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잘 놀아" 공원 입구서 돌아서는 아프간 엄마

김태훈 2022. 11. 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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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놀이공원은 요즘 온통 어린이들와 그 아버지 등 성인 남자들뿐이다.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이 여성의 놀이공원 출입을 금지한 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여성의 놀이공원 입장 금지는 그 신호탄에 불과했다.

여성은 이용할 수 없는 날에 놀이공원에 가거나 공원 안에서 히잡을 벗는 등 '일탈'이 너무 많아 불가피하게 그런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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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여성 놀이공원 출입 금지' 후 현지 취재
탈레반 여성 차별 노골화… 1990년대로 회귀
아프간 여성 "국제사회, 이란 여성에만 관심"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놀이공원은 요즘 온통 어린이들와 그 아버지 등 성인 남자들뿐이다. 여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을 공원 입구까지 데려간 엄마는 남편과 아이들이 공원에 입장하는 것을 보고선 돌아서야 한다.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이 여성의 놀이공원 출입을 금지한 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올해 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놀이공원 모습. 당시만 해도 여성들의 공원 이용이 제한적으로 가능했으나 최근 탈레반은 여성들의 놀이공원 출입을 완전히 금지했다. 카불=AF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2021년 8월 재집권 당시만 해도 “여성의 권익을 보장하겠다”고 했던 탈레반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진 지 오래다.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고 취업도 하지 못하게 했던 1990년대 탈레반 1차 집권기 때로 점점 되돌아가고 있다.

여성의 놀이공원 입장 금지는 그 신호탄에 불과했다. 탈레반은 재집권 후 1주일을 둘로 나눠 남성과 여성이 따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최근 아예 여성은 놀이공원에 들어갈 수 없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탈레반 측은 “우리는 기회를 줬으나 여성들이 ‘샤리아’(이슬람 법률)를 지키지 않아서”라는 입장이다. 여성은 이용할 수 없는 날에 놀이공원에 가거나 공원 안에서 히잡을 벗는 등 ‘일탈’이 너무 많아 불가피하게 그런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다.

놀이공원에 이어 여성들은 수영장과 체육관에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으나 당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강경 진압으로 일관하는 중이다. 탈레반의 이른바 ‘도덕경찰’(morality police)은 “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시위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느냐”는 BBC의 질의에 “모든 나라에서 정부의 명령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체포된다”며 “일부 국가에서는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시위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라는 뜻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대원들이 지난 8월31일 미군 철수 1주년을 맞아 수도 카불 시내에서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경적을 울리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BBC가 카불에서 만난 소녀와 여성들은 “미래가 안 보인다“며 절망감을 토로했다. 한 10대 소녀는 “탈레반이 재집권하기 전에 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그나마 행운이었다”며 “하지만 나는 이제 대학들도 여성들에겐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것이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당장 그는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게 꿈이었는데, 최근 탈레반은 여학생들에겐 저널리즘 전공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한 여성은 BBC에 “우리가 잃은 모든 자유를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고 말해 탈레반 재집권 이전이 그립다는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화성을 탐험하고 있는데, 여기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말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묘사했다.
11월 초 독일 퀼른에서 시민들이 여란 여성들의 자유와 인권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똑같은 사안인데도 국제사회는 이란 여성만 지지할 뿐 아프간 여성에는 관심이 없다”고 토로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아프간 여성들은 국제사회에도 실망감을 드러냈다. 히잡 쓰기 강요에서 비롯한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연일 서방 언론의 주요 뉴스를 차지하고, 강대국 지도자들도 앞다퉈 이란 정권을 맹비난하는데, 정작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똑같은 상황엔 무관심하거나 침묵만 지킨다는 것이다. BBC가 만난 한 여성은 “세계가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며 “이란 여성들은 지지하지만, 아프간 여성들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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