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부터 '맵시'까지... 눈을 의심케 하는 국산 자동차 이름

첫 번째 주인공은 국제 차량 제작 주식회사의 소형 지프 '시발'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최초의 국산차로 역사적 의미가 큰 모델인데요. 차명인 '시발'은 말 그대로 첫출발, 시작이라는 뜻으로 시발점 등에 쓰이는 한자어입니다. 욕으로 널리 쓰이게 된 그 말과 발음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왠지 들으면 웃음이 나지만, 국산차의 위대한 시작을 알리는 뜻깊은 이름인 것이죠.

전쟁 직후 버려진 미군 윌리스 지프의 차대와 파워트레인을 이용해 제작된 이 차는 초기에는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 한 대, 한 대를 겨우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차체는 드럼통을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펼치고, 폐차된 파워트레인을 가져다 조립했으니 당연히 품질은 좋을 리 없었겠죠. 고장이 잦았고 또 외판을 비롯한 많은 부분들이 수제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각 차량마다 외형이 조금씩 다른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1995년 8월 정식 출시됐지만 전쟁 직후 어수선했던 시장 분위기 때문에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하다가 얼마 뒤 개최된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 출품해 인지도를 얻었고 이후 대통령상까지 수상하면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자동차라는 물건 자체가 귀했던 시절 거의 유일한 국산차인 데다가 서울 시내에 관용차나 택시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기에 시대극에서 주로 등장하는 지프형 자동차가 이 시발이죠.

이후에는 외관형 모델 시발 세단, 픽업트럭, 미군 트럭의 차대와 이스즈의 디젤 엔진을 장착한 시발 디젤 버스 같은 '시발 시리즈'를 내놓았지만, '닛산'과의 제휴를 통해 세련된 스타일과 안정적인 품질, 합리적인 가격까지 갖춘 '새나라자동차'가 등장하며 주력 모델들이 판매 부진에 시달렸고, 경영 악화로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또한 슬프게도 1967년 '관광국가 진출을 위한 도시 미화 정책'의 일환으로 모두 폐기 처분되어 지금은 남아있는 오리지널 제품이 없는 상태인데요. '안전성'도 아니고 '환경문제'도 아닌 한 마디로 그냥 후져 보인다는 이유로 정부가 다 없앴다는 건데,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는 정말 어떤 시대를 살아오신 걸까요?

비록 생김새를 비슷하게 꾸며놓은 레플리카이긴 하지만, 서울에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용인의 '삼성화재 모빌리티 뮤지엄', 제주 '세계자동차 박물관'에 이 차가 전시 중이라고 하니 실물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두 번째로 소개할 모델은 시발 자동차를 역사 너머로 사라지게 한 새나라자동차의 소형 세단 '새나라'입니다. 회사 이름과 대표 모델의 차명이 동일한 특이한 케이스죠.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정부는 국가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 하에 '자동차공업보호육성법'을 공포했는데, 이는 외국산 자동차 및 부품의 수입을 제한하고 외국 회사가 국내에 직접 법인을 설립해 사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이었습니다.

다만 엔진을 비롯한 주요 부품을 생산하기 위한 물적, 기술적 노하우가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서 막아만 놓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겠죠?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라는 명목 하에 국내 업체와 합작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가능했고, 곧이어 부품을 들여와 반조립 형태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자국 기술력이 부족한 국가의 경우 이런 식으로 사업하기도 하죠.

베이징자동차와 합작한 '베이징-현대', 상하이 자동차와 합작한 '상하이-폭스바겐' 같은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인천 부평에 둥지를 튼 새나라자동차는 일본 닛산과의 제휴를 통해 소형 세단 '블루버드'를 조립 생산해 판매했고, 이 과정에서 새 이름인 '새나라'가 붙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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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공장'이라고 하니 짐작이 되시겠죠. 대우자동차, 지금 'GM 한국사업장'의 뿌리가 되는 그곳입니다. 한국 최초의 현대식 조립 공장에서 생산되어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이 가능했던 새나라는 미군 차량을 기반으로 한 투박한 지프차, 조악한 생김새의 트럭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서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생김새, 그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승차감까지 제공하면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생김새만큼이나 조악한 품질로 걸핏하면 고장이 났던 다른 차량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선녀였어요.

당연하게도 시발이 독점하고 있던 관용차, 택시 시장을 빠르게 대체했고 꽤 많은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예전 쌍용 픽업트럭 편에서 잠깐 언급했던 쌍용자동차의 전신인 '하동환자동차제작소'에서 이 차량을 기반으로 픽업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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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라가 인기를 끌자 서둘러 국내 자동차 회사들도 앞다퉈 세단형 모델들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을 기반으로 미군의 트럭차들을 불하받아 개조한 버스를 판매해 오며 성장한 '신진공업'은 이번에는 소형 지프의 차대에 새나라를 모방해 만든 세단 차체를 씌운 '신성호'를 출시했습니다. 55마력을 내는 1.3 가솔린 엔진에 나름 매끈한 디자인을 뽐냈지만, 새나라에 비해 불안정한 품질과 높은 가격으로 큰 인기를 끌진 못했죠.

다만 경쟁사인 새나라 자동차가 각종 비리 의혹에 휘말리면서 회사가 휘청이자 이 신진공업이 인수하게 됐고 이후 토요타와의 제휴를 통해 '퍼블리카', '크라운' 등의 승용차를 생산하며 규모를 키워가게 됩니다.

승승장구하던 신진자동차는 자동차 재벌 지위에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늘 평화와 행복만이 함께한 것은 아니었는데요.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무리한 사업 확장, 특히 믿음직한 파트너로 믿었던 토요타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일방적으로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주력 제품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결국 부평 공장 지분의 절반을 GM이 사들여 신진과의 합작사인 GM코리아가 세워졌는데요. 호주 홀덴의 중형 세단 '토라나'를 들여와 '시보레 1700'이라는 이름으로 조립 생산하게 되는데, 비포장이 대부분이었던 한국의 열악한 도로 사정, 특히 연비가 너무 나빠 실패했고 막대한 재고만이 쌓이게 됐습니다.

'새마을트럭'은 시보레 1700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차고를 높이고 엔진과 변속기를 활용해 만든 소형 픽업으로, 차명은 누가 봐도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지역사회 개발운동 '새마을운동'을 의식해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의 바람대로 짐수레나 경운기가 전부였던 농촌사회에 보급되어 다목적 트럭으로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심지어 정부가 이 새마을트럭을 지역 곳곳마다 한 대씩 무상 공급해 지역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죠.

최대 적재량 1톤, 1.7L 79마력의 가솔린 엔진을 얹어 힘은 충분했지만 아무리 트럭이라도 심히 군용차스러운 투박한 생김새, 세단에서도 지적받았던 가솔린 엔진의 나쁜 연비 등으로 이후 판매량은 신통치 않았다고 하네요.

한편 끝내 신진그룹이 무너져 내리면서 신진 측 지분을 '한국산업은행'이 매입, GM코리아는 1976년 '새한자동차'로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맵시'는 이 새한자동차에서 출시한 소형 세단으로 앞서 1977년 들여온 이스즈의 소형 세단 '제미니'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었습니다.

차명은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를 뜻하는 순우리말 '맵시'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사명인 새한도 '새로운 한국'을 의미하는 것이니 '새한 맵시'는 '새로운 한국의 아름다운 차'라는 정말 멋들어진 의미가 되네요.

73마력을 내는 1.5L 엔진을 주력으로 이후 신군부에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로 기아 산업이 승용차를 만들지 못하게 되자 브리사에 쓰이던 마쓰다의 1.3L 엔진도 추가로 장착했습니다.

다만 당시 현대 포니에 밀려 시장의 평가가 좋지 않았던 직전 제미니의 반응이 고스란히 이어져 이 맵시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후 새한자동차의 최대 주주가 된 대우그룹에 의해 1983년 '대우자동차'로 새롭게 출범한 이후에는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상품성을 보강한 '맵시-나'가 출시됩니다. '맵시가 난다'라는 뜻으로만 붙여진 이름인 줄 알았는데, 가, 나, 다에서 두 번째인 '나'가 붙은 것이라고 합니다. 즉, 흔히 쓰이는 '2'와 같은 의미인 것이죠. 자세히 보면 '맵시'와 '나'를 연결하는 하이픈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본 콘텐츠는 해당 유튜브 채널의 이용 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다행히 맵시-나는 엔진과 변속기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해 주행 성능을 높였고 품질을 안정화해 꽤나 많은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내외관의 각종 사양을 고급화한 '하이디럭스' 트림 등이 추가되면서 경쟁차 포니에 비해 반체급 위 정도로 인식된 것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어요. 이후 후속 모델인 '르망'에게 바통을 넘겨줬는데, 택시 모델인 '시그마'는 1989년까지 생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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