 중국에서 국가와 민족 등을 비판하고 심판하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지만 내 작품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작품을 통해 이 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과연 중국에서 온전하게 출판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나도 중국 친구들에게 “멋짐”이라는 문자를 보내고 싶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북경만보 :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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