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관광대국 태국. 물가 싸고 여행하기 좋은 곳인데 유독 눈에 띄는 게 있다. 우리와 달리 자동차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고 차량들은 좌측통행을 한다는 거다. 일반적으로 영국 식민지를 경험했던 나라들은 자동차 핸들이 오른쪽에 있지만 태국은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20세기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를 받았던 동남아에서도 독립을 유지한 나라였다. 유튜브 댓글로 “태국은 식민지가 된 적도 없는데 자동차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자동차가 좌측통행 하는 나라들 떠올려보면 영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이런 나라들이 떠오르는데 사실 전세계에 40개국 정도가 좌측통행을 할 정도로 많다고 한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은 게 일본 여행가서 조용한 도로에서 방심하다 역주행 겪어보면 역시 한국에서 운전할 때 우측통행하던 습관이 무섭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어쨌든 태국은 왜 자동차 좌측통행을 택했을까. 우리가 태국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을 때 공통적인 설명은 태국의 근대화 시기 영국의 절대적 영향이었다.
[조흥국 부산대 명예교수]
“태국이 비록 영국 식민지가 아니었지만 19세기 20세기 전반기 동안 영국으로부터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 쇠퇴 시기 동남아는 말 그대로 영국과 프랑스의 점령지가 돼 버렸고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프랑스가, 당시 버마라고 불리던 지금의 미얀마와 말레이시아 등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태국은 지정학적으로 이들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요충지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넓었던 영토 일부를 떼주는 굴욕을 감수하면서도 어쨌든 독립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태국 왕실은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일명 ‘대나무 외교’를 펼쳤다. 거센 바람에 휘어지더라도 부러지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강대국 사이에 낀 태국 외교의 키워드를 ‘균형’과 ‘편승’ 전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국익을 위해 힘 있는 자의 눈치를 잘 봤다는 것.
이런 유연함으로 태국은 식민지화를 피하면서 영국의 문화도 받아들였는데 대표적인 게 핸들이 오른쪽에 있는 자동차다.

[박경은 한국외국어대 태국학과 교수]
“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 중의 한 분이 이 쭐라롱껀대왕이라는 분이 계신데요. 바로 라마 5세신데요. 여러 유럽 나라 등을 여러 차례 순방을 하면서 선진 문물을 배워오기도 했고 유럽 나라들과 굉장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를 했습니다. 통치 당시에 영국으로부터 차량을 선물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것이 이제 시암(Siam, 태국의 옛 이름)의 최초의 자동차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애초 영국의 자동차 핸들이 오른쪽에 있게 된 이유로는 마차 문화를 물려받았다는 게 학계의 정설. 채찍질을 수월하게 하기위해 오른손잡이 마부들이 마차의 오른쪽에 자리잡았고 마주오는 마차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좌측통행을 한 게 자동차 운전까지 내려왔다는 거다.
그런데 태국엔 신기한 게 일본 차들이 그렇게 많다는 건데 일본의 영향은 없을까? 일본 역시 영국 못지않게 20세기 내내 태국에 영향을 끼친 나라지만 우측 핸들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한다.

[이재호 세계지역연구2센터 동남아대양주팀 선임연구원]
“일본이 태국에 들어와서 태국 산업화에 기여하고 자리 잡은 거는 꽤 나중 얘기예요. 산업화에 기여하고 자리 잡은 거는 본격적으로 하는 건 한 7~80년대 그렇기 때문에 애시당초 (우핸들) 제도화에 일본이 영향을 미쳤다라고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도요타 등 일본의 주요 자동차들은 태국 자동차시장의 90%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요즘은 중국산 전기차들이 많아져서 비중이 낮아지긴 했지만 일본도 우측 핸들이니까 여러모로 편리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태국은 ‘아시아의 디트로이트’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자동차 강국인데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자국의 여러 규제와 비용 상승을 피하기 위해 70~80년대 대대적인 해외 진출을 시작하면서 태국을 유력한 거점으로 선택해서 투자를 많이 했다. 이런 기조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변하지 않았는데 2011년엔 동일본 대지진도 있었지만 태국에선 대홍수가 3개월이나 계속됐었는데 당시 태국에 진출했던 일본 자동차기업들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
사실 자동차 좌측통행이나 우측통행은 식민지 경험 등의 그 나라들의 역사적인 이유들로 정해지긴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엔 식민지 과거 청산이나 경제적인 이유들 때문에 바뀐 나라들도 많다. 하지만 태국은 영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이재호 세계지역연구2센터 동남아대양주팀 선임연구원]
“태국 사람들이 유럽에서 친숙하게 생각하는 나라 중에 하나가 영국입니다. 영국에 유학도 많이 가고요. 태국이 영국에 대해서 반감 이런 게 별로 없습니다. 태국이 되게 유연한 편이라서요. 특별하게 서구 특정 국가랑 반감이나 갈등을 한 그런 사례가 별로 없습니다”

태국 정부가 10년전쯤 다른 아세안 회원국과의 편의성을 고려해 통행 방향을 바꾸려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계속 좌측통행이 유지되고 있다. 한편으론 태국 왕실에 대한 존경심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태국 국민들은 군부 쿠데타로 불안정했던 현대사 속에서도 독립을 지켜낸 왕실에 엄청난 존경심을 갖고 있고 2016년 국왕이 서거했을 때도 추모 분위기가 엄청났었다. 태국 왕실이 근대화 시기 정했던 자동차 우핸들 정책을 여전히 존중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